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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살아갑니다"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스틸 앨리스'(2014)
등록일 2018.06.06 06:14l최종 업데이트 2018.06.06 16:00l 박세영 기자(precieuse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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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지적인 아내를 위해

  앨리스는 세 아이의 엄마, 따뜻한 아내이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 교수다. 그녀의 책은 언어학 교육의 초석으로 여겨지며, 학생들은 그녀의 강의를 가장 기대되는 강의로 꼽는다. 가족들은 떨어져 있다가도 사랑하는 앨리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선물을 건네며 앨리스를 위해 건배하는 가족은 행복하다. 

  그런데 너무나도 완벽하던 일상에 아주 사소한 균열이 포착된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자랑하던 앨리스는 강의 도중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한다. 조깅을 하다가 멍한 상태가 돼서 길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 자신 있던 음식 레시피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일과 가족에 대한 사랑 모두를 갖춘 성공적인 삶에 생긴 작은 틈은 점차 벌어지며 앨리스를 잠식해간다. 
 

“내 일부가 사라지는 기분이야” 

  완벽해보이던 앨리스의 삶에 조발성 알츠하이머가 찾아든다. 65세 미만의 나이에 발병하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는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등 다양한 영역의 인지 기능을 더 빠른 속도로 저해한다. 남달리 똑똑하던 앨리스는 자신을 지탱하던 지적 능력이 사라지자 평생 이룬 것이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고, 강의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유전적인 질병을 아이들에게 물려줬다는 죄책감과 그로 인해 불거지는 가족들과의 갈등은 앨리스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라져가는 자신의 조각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앨리스는 좌절하는 대신, 사랑하던 삶을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세상의 일부로 남아있기 위해 단어 퀴즈를 맞추고 조깅을 하고, 같은 부분을 다시 읽지 않기 위해 줄을 그으며 책을 읽어간다. ‘나비는 오래 살지 못하지만 멋진 삶을 살아서 괜찮다’며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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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게된 앨리스가 조깅을 하고 있다. ⓒIMDB



  하지만 뛰어났던 앨리스의 지적 능력은 오히려 병의 진행 속도를 가속한다. 점점 더 많은 단어를 잊고 사람을 헷갈릴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였던 그녀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를 떠올리기까지 긴 시간을 소요하다 끝내 실패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심해지는 병에 대처하기 위해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영상 메시지를 남긴다. 그녀는 미래의 자신에게 딸의 이름도, 자신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때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을 권유한다. 여전히 젊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킨 채, 가족들에게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다울 수 없다면 생을 마감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앨리스의 선택은 스스로의 삶을 사랑했던, 너무도 앨리스다운 선택이다. 그녀는 영상 편지를 담은 폴더 이름을 ‘나비’라 붙인다. 짧은 생이었어도 멋진 삶을 살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스스로를 향한 위로가 담긴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담당의는 앨리스에게 알츠하이머 학회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앨리스의 남편은 준비과정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것이라며 반대한다. 그러나 앨리스는 이제 자신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생각하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앨리스에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행위는 도전이지만, 그녀는 도전을 통해 스스로의 상태와 병을 돌아보고 마주하는 용기를 낸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의를 했던 앨리스는 수없는 노력 끝에 몇 장짜리 연설문을 삼일이 꼬박 걸려 쓴다. 마침내 그녀는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지 않기 위해 노란 형광펜을 들고 가족들과 담당의의 따스한 시선 속에서 연단에 선다. 지적 능력을 갉아먹고 사회생활을 단절시킨 자신의 병을 부끄러워하던 앨리스는 찬찬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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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학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IMDB



  “한때의 우리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리는 우스꽝스럽습니다. 이상한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 바꾸고, 스스로에 대한 인식도 바뀝니다.” 그녀는 알츠하이머와 맞서 싸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바보처럼 무능해지고 우스워지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의 병이라고, 스스로와 환자들을 다독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이 세상의 일부로 남아있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고 고백한다. ‘상실의 기술’을 배우도록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않고 순간을 살라는 앨리스의 메시지는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삶에 대한 그녀의 자세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앨리스의 병은 계속해서 악화된다. 연설장에서의 기억을 끝까지 놓고 싶지 않지만 잊을 것이라던 앨리스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이 해낸 연설도, 강의하던 대학도, 딸의 이름도 잊어간다. 우연히 노트북에서 나비 폴더를 발견하고 과거의 자신이 시키던 대로 자살을 시도하던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던지조차 잊어버린다. 더 이상 일에 대한 열정도, 알츠하이머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앨리스는 막내딸 리디아와 함께 산책을 하고 낮잠을 자며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리디아가 한편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앨리스에게 ‘이게 어떤 이야기 같아?’라고 묻자 앨리스는 한참 생각을 더듬다가 ‘사랑’이라고 답한다. ‘사랑’은 어쩌면 그녀가 아는 단어 중 가장 중요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앨리스는 여전히 자신이 사랑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