147호 > 문화
'당사자의 문학', 자기 경험의 목소리를 담다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등록일 2018.03.08 16:57l최종 업데이트 2018.03.08 16:57l 허유진 기자 (qq87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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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9월 1일, 영화의 성평등 지표인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고안한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노블 《펀 홈》이 재출간됐다. 《재미난 집》으로 출간됐다가 2013년 절판된 《펀 홈의 재발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꾸준한 재발행 요청과 퀴어, 페미니스트들의 후원 덕분이다. 실제 《펀 홈》은 2017년 상반기 텀블벅 그래픽노블 분야 크라우드 펀딩 1위에 올랐다. 《펀 홈》을 발행한 출판사 ‘움직씨’는 해당 도서의 인기는 ‘당사자성’에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당사자인 작가가 자신의 퀴어 성장담과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동성애를 말한” 것이 독자의 이목을 끌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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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펀 홈》의 표지 / (아래) '움직씨'가 제작한 《펀 홈》 카드 뉴스의 일부 ⓒ움직씨



  자기 경험의 목소리를 이야기로 풀어낸 《펀 홈》처럼, 자기 내면의 소리를 전하려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를 담은 ‘당사자의 문학’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울려 퍼질 수 있을까. 다양한 ‘당사자의 문학’을 소개해본다.


《코끼리 가면》, 기록으로 상처를 극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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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코끼리 가면》의 표지 / (아래) 《코끼리 가면》의 첫 페이지 ⓒ움직씨



  퀴어 출판사 움직씨는 ‘좋은 작품에는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진정한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모토 아래 설립됐다. 움직씨의 공동 대표인 노유다 작가는 자신의 가족 성폭력 경험을 기록과 동반자 ‘나낮잠’씨와의 연대를 통해 극복하는 과정을 글그림책 《코끼리 가면》에 담아 냈다. 《코끼리 가면》은 자전적 내용을 근간으로 한 소설이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실존인물이다. 성폭력 생존자인 ‘나’는 가해자인 두 오빠, 침묵을 강요하는 부모 그리고 성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생긴 양극성 장애와 맞서 생을 이어간다.

 돌이켜 보면 나는 칠천 수백여 일간 폭력의 기억을 제대로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내 비밀, 더 나아가 원가족의 비밀은 조개우물 이야기만큼이나 아득한 것이다. 나는 전화번호 112의 기능을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부모님한테 알리지 못했다. 여섯 살 터울의 남자가 위협해서도, 두 살 터울의 남자가 감시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이 한집에서 자란 형제이며 친모 친부가 나보다 더 의지하고 아끼는 자식들인 탓이었다. (《코끼리 가면》)

  하지만 ‘나’는 생의 고통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꿋꿋이 서서 상처를 낱낱이 기억하고 증언한다. 그리고 ‘나’의 곁에는 함께 힘을 모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너’가 존재한다. ‘나’의 어두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너’는 아픔을 이겨내는 데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너는 잘했다고 어깨를 두들겼다. “억지로 용서할 필요 없어.” “끝까지 해 볼래.” 나는 말했다. “뭘?” “몰라. 뭐든.” 내 말에 너는 싱겁다는 듯 같이 웃었다. 시시한 강자와의 싸움은 잠시 잊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새 길이다. 네 덕에 나는 의외로 잘 버텼다. (중략) 우리는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탈 것이다. 다음 여정에서는 나도 세렝게티 할머니 코끼리처럼 현명해질 것이다. 기억의 무게만큼 아는 것이 많으며, 함정이 있는 길은 굳이 걷지 않고, 포악한 맹수가 와도 소리를 내어 쫓아내거나 여차하면 머리로 치받을 수 있다. 경계를 벗어나 독립한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 안녕히 살아갈 것이다.(《코끼리 가면》)

  노유다 작가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자의 연대가 어두운 서사를 뚫고 나가는 것”이라며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읽고 공감해주는 독자 역시 또 하나의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여성, 퀴어, 성소수자, 성폭력 생존자로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살아남기를 응원해주는 많은 분과의 작은 끈이 큰 응원과 치유가 된다” 고 밝혔다. 책을 통한 소통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공감의 힘, 그것이 바로 움직씨와 노유다 작가가 ‘당사자의 문학’을 추구하는 힘이다.


