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문화
우리 모두 안전할 권리를 위해 동아리연합회의 '세이프존(Safe Zone)' 프로젝트
등록일 2018.04.12 15:55l최종 업데이트 2018.04.12 15:56l 이누리 기자(nurizto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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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봄, 학생회관의 몇몇 동아리방 출입문에는 ‘세이프존(Safe Zone)'이라는 글자가 작게 적힌 초록색 스티커가 붙었다. ‘동아리소개제’ 안내지도에도 일부 동아리는 초록색으로 강조돼 세이프존임을 알렸다. 모두 ‘서울대학교 동아리연합회(동연)’에서 시작한 ‘세이프존 프로젝트(세이프존)’의 일환이다. 유수호(물리·천문 16) 동연 회장에 따르면 세이프존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지양하고 인권친화적인 문화 형성에 힘쓸 것을 서약한, ‘안전한 동아리’임을 동연이 인증해주는 제도이다. 이는 학교, 직장, 가정 등에서 성소수자 인권 관련 세미나를 수강하면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공간임을 인증해주는 미국의 ‘인터네셔널 세이프존(International Safe Zone)’ 캠페인에서 유래했다. 동연은 성소수자에게 이 공간이 안전함을 알리는 인터네셔널 세이프존 캠페인의 의미는 살리되, 그 범위를 모든 소수자에게로 넓히고자 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세이프존 프로젝트의 취지와 현황, 난점을 알아봤다.


IMG_0001.JPG▲ 지난 3월 5, 6일 열린 봄 동아리소개제의 안내 지도에 세이프존 인증 동아리들이 초록색으로 표기돼있다.


연대와 성찰, 세이프존이 전하는 의미

  유수호 회장은 “(소수자와의) 연대를 가시화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프로젝트의 취지를 밝혔다. 소수자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주변인의 인식인 만큼, ‘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성소수자와 연대하려 해도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적다는 아쉬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유 회장은 지난 제36대 동연 선거에서 세이프존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올해 1월 제도가 도입된 이후, 3달 간 약 10개의 중앙동아리가 세이프존 인증을 받았다. 이번 3월 인증을 받은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천문회 'AAA'의 김우태(건설환경공학 16) 회장은 “(소수자 혐오 지양 등은) 원래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했다. 세이프존 1호 동아리인 서예회 박선욱(에너지자원공학 17) 회장 또한 “원래 분위기가 강압이나 강권이 없는 편이어서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동아리 내 제도 도입 투표에서 반대가 한 표도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세이프존은 동아리 공동체 내에서 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김우태 회장은 세이프존 참여 여부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지난 동아리 행사와 문화를 돌아보고,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을 개선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는 개개인이 문제로 인식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제지하기 어렵던 사안이 있었다”며 “세이프존 인증 후 동아리 내 합의된 의견이 생겨 제지가 용이해졌다”고 덧붙였다. 유수호 회장은 “누군가 혐오발언을 했을 때, 세이프존이라는 약속을 바탕으로 자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좋은 발전일 것”이라며 변화의 물결이 커지기를 바랐다.


전문성과 실효성, 세이프존이 넘어야 할 산들

  그러나 세이프존이 안정적으로 자리잡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먼저 인증절차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세이프존으로 인증 받고자 하는 동아리는 서약서와 동아리 운영위원회의 결과지, 카카오톡 투표 결과, 동아리 총회 속기록 등의 공론화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유수호 회장은 인증 기준에 관해 “큰 결격사유가 없으면 인증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선욱 회장은 “간소한 절차라서 많은 동아리들이 참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검증 과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보완방향을 제시했다. 김우태 회장 또한 “동아리 활동에 대해 동연 차원에서 확인 및 자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한다면 동아리 입장에서도 덜 막막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동연 차원의 세이프존 인증이 얼마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그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유수호 회장은 “동연이 수사기구도 아니고, 인권사안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큰 단체도 아니기 때문에 (인권침해 등 문제 발생 시) 대처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걱정을 표했다. 내부고발이나 제보가 있는 경우에 한해 인증을 취소하고 수사 및 처벌이 가능한 기관에 연계하는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인증 자체의 실효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가의 유래한 캠페인처럼 세미나를 수강함으로써 인증하는 방식이면 좋겠지만, 세미나를 열 집행력도,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라며 실질적인 교육까지 이뤄지기 위해선 전문기관과의 연계가 필수라고 주장했다.

  유수호 회장은 “현재는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지금의 제도부터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만 세이프존이 선언적 의미를 넘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내년 동연의 성격에 따라 프로젝트가 폐지될 수도 있다는 점, 중앙동아리만 인증해줄 수 있다는 점 등 현 시스템의 한계에 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결국 총학생회나,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인권센터의 사업으로 이관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올해 사업의 결과를 보고 나야 존속과 확장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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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리소개제의 AAA 부스. 판넬에 붙은 초록색 스티커가 세이프존임을 알리고 있다



  지속적이고 실효성 있는 사업이 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업은 홍보다. 유수호 회장은 “(세이프존이) 학생사회 내에서는 어느 정도 이슈가 됐던 것 같고, 타교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일반 학우들에게까지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며 홍보의 필요성을 털어놓았다. 박선욱 회장 또한 “아직까지는 많은 동아리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아쉽다”며 적극적인 홍보를 통한 참여 독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자체와 더불어 참여 중인 동아리를 홍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동연에서 세이프존을 담당하는 정하빈 팀장은 “동아리들이 세이프존에 참여하는 가장 큰 유인이 동아리 홍보라고 생각한다”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아리들을 소셜미디어와 카드뉴스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올해 말까지 진행될 세이프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남아있다. 그러나 소수자와의 연대와 공동체에 대한 성찰이라는 의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간다면, 세이프존은 우리 모두 안전할 권리를 찾아가는 소중한 한 걸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