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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춤을 추자, 재밌으니까! 이승문 감독의 ‘땐뽀걸즈(2017)’
등록일 2018.10.25 22:31l최종 업데이트 2018.10.26 17:22l 이누리 기자(nurizto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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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댄스스포츠, 줄여서 ‘땐뽀’를 낙으로 반짝이는 여름을 보낸 여섯 소녀들에 대한 방송 다큐멘터리 ‘땐뽀걸즈’가 호평 속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재편집됐다. 조선업 침체의 여파로 흔들리는 거제, 그 한구석에 자리한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그곳에서 귓가를 스치는 불황의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는 낭랑 18세의 나날들이 청량한 색감의 화면에 그대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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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땐뽀걸즈' 공식 스틸컷



팍팍한 학교생활 속 가장 큰 즐거움, ‘땐뽀반’

  채용박람회가 열린 거제여상의 강당. “일취월장: 일찍 취업하여 월급 받아 장가, 시집가자”는 플랜카드 아래, 땐뽀반의 일원인 지현이 자기소개서를 손에 들고 취업 상담을 받기 위해 앉았다. “원래 삼성(삼성중공업)에 다니셨는데, 제가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서 운수업으로 바꾸셨어요” ‘아버지는 뭐 하시냐’는 흔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지현은 어느 저녁, 조선소를 희망퇴직으로 나온 아버지와 라면을 끓여먹으며 넌지시 묻는다. “아빠, 나 조선소 가면 되겠지?” “근데, 아빠는 왜 삼성 그만뒀어?” 조선소에 취업을 해야 할지, 다른 길도 생각해보는 게 좋을지. 지현의 걱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막막함을 거제여상의 학생 대다수가 안고 있다.

  학교와 아르바이트, 땐뽀를 병행하고 있는 현빈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어른들의 도움 없이 자매끼리 모아둔 돈으로 얻은 방은 보증금 200에 월세만 63만원이다. “쌤이 몰랐다, 그거는. 몰랐는데. 알았으면 춤추자고 말도 못하지”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땐뽀반 담당 이규호 선생님은 미안한 얼굴로 현빈을 바라보지만, 그는 현빈에게 땐뽀는 짐이 아니라 힘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땐뽀 연습을 빠져야 하는 서러움을 고깃집 유니폼을 입고 스텝을 밟으며 달래는 현빈은 체육 시간에 춤출 때가 “학교에서 제일 웃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고민 가득한 시기를 지나는 중인 이들에게 땐뽀는 둘도 없는 활력소다. 틀려도 즐겁게, 어려워도 열심히 춤출 수 있는 연습 분위기의 주역인 이규호 선생님은 벌써 십 수 년째 학교에서 땐뽀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연습이 끝날 때면 환승 횟수에 따라 차비를 나눠주고, 때로는 직접 데려다주기까지 하며 제자들을 꼼꼼히 챙긴다. 춤을 가르쳐주기 위해 셔츠를 챙겨 입고 나온 선생님을 보고 누군가 “다 컸네, 장가가자!”고 외치는 장면은 평범한 고등학교의 교실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술을 마시고 온 현빈에게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숙취음료를 사다주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뻘임에도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이규호 선생님의 애정과, 그 애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땐뽀반 아이들의 독특한 관계가 영화 내내 돋보인다.

  땐뽀를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는 동료의 질문에 이규호 선생님은 간단히 답한다. “땐스를 통해서 학교 재밌게 다니는 애들 많다 아이가. 언젠가 아줌마가 되면 안 생각나겠나. 자이브 애들 가르쳐줘야지, 재밌다 아이가” 이규호 선생님은 땐뽀를 통해 아이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려 하지도, 엄청나게 큰 성과를 이루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제자들이 재밌는 땐스를 충분히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땐뽀 땐뽀, 파이팅!”

  대회가 다가온다. 연습에 임하는 표정들이 조금씩 진지해지는 때다. 대회 직전, 안무를 다듬는 과정에서 동작이 약간 바뀌어 혼란이 더해진다. 바뀐 동작은커녕 대형조차 잘 맞추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연습할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이들의 마음을 짓누른다. 현빈과 현희의 아르바이트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이 더 빠듯해졌다. 이제는 꼬인 스텝을 마냥 웃어넘기기는 어려운지, 사이사이 주고받는 대화에도 날이 선다. 

  “쌤, 일단 저희끼리 이야기하고 올게요.” 보다 못한 이규호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그치자, 단장 시영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다. “지금 대회가 이틀 남았는데 알바 때문에 가고, 연습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진짜 이런 말 안 하려 그랬는데, 너네 둘 때문에 우리 전부 피해보는 거 아나” 직업훈련을 받으러 곧 서울로 올라갈 아버지와의 저녁 약속까지 취소해가며 연습하고 있는 시영으로서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규호 선생님이 중재에 나서고, 현빈은 고민하다 하루만 아르바이트를 가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밤이 깊을 때까지 연습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바뀐 차차차의 스텝을 몸에 익혀간다. 

  금세 대회날이 찾아온다. “대상은 무리겠고 입상이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입상 안 해도 괜찮으니 참가에 의미를 두자”는 이규호 선생님의 독려에 “승산이 있네, (땐뽀는) 신박하거든!”이라며 호기롭게 답한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손을 모아 “땐뽀 땐뽀 파이팅!”을 외친다. 며칠 후, 거제여상의 교문에는 ‘전국상업경진대회 동아리한마당 은상 - 박시영외 7명’을 축하하는 플랜카드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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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땐뽀걸즈' 공식 스틸컷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너와 내가 있었던 그 때

  철부지들이 따스한 스승의 곁에 모여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갈등을 극복해가며 대회에 도전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다는 기승전결. 흔한 성장서사라고 말할 수도 있을 땐뽀걸즈의 이야기는 그 성장을 호들갑떨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특별해진다. 카메라는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힘겹기도 한 열여덟의 하루하루를 포장 없이 보여준다. 고난이나 성취를 극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공연 자체보다 무대에서 내려와 나누는 하이파이브가, 은상이라는 결과보다 입상 소식을 듣자마자 “개이득”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 오래 남는다. 

  ‘다루기 힘든 사춘기 여고생’도 아니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 성취를 이뤄낸 장한 소녀’도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매일을 살아내는 아이들의 발자취를 기쁘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마지막 장면과 함께 흘러나온 노래처럼 “너와 내가 있었던 그 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 사랑스러운 추억에 기대 씩씩하게 내딛을 땐뽀걸즈의 다음 걸음은 또 다른 색으로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