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문화
성폭력, 왜 폭로될 수밖에 없는가 '꽃뱀’, 무고죄 의심을 넘어 서로의 용기가 된 우리
등록일 2018.04.12 16:24l최종 업데이트 2018.04.12 16:26l 이누리 기자(nurizto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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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Too 운동'(미투)의 열기가 뜨겁다. 검찰조직을 넘어 연극계와 연예계, 정치계까지 번진 미투의 물결이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의심의 눈초리도 존재한다. 혹시 저 피해자가 ‘꽃뱀’은 아닐까, 억울한 사람에게 가해자라는 누명을 씌우기 위해 없던 일을 지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미투의 부작용이 극심하다”, “미투가 변질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실제 무고나 명예훼손 역고소 또한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멈추지도, 위축되지도 않는다. 왜 피해자들은 성폭력 폭로에 따르는 위험과 의심에도 말하기를 이어갈까. 피해자의 목소리로 성폭력을 고발해온 역사와 의미를 돌아보며, 더 이상 성폭력을 폭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살펴봤다.


발언대_사진1.jpg3월 22일 청계광장에서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털어놓으며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2018분 이어말하기’가 펼쳐졌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부터 ‘#문단_내_성폭력’까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직접 말하는 것이 미투 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미투 운동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2016년 10월, SNS를 중심으로 크게 화제가 됐던 ‘#00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트위터의 캠페인에서 미술계, 교회 등으로 번져간 이 운동은 미투까지 연결되는 저항적 움직임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계보의 시작은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여성신문>은 한국 최초의 ‘미투 고발자’로 20세기 초반의 작가 김명순 씨를 제시했다.(“첫 ‘미투’ 고발자, 김명순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김 씨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였음을 《탄실이와 주영이》 등의 작품으로 호소했다. 1986년 민주화운동을 하던 여대생이 부천서에서 성고문을 당한 사건 역시 피해자의 고발을 통해 사회에 알려졌다. 한국 최초로 성희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이뤄졌던 서울대학교 신 교수 사건 또한 피해자가 직접 쓴 자보에서 시작됐다. 이번 4월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재수사 사건으로 지정한 '故장자연 씨 사건'도 마찬가지다. 유독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목소리로 폭로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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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기록한 책 《참고문헌 없음》이 출간됐다. ⓒ'#문단_내_성폭력, 우리가 쓰기 시작했다' 텀블벅



‘꽃뱀 신화’와 역고소, 성폭력 폭로에 따르는 위험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공적 절차를 밟는 대신 SNS 등에 글을 올려 간편하게 가해자를 사회에서 매장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한국 최초의 가정폭력 및 성폭력 전문 상담기관인 ‘한국여성의전화’ 손문숙 활동가는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들의 발화는 역으로 공격받고, 별 것 아닌 일로 치부되며 묻혀왔다”며, 성폭력을 고발하면 공격과 의심이 되돌아오는데 어떻게 공론화가 쉬운 선택이 될 수 있겠냐고 반박했다.

  성폭력 피해를 털어놓은 피해자는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는 사회 통념과 마주한다. 성폭력 실태조사(여성가족부, 2016년)에 따르면,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는 문항에 49.3%의 응답자가,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일 수 있다’에는 48.7%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모든 강력범죄 중 성폭력만 유독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며 “폭행 피해자에게 왜 맞을 짓을 했냐고 묻지 않는데 성폭력에 대해서만 피해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담론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는 꽃뱀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성범죄 의혹 기사 댓글란에는 ‘꽃뱀일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믿을 수 없다’는 의미의 댓글이 흔히 발견된다. 이에 대해 손문숙 활동가는 “꽃뱀에 대한 공포는 만들어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언론의 무고죄(타인이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에 관한 과잉보도가 ‘꽃뱀 신화’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한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1월, <중앙일보>는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무고죄의 발생 건수가 5년 사이 30% 가량 증가했으며, 그 중 40%가 성폭력 무고죄라는 요지의 기사를 보도했다.(““성폭행 당했어요” 무고죄 30% 급증…성범죄도 고공행진”) 이를 근거로 청와대에 무고죄 형량을 늘려달라는 청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손문숙 활동가는 국내에서 공식적인 성폭력 무고 통계 자체가 발표된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언론이 근거 없는 통계를 활용해 ‘꽃뱀 신화’를 지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기사가 인용한 자료는 전체 무고죄를 합산한 통계로 그 중 성폭력 무고의 비중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꽃뱀’이 만연하다는 투로 왜곡 보도했다는 비판이다.

  성범죄 무고 유죄 판결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근거로 ‘꽃뱀’의 해악이 심각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성범죄 무고 사건이 2001년 21건에서 2014년 148건으로 급증했다는 <서울경제>의 보도(“돈 때문에… 복수심에… 성범죄 무고죄 급증”)는 이 추세를 뒷받침한다. 공식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법원 판결문을 조사한 결과에 근거한 수치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강인규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성범죄 발생 횟수 자체가 늘었기 때문에 무고 판결 건수의 증가를 근거로 ‘꽃뱀’이 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대신 전체 성범죄 중 무고 비율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언론이 보도하고, 사람들이 열심히 퍼 나르는 ‘성범죄 무고 판결’ 건수를 신고된 전체 성범죄 발생 건수로 나누면 0.5라는 비율이 나온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기사에 제시된 성폭력 관련 무고죄 유죄 판결 건수를 믿을 수 없고, 정확한 무고죄 관련 통계가 있다고 해도 완벽하게 허위신고율과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적어도 ‘꽃뱀 신화’를 강화하는 근거로 돌아다니는 수치보다는 0.5%가 실제에 근접할 것”이라 말했다.

