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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깊이 새겨진 폭력의 역사가 치유의 노래가 되기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展
등록일 2018.04.12 11:24l최종 업데이트 2018.04.12 11:31l 허유진 기자(qq877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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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인 2018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국가적 폭력을 겪었다. 한국 근현대사 속 폭력은 개인의 일상을 파괴시켰지만, 그 개인은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며 고통 속에서도 삶이 주는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 작가 임홍순은 한국 현대사 속 폭력의 시간을 증언하는 개인의 신체와 경험에 주목했다. 전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 폭력을 겪은 네 할머니들의 기억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예술을 통해 상처 받은 개인을 위로하고, 나아가 역사의 상흔을 보듬으며 전시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장을 만들어낸다.


  영화관처럼 어두운 전시실에 들어서면 곳곳에 놓인 무대소품들이 보인다. 전시 기간 동안의 전시실은 완성된 작품을 관람하는 공간이지만, 전시 시작 이전의 전시실은 작품이 촬영된 세트장이었다. 전시실의 좌측에는 4·3사건이나 빨치산 토벌 당시 개인들이 살기 위해 올라갔으나 수많은 죽음을 맞이한 공간인 산과 계곡 모형이 있고, 우측에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상징인 나무 모형이 자리 잡았다. 관람객이 작품을 관람하는 장소로 마련된 계단은 일제 식민지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자 정정화 할머니의 모순적인 기억을 담은 공간이다. 이곳이 재현한 종로 경찰서 계단을 정정화 할머니는 독립운동이 발각되어 한 번, 한국 전쟁에서 남한 정부의 서울 수복 이후 부역자 낙인이 찍힌 채 또 한 번 올랐다. 영상에 희생자들의 옷이 걸린 나무가 등장하자 붉은 조명이 전시실의 나무 모형을 비추고, 영상에서 농민들이 저항의 수단으로 들었을 낫과 삽들이 물에 잠기자 푸른 조명이 전시실의 배를 비춘다. 관람객은 소품과 조명 그리고 영상의 의미를 종합하며 역사의 의미를 구성하는 주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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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갈라 놓는 것들'의 한 장면으로, 김동일 할머니를 재현한 여성이 도처에 널린 희생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제목과 같은 이름의 작품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거대한 폭력을 직접 겪은 세 할머니의 삶을 삼면분할화면에 담았다. 각 화면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당시 상황을 연출한 영상과 할머니와 지인들의 인터뷰, 현재 한국의 모습이 교차돼 펼쳐진다. 정정화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김동일 할머니는 제주 4·3 사건을 겪은 후 일본으로 망명했고, 고계연 할머니는 지리산 ‘빨치산’ 활동으로 온 가족을 잃었다. 작품에서는 할머니들의 개인적 기억과 역사가 뒤섞인다. 유채꽃이 핀 제주도의 4.3사건 희생자 묘지는 배신한 동지로부터 '(연락원 활동을 함께 하다 죽은) 친구의 머리를 들고 마을을 돌라'는 말을 들었던 김동일 할머니의 기억과 교차된다. 합치된 기억과 역사는 현재로 이어진다. 할머니들의 기억은 정정화 할머니의 손녀를 비롯한 남북한 출신 여성들의 재현으로 살아나며, 세트장에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영상을 보는 관람객은 할머니의 고통에 공감하며 치유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어두웠던 세트장을 통과하면 밝은 조명 아래 수십 벌의 옷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의상실 혹은 소품실 같이 꾸며진 공간은 김동일 할머니의 옷과 뜨개소품, 정정화 할머니의 돋보기와 책, 고계연 할머니의 낚시 소품을 전시한다. 할머니들의 취미였던 뜨개질, 서예, 낚시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온 생애에 걸친 노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계연 할머니는 지리산 ‘빨치산’ 활동 당시 경찰을 피해 차가운 강을 건너다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잃었지만, 물 위 에서 낚시를 하며 개인 사업, 자녀 양육 등 열정적 삶을 살아왔다. 다른 할머니들 또한 역사적 사건에서 멈춰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삶을 이어왔다. 김동일 할머니는 4.3 사건 이후 일본으로 망명 했지만, 갈비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 하던 그곳에서도 4.3 사건을 잊지 않고 <한라산에 해바라기를>이라는 책을 퍼냈다. 관람객은 ‘과거라는 시를 써보자’는 이름의 공간에서 할머니들의 일상 속에 함께했던 물건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생생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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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기증된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으로, 일부는 전시가 끝난 후 제주도에서 불태워 김 할머니의 넋을 기릴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옆 전시실로 이동하기 위해 전시실을 나오면 ‘시나리오 그래프’라는 거대한 연표가 나타난다. 작품 ‘우리를 갈라 놓는 것들’과 ‘환생’의 시나리오 역할을 하는 연표에는 작품의 주인공인 할머니들께서 생전에 한 ‘대사’들이 개인사-한국의 공적으로 공인된 역사라는 ‘줄거리’, 그리고 자연 환경 징후라는 ‘배경’ 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월남전쟁을 보게 된 거죠. 정말 치열했어요. 미국 사람들도 많이 죽었어요. 이렇게 (위문) 공연을 하는데 옆에 그냥 펑하고 박격포가 떨어지면 다 죽었어요.” “도망가고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아무것도 못했죠.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그날그날 목숨이나 보존하며 지낸 거죠. 어디 위험하다 하면 하루종일이라도 걷고, 뛰고요.” 할머니들의 육성이 더해진 ‘시나리오 그래프’는 관람객에게 교과서에 적힌 한 줄짜리 역사 뒤에 숨겨진 기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시 영화관과 같이 어두운 전시실에 들어가면 작품 ‘환생’이 상영된다. ‘환생’은 어려서 한국 전쟁을 겪고, 성인이 되어 위문공연의 무희로 베트남 전쟁을 순회한, 결혼 이후 이란에 정착해 이란·이라크 전쟁을 직접 겪은 이정숙(가명) 할머니의 삶에서 출발한다. 한국군이 참여한 아시아의 전쟁들에서 폭력을 직접 경험한 할머니의 삶은 마주보는 두 개의 영상 스크린에 구현됐다. 한쪽에서는 이라크전으로 가족을 잃은 어머니들을 재현하는 이란의 젊은 여성들과 실제 유가족의 모습이, 반대쪽에서는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인 베트남 여성들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한 나라의 역사 혹은 개인의 경험이 국경에 갇히지 않고, 그를 감싸 고 있는 세계로 뻗어나간다. 전쟁 희생 자를 추모하는 이란의 유가족들과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베트남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를 동시에 보여주며 끝이 나는 영상은 역사에 의해 행해진 폭력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을 담아낸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 앉아 영상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전쟁을 비롯한 폭력을 기억할 역할이 자신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작가는 가해자와 피해자, 승자와 패자로 역사를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 역사를 당사자 인터뷰, 연출 영상 등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통해 관람객에게 제시한다. 이를 하나로 묶는 과정 속에서 관람객은 고통의 역사에 공감하고, 폭력과 분단을 지속시킨 공포와 증오를 마주 한다. 할머니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흐름 속 희생당한 과거의 사람들과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연결되어 치유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과거와 현재,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이어 우리 사회의 폭력을 야기한 근본 원인인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예술을 통한 역사 쓰기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넘어 치유와 평화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