《여공문학》, 정체성을 세우고자 기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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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공문학》의 표지 ⓒ후마니타스



  《여공문학》은 식민지 시기부터 1990년대 초까지 발간된 작품 중 여성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을 재현한 작품과, 여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쓴 작품들을 계보처럼 엮은 책이다. 저자 루스 배러클로프는 ‘여공’이라는 단어에 담긴 여성 공장 노동자에 대한 외부의 폭력적 시선과, 이에 대한 여성 노동자들의 내면적 투쟁에 집중한다. 저자는 3장과 4장에서 70~80년대 출간됐던 ‘여공’들의 수기를 담았다. 여성 노동자들의 수기에는 ‘여공’이기에 겪어야 했던 차별과 노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당사자의 언어로 써져 있다. 

  책가방 들고 등교하는 뽀오얀 얼굴 의 학생들 속에서 누렇게 뜬 얼굴로 공 장에 가는 노동자를 상상해 봐. 버스를 타도 걔네들은 회수권을 내고, 안내양은 자기도 노동자이면서 대학생한텐 친절한데 차비도 더 많이 내는 우리한테는 얼마나 불친절한지 알어? 정말 서울이 싫어 (장남수 《빼앗긴 일터》 46쪽, 《여 공문학》 171쪽 재인용)

  수기에서는 일방적으로 이름 붙여진 ‘여공’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당사자의 고민의 흔적도  드러난다. 《여공문학》의 번역자인 노지승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노동운동이 여성 노동자들을 주체로서 호명한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 성 속에 이들을 가둔 것”이라며 여공들의 젠더와 계급 문제를 그들의 수기에서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도 아니 되고 여자는 얌전하고 교양 있게 얘기를 해야 하며 행동도 조용해야 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 자로 잰다면 우리는 여자로선 제로 아닌가. 큰 소리로 하지 않으면 말이 전달이 안 되고 작업복을 입고 분주하게 기계 사이를 오가며 일해야 하니 자연히 행동이 덤성덤성하다. 이 나라의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해 밤잠도 못 자고 땀 흘리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공순이라는 천시하는 명칭과 세상에서 말하는 여자다움이 박탈되는 거라면 우린 뭔가? (장남수 《빼앗긴 일터》 42~43 쪽, 《여공문학》 271쪽에서 재인용)

  여성들에 대한 뿌리 깊은 성차별이 사회를 지배하던 1970년대에 교육받은 여공들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지승 교수는 “폭력적인 시대에 여성들이 대안적인 교육을 받거나 독서를 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은 당연”하다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누가 써주지 않으니 스스로 쓰고자 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는 “그들은 자유를 갈망했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현실의 엄혹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며 스스로 글을 쓰는 것의 의미에 주목했다. 《여공문학》의 저자 베러클로프 는 랑시에르를 인용하며 여공들의 수기 는 ‘몫이 없었던 자들의 몫 찾기’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피 끓는 절규의 호 소문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 해서 동일방직 사건은 엄청난 사회문제 가 되어 갔지만 정말 신문엔 한 줄도 언 급되지 않았다 (장남수 《빼앗긴 일터》 65쪽, 《여공문학》 240쪽에서 재인용)


허스토리, 기록을 통해 목소리의 발화를 돕다
    
  자기 경험의 목소리를 이야기로 담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야기를 기록하여 삶의 자리를 회복한다” 는 모토를 가진 사회적 기업 ‘허스토리’ 는 인터뷰를 듣고 구술 자료 그 자체를 책으로 엮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곧 책이 되는 것이다. 류소연 허스토리 대표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자서전 사업의 경우 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두 겪은 80대 여성 노인이 많이 참여했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 전쟁을 겪으며 여성으로, 엄마로 살아온 삶은 대개 희생적이었다. 한편 본인의 욕망과 자아 역시 틈새를 비집고 나타나기도 했다. 여느 삶이 그렇듯 그들의 삶도 다층적이었던 것이다.