  성폭력 사건에 관한 자극적인 보도 역시 언론이 ‘꽃뱀 신화’에 기여해온 방법이다. 김보화 연구원은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폭력이 일어났음을 입증하는 데에 실패한 조사라는 의미”라며 무혐의 처분을 무고로 과잉보도하는 일부 언론을 비판했다. 과장보도로 조성된 여론에 가해자가 탑승해 자신이 억울한 희생자인 마냥 대중에게 호소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폭로했던 인물은 자연스레 ‘꽃뱀’이 된다는 설명이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공동 제작한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 역시 성폭력을 다루는 언론 보도 방식을 성폭력 역고소 논란의 사회적 배경 중 하나로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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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에 '판치는 무고', '성폭력 무고女' 등의 표현을 사용한 자극적인 언론보도



  ‘꽃뱀 신화’와 상관없이, 역고소의 가능성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위협적이다. 손문숙 활동가는 무고죄 역고소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고소의 위협 자체가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피의자가 되면 성폭력 피해자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보호조치를 받을 수 없게 될 뿐더러, 정서적인 고립감을 느껴 성폭력 재판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명예훼손 역고소 또한 마찬가지다. 무고죄는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사실을 법적으로 제기한 후에야 가능한 절차지만, 명예훼손은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단지 피해사실을 호소하는 단계에서도 고소가 가능하다. 사과를 받기 위해 피해사실을 알리기만 해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김보화 연구원은 “적시한 내용이 진실이고 공공의 이익과 관련이 있을 때는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과 실제로 고소됐을 때 조사를 받는 과정 모두 피해자에게 큰 부담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말하기를 위축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말한다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론화하려는 피해자는 ‘꽃뱀’이라는 사회의 편견, 무고 및 명예훼손 역고소 위협 등 무거운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전부터 이어져 온 피해자의 목소리는 점점 큰 물결로 이어지고 있다. 왜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사실을 사회 전체에 알리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까?

  전문가들은 성폭력이 아는 사람에 의해,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손문숙 활동가는 “우리 사회는 성폭력을 밤에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 의해 갑자기 일어나는 일처럼 여기지만, 아는 사람에 의한 범행이 80% 이상인 게 실상”이라 밝혔다. 따라서 그 상황이 성폭력이었음을 스스로 인지하기도 어려우며, 인지하고 나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보화 연구원은 “(피해자들이) 고소하기도 어렵고, 고소해봤자 주변인들이 말리거나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며 “삶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약자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얘기하는 방식밖에 선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는 사법적 구제 절차 또한 공론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손문숙 활동가는 “성폭력은 단둘이 있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에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도 적지 않다”며 성폭력 사건의 증거 수집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증언 외에 처벌할 수 있을 정도의 적극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사건은 대개 무혐의로 처리된다. 무혐의가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확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무혐의 사실 자체만으로 피해자를 ‘꽃뱀’이라 몰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한 피해자에게 남은 구제 방법은 피해사실을 공론화하는 방법뿐이다.

  손문숙 활동가는 피해자 친화적이지 않은 수사 관행을 피해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도록 몰아가는 원인으로 강조한다. 수사관들이 피해자 면전에서 ‘왜 저항하지 않았는지’를 묻고, ‘그러게 왜 거길 따라갔냐’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비판이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사지침이 존재하는데도 피해자에게 제대로 안내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피해자가 원하는 시간으로 진술 일시를 조정할 수 있지만 수사관들이 이를 공지하지 않고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 손 활동가는 “피해자가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면 까다로운 피해자가 된다”며 수사 과정 자체에서의 2차 가해와 권리 침해가 피해자들이 공적 절차를 택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추가 피해 방지와 연대를 통한 치유가 폭로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손문숙 활동가는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한 피해자는 그 가해자가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공론화를 선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론화는 사건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엄연한 성폭력임을 확인하는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숨어 있는 다른 피해자와 연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라는 문구처럼,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음으로써 어딘가에 있을 다른 피해자의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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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분 이어말하기' 발언대의 옆쪽에는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고발하는 대자보 광장이 설치됐다.



  폭로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되려면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미투를 외칠 필요가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법적·제도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인규 교수는 “한국도 미국, 독일 등과 같이 강간에서 ‘강제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은 ‘항거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력이나 협박이 있었는가’를 강간 여부 판단 시 결정적으로 고려하는데, 강간의 정의가 ‘동의 없는 성행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문숙 활동가는 적극적 동의를 기준으로 강간을 판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 기준을 실제 수사 관행에 반영하기 위한 개혁 또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보화 연구원은 성폭력 사건 조사 중에도 무고죄 고소가 가능한 현재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피해자가 의심받지 않고 진술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법적 구제 방법만으로 미투가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피해자가 또 나타날 수 있다. 김보화 연구원은 “미투를 조롱하는 언어들이 돌아다니는 현 상황은 이 사회가 성폭력 피해 경험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들을 준비가 된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누군가가 털어놓은 성폭력 피해를 함부로 불신하거나 사소한 일로 치부하지 않고, 왜 피해자들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곱씹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연대한다면,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폭발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