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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 밤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등록일 2018.03.08 23:27l최종 업데이트 2018.03.08 23:29l 배인환 기자(iabae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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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 사이로 보이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전경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1월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15일, 마틴 루터 킹 탄생일을 맞아 워싱턴 곳곳은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운 그를 기념하는 행렬로 가득 찼다. 그들은 불과 몇 십 년 전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던 역사를 돌이켜 봤다. 21일, 거리는 ‘2018년 여성행진(Women’s March)’으로 다시 한 번 차별을 말하고 기억하는 자리가 됐다. 온 몸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시민들은 축제처럼 여성 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워싱턴의 겨울 추위가 무색하게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차별을 드러내고, 지우고자 했다. 

  평등과 자유를 말하는 워싱턴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차별을 담은 기념관이 있다. 25년째 워싱턴을 지키고 있는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이하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어제와 오늘의 차별을 드러내며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을 지나 그 어느 때보다 잔혹했던 억압
과 차별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들어가 봤다.


유대인의 눈으로 본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공간과 빨간 벽돌 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벽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자 철제 조명이 나타났다. 철제 레일 여러 개가 천장의 통유리 아래를 관통했고 높은 층고에 비해 낮게 달린 조명, 회색 벤치 그리고 철문이 곳곳에 배치됐다. 기념관을 설계한 제임스 잉고 프 리 드 (James Ingo Freed)는 유대인 게토(Ghetto, 나치 정권 당시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한 거주 지역)와 수용소에서 착안한 철문, 철제 조명 그리고 빨간 벽돌을 기념관에 고증해 관람객이 그 시대를 경험하도록 했다. 1층 벽의 ‘You are my witness(당신이 나의 목격자다)’라는 말처럼 관람객은 기념관에 들어서는 순간 홀로코스트의 관람객인 동시에 목격자가 된다.
 
  상설 전시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여권’을 받고 안내에 따라 4층까지 이동해야 한다. 이 여권에는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유대인 실존 인물의 삶이 전시 순서대로 묘사돼있다. 일종의 전시 안내서이자 기념품인 셈이다. 전시 안내자는 여권을 통해 유대인의 입장에서 홀로코스트를 바라보고 이해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여권을 읽는 동안 승강기의 작은 화면에는 처음 미군이 유대인 수용소를 발견했던 순간의 영상이 나온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 10초 남짓한 시간동안 관람객은 유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준비를 한다.


1933년부터 1939년, 나치에 대한 기록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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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4층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사진과 홀로코스트 문구



  4층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The Holocaust’라고 쓰인 검은 벽과 마주한다. 그 옆에는 미군이 처음 발견한 유대인 수용소의 처참한 현실이 사진으로 전시돼있다. 어두운 역사를 대변하듯 전시실은 검은 벽으로 둘러져 있고 어두컴컴하다. 글과 사진이 없는 곳엔 조명도 없다. 첫 사진을 본 관람객들은 대부분 말을 잃었고, 그 침묵 속 전시가 시작됐다. 4층 전시실에는 나치의 전체주의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종교에 대한 차별이 인종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는 과정
이 상세히 기술돼있다.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 유대인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존재했던
종교에 대한 차별은 나치 정권 아래에 유대인이라는 민족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다. 유대인 관련 서적은 출판이 금지
됐고 유대인을 차별하는 우생학 연구에 대한 지원이 늘었다. 1935년 반유대주의가 성문화된 뉘른베르크법 이후 유대인의 권리는 땅으로 떨어졌다. 전시실 한 벽면에는 유대인을 다른 인종과 구별되는 ‘특이’ 민족으로 바라보는 의학 연구의 흔적과 민족성을 이유로 격리 당했던 유대인이 담긴 사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전시의 흐름에 따라 들려오는 소리는 끔찍한 차별의 현장을 고증하는 듯했다. 히틀러가 사용했던 프로파간다가 글에서 튀어나와 소리로 울려 퍼졌다. 칼같이 떨어지는 히틀러의 연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광기어린 목소리, 그리고 이에 환호하던 독일 시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선동적인 히틀러의 목소리와 그에 흔들리던 대중의 소리는 날카로운 소음처럼 느껴졌다.

