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문화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 한국인 무슬림, ”왜 하필 이슬람이냐”는 질문에 답하다
등록일 2018.06.08 00:15l최종 업데이트 2018.10.02 21:34l 이누리 기자(nurizto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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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세계 3대 종교라고 부른다. 그중 이슬람 신도(무슬림)의 수는 세계적으로 13억 명을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고, 이슬람협력기구(OIC)에 가입된 국가의 수는 57개국에 달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슬람은 전세계 두 번째 교세를 자랑하는 종교라는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규모를 갖고 있다. 한국에는 공식적으로 한국인 무슬림 3만 명, 외국인 무슬림 10만 명 정도로 도합 약 13만 명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의 서울중앙성원을 비롯한 전국 17개의 성원과 80여개의 무쌀라(소규모 예배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간다. 한편 통계청에서 10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전국 종교인구 통계에서, 천도교나 대순진리회 등 신도 수가 10만을 넘기지 않는 다른 종교들은 독립항목으로 조사되는 데 반해 이슬람은 ‘기타’ 항목의 일부로 집계된다. 이슬람이 ‘세계 3대 종교’인 동시에 ‘기타종교’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 여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무슬림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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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무지가 낳은 편견 속 한국의 이슬람

  한양대 이희수 교수(문화인류학과)는 한국 사회가 이슬람에 대한 ‘집단적 무지’ 상태에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세계에서 이슬람 세력이 가장 미약한 사회가 한국”이라며 “교세뿐만 아니라 연구자 수, 논문발표 수, R&D 투자, 피인용 지수 등의 객관적 데이터를 살펴봤을 때 한국의 이슬람권에 대한 지식 인프라는 전세계 최하위권”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복음주의 미션스쿨을 중심으로 근대화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이슬람 사회를 바라보는 서구의 적대적 관점을 내면화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집단적 무지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연결된다. “할랄(halal,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의 총칭) 단지를 조성하면 한국이 IS에 잠식당할 것이다”, “무슬림 난민을 받아들였다간 폭력과 테러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슬람을 조장하는 인권조례를 폐지하라” 등, 편견으로 인한 혐오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키우고 있다.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과 IS를 동일시하는 잘못된 도식에서 출발한 이슬람 괴담이 한국 사회에 쉽게 확산되는 현상이 “이슬람에 대한 무지의 적확한 반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슬람 사회에서 알카에다의 지지율은 3%, IS의 지지율은 1%에 불과하다”며 “‘이슬람은 곧 테러’라는 규정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적인 역량과 지식은 부족한 상태에서 자극적이고 적대적인 정보를 통해서만 이슬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에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퍼진다는 설명이다.

  이슬람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이희수 교수는 “실제로 폐쇄적인 이슬람 정권 아래에서 억압받고 있는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그게 율법의 문제인지 낙후된 사회의 문제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잔혹하고 야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간통죄에 대한 투석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들도 있지만 터키처럼 간통죄를 아예 폐지한 이슬람 국가도 있다. 이 교수는 “이슬람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의 본질은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며 “이는 사회가 성숙해나가면서 바뀔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무조건적으로 이슬람을 여성에 대한 억압과 연결짓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지와 그로 인한 편견들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는 이슬람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려면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슬람을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편견들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희수 교수는 “이런 환경에서는 한국인 개종자의 수가 늘어나기도 쉽지 않고, 개종해도 폐쇄적인 신앙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서구중심적인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이슬람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국인 무슬림을 만나다

  이슬람이 뿌리내리기엔 아직도 척박한 땅 위에서 한국인 무슬림들은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인천에서는 한국인 여성 무슬림의 무쌀라가 문을 열었다. 무쌀라는 성원보다 작은 규모의 예배소를 뜻하는 말이다. 이 무쌀라를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국인 무슬림 파티마 송(송현숙) 씨는 “이곳이 한국 최초의 한국인 무슬림 무쌀라이자 또 최초의 여성 무슬림 무쌀라”라고 힘주어 소개했다. 한국인 무슬림들이 함께 공부하고 또 기도하는 공간, 인천 무쌀라에 직접 찾아가봤다.

  5월의 어느 금요일, 무쌀라에서 히라(남옥화) 씨, 하난(김근련) 씨, 파티마 임(임정미) 씨 세 명의 한국인 무슬림을 만났다. 마침 라마단 기간이라 무쌀라에 모인 이들은 모두 단식 중이었다. 라마단은 쿠란이 내려진 이슬람력 9월을 기념하는 의례로, 그 한 달간 무슬림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며 음식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까지 모두 조심하는 것이 원칙이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금식 해제를 알리는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렸다. 대추야자와 참외, 그리고 케이크 하나가 식탁에 올라왔다. 파티마 임 씨의 아들, 아나스가 학교에서 만들어온 케이크다. 아나스는 이날 처음 라마단 기간의 단식을 시작했다. 그래서 케이크를 만들자마자 먹는 대신 이프타르(라마단 기간에 일몰 직후 금식을 마치고 먹는 첫 식사)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모두 함께 아나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첫 라마단에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엔 “자발적으로 따르려고 결정했다는 게 중요하죠”라는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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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스가 학교에서 만들어온 케익을 나눠먹는 사람들의 모습



