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호 > 문화
사랑한다면서, 먹어도 괜찮은 걸까요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 (2015)
등록일 2018.12.18 00:06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4:57l 박세영 기자(precieuse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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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도 저금통도 아닌 진짜 돼지를 만나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윤은 동물을 사랑한다.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도 했을 정도다. 윤의 남편 영준은 야생동물 수의사로, 온종일 너구리, 고라니, 삵 등을 치료한다. 그래도 윤은 돈가스 마니아였고, 아들 도영은 엄마를 닮아 돈가스를 좋아했다. 아이를 키우며 무엇을 먹어도 되고,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좋은 음식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도 돼지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구제역으로 난리가 나고 200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살처분되는 광경을 보기 전까진 그랬다. 그 후 윤은, “돼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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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 공장식 축사 안의 돼지들을 보고 있다. 네이버영화


  한국에는 천만 마리의 돼지가 있다는데 막상 돼지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축사 방문 요청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돼지 만나기를 시도한 지 일 년이 지났을 무렵에야 윤은 동물보호 활동가 신채은 씨와 함께 운영이 중지된 축사를 방문할 수 있었다. 축사 한쪽에서 들려오는 돼지 울음소리를 따라 문을 열었을 때, 윤의 눈앞에는 상상을 초월한 악취와 울음소리로 가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윤은 그 순간을 지옥의 문을 연 느낌이었다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그저 돼지가 불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윤의 눈에 돈가스가 돼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돼지를 괜히 보고 왔나

 

 

돼지를 사랑하게 될수록, 혼돈은 깊어만 가고

 

  돼지가 키워지는 환경을 보고 나니 혼란은 더해져만 갔다. 장바구니에 고기를 담을 수 없었고 회식 자리에선 고기에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아 밥과 김치만 먹게 됐다. 영준은 그런 윤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윤에게 영준은 그건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답한다. 영준은 돼지나 닭이 키워지는 과정에 관심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으며 먹는 음식을 선택할 권리를 갖고 싶을 뿐이었다.

 

  대안을 찾고자 공장식이 아닌 농장을 찾아 나선 윤은 오래된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장에서 처음으로 돼지들을 가까이서 마주했다. 농장을 운영하는 원 선생님은 돼지들에게 이름을 지어줬고, 직접 맛을 봐 가며 돼지들의 사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윤은 점점 돼지들에 익숙해지며 얼굴을 구분할 수 있게 됐고, 도영은 돼지들에게 팔찌를 만들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돼지를 사랑하게 될수록 돼지를 찍어내는 공장의 현실은 더욱 가혹하게 느껴졌다. 돼지를 생각하면 자신이 사랑했던 개와 지켜주고 싶었던 호랑이가 떠올랐다. “그들은 얼만큼 다르고, 그들은 얼만큼 같을까질문은 쌓여만 갔다.

 

 

그래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진 못하겠다

 

  윤의 고민이 깊어지는 와중에도 냉장고에 붙은 치킨 쿠폰은 늘어갔고 도영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선 매일같이 육류가 나왔다. 영준은 잡식동물로서 인간의 권리를 주장했고, 도영은 마트에서 고기를 사자고 졸랐다. 공장을 방문한 윤은 길이 2m, 60cm의 철창에서 일생을 보내는 어미돼지들을 목격했다. 원 선생님 농장 돼지들의 형편은 훨씬 나았지만, 여기서도 돼지들의 고통은 존재했다. 마취 없이 거세 수술을 받아 죽어가는 수컷 돼지를 본 윤은 농장에서까지도 딜레마를 느꼈다.

 

  결국 윤은 가족의 밥상을 바꾸기로 했다. 고기 없이 요리했고, 남편 영준에게 육식을 하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콩고기 식당을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 육식주의자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외로운 일이었다. 소와 닭, 돼지를 먹지 않을 뿐인데 영준이 해준 요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사라졌고, 다른 식사 자리에선 눈총을 받았다. 식사를 위해 찾은 푸드코트에선 비 육식주의자를 위한 음식 한 접시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젤리가 먹고 싶다고 우는 도영을 보며 윤은 좋은 음식은 무엇이고,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다 그만둬버릴까.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까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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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과 도영이 돼지들과 교감하고 있다. 네이버영화


  원 선생님은 여름을 맞아 야생초 특식까지 먹여가며 정성스레 돼지를 키웠지만, 물웅덩이조차 갖추기 어려운 축사에서 돼지들은 더위에 지쳐갔다. 지친 와중에도 출산, 임신, 수유를 반복하다가 때가 되자 트럭에 실렸다. 윤이 밥을 주고,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이름을 불렀던 돼지들이었다. 윤에겐 어쩔 수 없이 타협 아닌 타협을 하게 된다는 원 선생님의 말보다 트럭에 실린 돼지들의 눈이 더 깊이 다가왔다. 윤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비 육식주의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조류 독감이 전국을 덮쳤고, 또다시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다. “오리를 잡잖아요, 그래서 들면 따뜻해요. 그리고 심장이 뛰어요. 근데 그냥 집어넣는 거예요. 한편으론 나한테 바이러스가 와서 내 아기한테 옮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상부 명령에 의해서 살처분에 참여해야 했던 한 공무원은 자신이 갖게 된 고민과 걱정, 트라우마를 털어놨다. 평소엔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냈던 것들이 크게 다가왔다고 했다. 양심과 생명, 잔인함,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육식과 맞닿아있다.

 

  돼지를 보고, 교감하고, 사랑하게 된 윤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이 좁아지고, 영준과 갈등을 겪고, 도영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정이다. 하지만 윤의 결심은 윤이 느끼는 막막함도, 고민도, 갈등도 무엇 하나 해소해주지 못한다. 혼자 힘으론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주변에선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다. 영준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쉬운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런데도 왜 치킨을 좋아하냐는 물음에는 난 원래 치킨을 별로 안 좋아해라고 대답할 뿐이다. 원 선생님은 돼지들을 위해 밀밭을 만들고, 특식을 준비하면서 정성스레 돼지들을 키우지만 촬영을 마칠 무렵 윤에게 돼지고기를 선물했다. 끊이지 않는 죄책감과 고민 속, 윤의 삶은 영화가 끝난 뒤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