  여느 역사가 그렇듯 억압에는 저항의 움직임이 따랐다. 유대인 역시 시위와 반대 성명 등을 통해 나치에 대항했다. 하지만 대항은 법으로 무장한 반유대주의 사회에서 처참히 짓밟혔다. ‘수정의 밤(Kristallnacht)’은 유대인의 항쟁을 무력화했던, 나치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유대인 청년이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 3등 서기관을 암살하는 사건이 생기자 나치의 경찰과 히틀러 친위대(Schutzstaffel, 국내외 적성분자를 적발하는 역할을 하던 히틀러를 호위하는 나치당 내 조직)는 유대인의 상점과 집을 모두 파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경찰의 폭압으로 망가진 유대인
예배당의 입구는 유대인들의 저항에 나치가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보복했는지 보여준다. 저항이 힘을 잃자 유대인들은 본격적으로 해외 이주와 망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는 정치적 이유로 유대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주는 실패했다.

  나치에 대한 기록이 끝나갈 때쯤 관람객들은 유리터널을 지난다. 터널의 유리에는 나라별로 지역의 이름이 줄지어
져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이후 사라진 지역의 이름들이 빼곡히 터널 안을 메웠다. 사라진 공동체의 이름을 곱씹으며 거대한 유리를 따라 인종학살의 기억 속으로 입장한 관람객은 어두운 역사의 목격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게토, 수용소에서 해방까지, 어둠의 시간을 함께하다

  3층 전시는 게토로 이주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관람객들은 게토로 가기 위해 건너야만 했던 나무다리 위를 넘어
가며 전시를 본다. 실제 게토의 한 벽면을 재현한 주황빛 벽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재봉틀이 눈에 들어온다. 폴란드 우치의 게토에서 발견된 재봉틀, 신발장이 도구, 다리미 등은 수용소로 강제 이주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유대인들은 삶의 공간을 뺏겨 격리당한 것만으로 모자라 노동으로 그들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우치 게토 구성원들은 쓸모있는 인간이 되고자 독일 군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곤 했다.

  하지만 게토의 유대인은 점차 수용소로 강제 이주됐다. 게토의 나무다리가 끝나자 수용소로 가는 기차 한 칸이 등장했다. 수십 장의 사진 속, 강제이주 당하는 유대인들의 공허한 눈빛을 바라보며 기차 앞에 다가섰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기차를 탄 그들처럼 관람객들은 엄숙하게 기차 안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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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리면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를 재현해 놓은 철제 구조물이 등장한다. 

구조물 뒤에는 수용소의 막사를 재현해놓았다.



  기차에서 내려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고 쓰인 입구를 지나면 오두막 같은 막사가 등장한다. 수용소다. 막사 안에 들어가자 가스실의 철문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3층 침대가 자리잡았고 왼편에는 나치가 수용소에서 자행했던 생체 실험 사진이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철문을 돌면 가스실에서 이뤄지던 학살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미니어처 작품이 등장한다. 탈의 후 샤워를 시킨다며 강제로 가스실 철문에 유대인을 ‘넣는’ 과정은 조각으로 재현됐다. 가스실에 입장한 유대인은 모두 죽었고 혹여나 탈출해도 즉각 총살됐다. 작품 속 유대인 수용자의 얼굴에는 가스실을 탈출하려는 절박한 절규,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 나치에 대한 분노가 모두 담겼다. 차별에 대한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로 가득 찬 4층과 달리 3층에서는 ‘Voices from Auschwitz(아우슈비츠의 목소리)’ 방만이 소리를 담고 있다. 유리방 안에 들어가면 수용소에 도착한 상황과 이후 수용소에서의 일상을 생존자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생존자들은 때로 격앙되고 울먹였지만 대개 덤덤하게 이야기를 읊어 나갔다. 생존자 프리치 프릿샬(Fritzie Fritzshall)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순간을 설명할 길이 없다며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공간에 대해 회상했다. 그는 이유 없이 돌을 옮기는 작업을 했다고 증언했다. 일이 힘들어 막사에 돌아갈 때는 겨우 기어다닐 정도였지만 하루를 더 살기 위해 수용자들은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줘야만 했다.