  다음 날인 토요일에는 사람이 많아 이프타르를 크게 치렀다. 무쌀라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할랄 닭이 튀겨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슬람에서 할랄이란 허용된 것을 의미하며, 그 반대를 하람이라 부른다. 할랄과 하람은 음식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 등 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구분인데, 그중 음식에 있어서는 식물성 음식과 해산물, 이슬람식으로 도살된 고기 등이 할랄이고 술과 마약류, 돼지고기, 자연사했거나 다른 방식으로 도살된 고기 등은 하람이다. 히라 씨는 “밖에서 파는 치킨은 할랄이 아니니까 시켜먹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가끔 이렇게 (치킨을) 만들면 애들이 정말 좋아해”라며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 마리나 되던 할랄 치킨이 순식간에 동났다. 곁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있으니 “먹을 만해요?”라는 물음이 여기저기서 날아왔다. 처음 먹어본 할랄 치킨은 여느 브랜드 치킨 못지않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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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프타르 음식을 준비하는 파티마 송 씨



  밥을 먹던 중 마그립을 알리는 아잔이 울렸다. 무슬림은 하루에 5번 예배를 하는데, 저녁 즈음에 하는 예배를 마그립이라고 한다. 예배 시간은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제때 아잔을 울려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은 필수다. 아잔이 울리자마자 수저를 놓고 메카를 향해 선 사람들의 표정이 엄숙했다. 조용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 아랍어로 된 기도문을 암송하는 목소리만이 무쌀라 안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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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그립을 알리는 아잔이 울리고, 사람들은 일제히 예배를 위해 메카를 향해 섰다.



가장 듣기 싫었던 것은 “왜 하필 이슬람이냐”는 질문

  식사의 뒷정리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둘러앉았다. 가장 먼저 조심스럽게 어떻게 무슬림이 됐는지를 물었다. 입교한 지 2년 정도 됐다는 파티마 임 씨가 첫 번째로 답했다. “남편이 무슬림이라 결혼할 때 샤하다(이슬람 신앙고백 선언)와 니카(신에게 올리는 결혼 서약)를 했지만, 그때까지는 이슬람에 대해 잘 몰랐다”고 말문을 연 그는 “결혼 후 남편이 자신은 무슬림으로 꾸준히 생활하면서도 10년간 전혀 믿음을 강요하지 않아서 오히려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무슬림이 된 과정을 설명했다. 히라 씨는 “무슬림인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아팠는데 남편이 정말 따뜻하게 배려해줬다”며 “남편을 통해 그 전까지 이슬람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모두 이슬람에 대해 무지했던 상태에서 우연히 무슬림을 만나 가까이 지내며 기존의 편견을 극복하는 경험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긍정적인 모습을 보고 받아들인 이슬람이었지만 한국인 무슬림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슬림이 됐다는 말을 들은 가족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묻자 파티마 임 씨는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가장 먼저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슬람을 잘 모르니까, 오빠 입장에서 여동생이 무슬림이라는 걸 밖에다 말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당시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받아들여주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히잡은 쓰고 오지 말라고 한다”는 임 씨의 말 뒤에는 “(히잡에 대해서는) 생계 문제도 있고”라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히잡 착용이나 할랄 음식, 하루 5번의 예배 등 교리에서 정하는 규칙들을 실천하기에 한국의 환경은 열악하다. 히라 씨는 “딸도 무슬림이라 학교에서 고기를 먹지 않으려 하는데, 먹으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밝혔다. 파티마 송 씨 또한 “예배를 제 시간에 할 수 없고, 식단을 강요당하는 환경 때문에 원래 하던 축구를 포기한 아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음식이 가장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파티마 임 씨는 “직장을 다니면 예배는 점심시간에 하는 식으로 시간을 낼 수 있지만 돼지고기와 술을 먹는 회식자리는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종교적인 실천의 어려움이 분명 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회의 편견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히잡을 쓰고 할랄 음식을 찾아 먹는 번거로움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편견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자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리에 왜 그런 걸 뒤집어쓰고 다니냐”, 심지어는 “너 IS냐”는 등의 물음을 받았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히라 씨는 “내가 한국인인데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한국말 되게 잘 하시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국인 무슬림에 대한 사회의 무지를 꼬집었다. 이들은 “히잡을 남편 때문에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아니다”라며 “내 종교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파티마 송 씨는 “이슬람을 종교로, 선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씨는 가장 듣기 싫었던 말로 “왜 하필 이슬람이냐”는 질문을 꼽으며, “그건 내 마음”이라는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한국인 무슬림으로서 설 자리” 찾기

  우리 사회는 이슬람을 모른다. 무지는 편견을 낳는다. 편견은 한국인 무슬림을 한국 사회에서도, 무슬림 사회에서도 고립시켜 작은 공동체 속에 가둔다. 파티마 송 씨는 “한국인 무슬림 중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사회에 털어놔봤자 ‘이슬람은 원래 그런 종교’라는 반응이 돌아올 뿐”이라며 “이는 사회가 이슬람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무슬림 개개인에 의한 문제도 모두 이슬람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예를 들어 한국인 무슬림 여성이 외국인 무슬림 남성과 결혼해서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 이를 신고하면 “그러게 왜 무슬림이 됐냐”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송 씨는 “한국인 무슬림이 어려움을 고백했을 때 한국 사회는 외면하고 무슬림 사회는 한국인 무슬림이 이슬람 이미지를 망친다고 비난한다면, 우리의 설 자리는 어디냐”는 물음을 던졌다.

  파티마 송 씨는 “먼저 사회에 우리가 이렇게 (이슬람을) 믿고 있고 이렇게 (무슬림으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지 속에 가려진 무슬림의 삶을 꺼내 보임으로써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일이 한국인 무슬림의 설 자리를 찾는 첫걸음이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답답하게 생각할 수 있고,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삶을 살아갈 뿐”이라며,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힘들고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사회가 이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한국에서 무슬림으로 산다는 것을 이상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한국인 무슬림은 편견을 딛고 굳게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