  근데 뭐 연안서부터 다 그랬으니까. 오십년대니까 뭐. 우물 동이에다가 물 이고. 너 그거 모르냐? 물동이. 영화에서 물동이. 그렇게 산 거야. 그 똬리라는 거 이고, 여자들은 맨날. 밥 먹고 나면 그거 길어다 독에다 붓고. 또 가서 독을 한 독 채 놔야 하루를 보내는 거지. 세수 하고 설거지하고. 또 그릇 부셔서 버리는 데도 없어. 저기 나가서 앞마당에 수채, 거기다 버리지. 아휴, 근데 파리들이 우글우글하고. 그럭하구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근데 그땐 그게 힘 든 건지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건가 보다....... (《영애전》 69~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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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달리, 봄'에서는 '허스토리'에서 발간한 자서전을 열람할 수 있다.



  허스토리 주승리 기획자는 “시작할 때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하다가도 3~4시 간 얘기를 하다보면 (인터뷰이의)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며 이야기를 전하고 들어줄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류소연 대표는 이 사업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가 과거 엘리트 권력의 상징 이었던 책으로 출판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며 “사람들은 들어줄 사람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하면서 본인에 대해 정리할 수 있고 치유되기도 한다”며 “삶에서 건져 올린 보통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는 만들어진 이야기와는 다른 울림을 준다”고 설명했다.

  내가 어려서 우리 아버지 저고리 속에 잘 들어갔었는데, 이놈의 저고리 폭 두 개를 감싸면 아버지 품이 얼마나 따순가 몰라. 저고리 속에 들어가서 아버지 배에다 대고 따숩게, 그렇게 따숩게 컸는데. (중략) 아이고 그렇게 해서 컸어 내가. 그래서 이렇게 팔십여덟까지 사는 것 좀 봐. 아이고 그렇게 살았어 내가. 우리 아버지 품 안에서 그렇게 컸는데, 불쌍한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돈 한 푼 못 드렸는데 그게 한이야. 그게 원죄지. 돌아겨서 아무 소용 없는데... (《산엔 진달래, 들엔 개나리》 15쪽)


‘당사자의 문학’, 공감의 메아리를 만들다 

  ‘당사자의 문학’ 발행인들은 그 의의를 책을 통한 소통과 공감으로 이뤄진 공동체에서 찾았다. 노유다 작가는 “내 얘기를 용기 있게 하면 독자였던 다른 사람 역시 그에 감흥을 받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진정성을 가진 목소리가 가지는 울림에 주목했다. 나낮잠 움직씨 대표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한 공감으로 유의미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며 책을 통한 소통의 힘에 주목했다. 류소연 대표는 당사자의 문학이 궁극적으로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며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은 삶의 기반과도 같다” 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의 문학’은 꼭 당사자의 경험만을 써야 하는 것도, 당사자만이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상상력 역시 문학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노유다 작가는 “당사자의 문학이 르포, 리얼리즘에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며 형식과 관계없이 작가가 느낀 현실에 대한 내면의 목소리가 작품에 스며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낮잠 대표는 이에 “문학이란 자기 안에 있는 깊숙한 이야기, 그 진정성을 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노지승 교수는 당사자의 문학의 핵심은 ‘당사자’라는 주체에 있는 게 아니라 ‘당사자성’이라는 성질에 공감하고 그를 기반으로 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베스트셀러였던 《82년생 김지영》이 많은 여성을 당사자로 호출한 것처럼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상관없이 어떤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관계 맺는 체험이 바로 당사자의 문학의 가치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글은 권력을 상징했다. 신문과 잡지 그리고 서적은 오랜 기간 남성 지식인들의 전문 영역이었기에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이제는 남성, 고등교육 이수자, 자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출판 가능한 때가 됐다. 노지승 교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소통은 사회 도처에 만연한 권위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며 당사자성이 현실 변혁적인 에너지와 결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는 출판의 형태로 타인과 공유되며 사회를 울리는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