  2층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들어서자 옅은 가스 냄새가 풍겨왔다. 곧 바닥에 늘어져 있는 신발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수용소 해방 이후 발견된 유대인들의 신발이었다. 그 많은 수용소 중 한군데에서 발견된 신발의 극히 일부
였지만 여러 크기와 모양의 신발들은 한 데 모여 어두운 신발의 바다를 만들었다. 그 바다 위로 유대인이 걸어온 어둠의 역사가 파도치는 듯 했다. 옅은 가스 냄새를 따라 화장터를 재현한 공간에 들어섰다. 한 편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노벨 수상 작가 엘리 비젤(Elie Wiesel)의 소설 ‘나이트(La Nuit)’의 일부가 담겼다. 바꾼 그 밤을… 아이들이 연기로 변하던 그 밤을… 나의 믿음이 연소된 불꽃을” 잊지 못한다는 비젤의 시 앞에서 관객들은 잊지 않을 밤들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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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가스 냄새 속에 전시되어 있는 수용소에서 발견된 유대인 수용자의 신발더미



  2층에서는 1945년 연합군의 승리로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해방된 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반유대주의에 맞서 유대인과 연대했던 사람들의 사진과 행적이 흰 벽면을 메웠다. 게토와 수용소에서 저항했던 당사자들의 역사도 자리했다. 잔혹했던 나치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방대한 투쟁의 역사가 기억되고 있었다. 비극적인 역사의 종결을 보여주는 사건들의 전시도 뒤따랐다. 연합군의 승리로 수용소가 해방되며 밝혀진 수용소의 실상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됐다. 바로 옆에는 1945년부터 진행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과정의 일부가 영상으로 고발되고 있었다. 전시는 종전 이후 홀로코스트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유대인의 모습과 생존자의 목소리로 맺어졌다.


관람객, 역사의 목격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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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홀(Hall of Remembrance)' 가운데에는 불타는 '영원한 불꽃(Eternal Flame)' 

나머지 벽에는 관람객이 직접 밝힐 수 있는 초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가 끝난 후 밝은 빛이 닿는 ‘추모의 홀(Hall of Remembrance)’로 발을 옮겼다. 육각형 공간의 가운데 벽 앞에는 ‘영원한 불꽃(Eternal Flame)’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8개 유대인 수용소에서 모은 흙을 담은 대리석 위의 불꽃은 사라지지 않을 희생자들의 기억처럼 힘껏 타고 있었다. 영원한 불꽃을 뒤로한 채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수많은 유대인들을 돌이켜 보며 수많은 초 가운데하나를 켰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가장 참혹했던 차별을 불태우듯, 침묵 속에 일렁이던 촛불은 하나의 불빛이 되어 검은 벽에 적힌 유대인 수용소의 이름들을 옅게 밝혔다. 인류의 가장 어두운 역사는 인간의 권리를 박탈했던 억압과 차별을 잊지 않겠다는 관람객들의 다짐으로 환하게 밝혀지고 있었다.

  “우리는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를 위해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For the dead and the living, we must bear witness.)” 비젤의 짧은 글이 추모의 홀 앞을 지켰다. 실제 수용소에서 착안한 건물 안에서 실존 유대인 인물의 여권을 받으며 관람을 시작한 관람객들은 점차 ‘관람’이 아닌 ‘목격’을 한다. 프로파간다와 군중의 환호를 직접 들으며 나치 정권의 억압과 광기를 느꼈고, 가스 냄새가 가시지 않은 주인 잃은 신발들을 보며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함께 했다. 그리고 수용소의 삶을 이야기 하는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극적인 시간을 헤아렸다. 관람객으로 시작했던 여정은
차별의 역사를 마주한 목격자가 되며 끝이 난다. 그리고 목격자들은 ‘잊지 않을 밤들’의 역사를 가슴에 새긴 채 어둠을 헤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