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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과 일이 하나가 되는 순간, '덕업일치' '윤덕원의 덕업일치 라이브'
등록일 2018.12.18 10:00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4:56l 이누리 기자(nurizto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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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일, 즉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의미다. 얼마 전, 한 뮤지션이 모든 ‘덕후’들의 꿈인 덕업일치를 이루기 위해 직접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올렸다. 이 스케일 큰 덕업일치의 주인공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이자 베이스인 윤덕원 씨다.

  지난 10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라이브홀에서는 ‘윤덕원의 덕업일치 라이브’라는 이름의 시리즈 공연이 펼쳐졌다. 2주에 한 번씩 총 4회 진행된 이 공연은 윤덕원 씨가 호스트로서 그가 ‘덕질’하는 뮤지션들을 섭외해 함께 무대를 꾸미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1회부터 4회까지 각각 신해경, 김사월, 밴드 ‘9와 숫자들’의 9(송재경), 재주소년이 게스트 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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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업일치 라이브' 공식 포스터 ⓒ스튜디오브로콜리



덕업일치 라이브 with 9, ‘방공호’부터 ‘물먹은 아리랑’까지

  중학생 때부터 브로콜리너마저의 팬이었으며 대학에 들어와서는 뒤늦게 9와 숫자들에 ‘입덕’한 기자는 순수한 ‘덕심’으로 3회차 공연의 현장을 찾았다. 3회차 공연의 주인공이었던 9는 올해 9주년을 맞은 밴드 ‘9와 숫자들’의 보컬이자 리더다. “겁나게 고독한 작가주의 뮤지션”이라는 덕원의 농담 섞인 소개말과 함께 무대를 가리고 있던 스크린이 올라갔다. 9의 솔로곡인 ‘방공호’와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들어와요 들어와요 초라하지만 여기만은 안전해요”라는 가사가 이어질 무대로의 초대장처럼 울려퍼졌다.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다”며 자신의 음악이 지향하는 방향을 밝힌 9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그대 기쁨은 무어”냐 묻는 ‘통근버스’, “나의 집은 스티로폼으로 되어 있으니” “그렇게 따스한 눈빛 내게 제발 주지 말”라 부탁하는 ‘스티로폼’ 등을 연달아 불렀다. 평일이라 관객들이 피곤할 텐데 선보일 곡들이 졸려서 걱정이라던 9의 말과는 달리, 1시간 반 남짓의 시간은 몰입도 높은 무대들로 가득 채워졌다. 현재는 공개돼 있지만 공연 당일에는 미발표곡이었던 ‘최선’을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났다. “최선은 고사하고 최악을 면하기도 어려운 오늘의 우리에게 자꾸만 뭐라 하지 말”라며, “이 길이 아니라고 느낄 때 내가 최선을 다해서 포기”하겠다고 토로하는 노랫말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대학생 때부터 이어져온 9와 덕원의 인연을 드러내는 소소한 재미요소도 많았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서울대 내의 음악인들이 창작곡을 모아 발매한 앨범 ‘뺀드뺀드 짠짠’을 계기로 만나 ‘관악청년포크협의회(청포협)’, ‘붕가붕가레코드’ 등에서 함께해온 친구 사이다. 공연 중반의 토크 시간, 덕원은 ‘뺀드뺀드 짠짠’ 3집에 실린 9의 노래 ‘물먹은 아리랑’을 부르며 등장했다. 흘러나오는 ‘흑역사’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무대 한구석으로 숨은 9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님 가고 내 영혼엔 고통이 폐 속엔 니코틴과 타르 뿐”을 열창하는 덕원의 모습이 유쾌한 장면을 연출했다. 노래에 대한 뒷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무대 뒤편에 설치된 화면에는 청포협 활동 당시의 사진들이 띄워졌다. ‘간격은 여전히 한 뼘’, ‘꽃무늬 일회용 휴지’ 등 대학 시절 만들었던 노래들을 함께 부를 때는 청포협의 재결성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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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브로콜리



음악과 연출의 ‘곱하기’를 꿈꾸며

  공연장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다른 의도 없이 공연을 즐기러 온 팬의 마음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이 기획을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반신반의하며 넣은 인터뷰 요청에 긍정적인 답이 돌아와 윤덕원 씨에게 직접 공연의 기획 및 준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기자의 덕업일치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윤덕원 씨는 “음악을 하다 보면 서로 의도적으로 만나지 않는 이상 (다른 뮤지션들과) 교류할 일이 별로 없다”며, 다른 아티스트와 공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덕업일치 라이브라는 기획의 출발점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몇 팀이 공연 시간을 쪼개서 각자의 무대를 펼치는 단순한 합동공연은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함께하는 그 분하고만 만들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었다”며 “그러다보니 공연 전체적인 연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 속에서 덕업일치라는 공연의 컨셉이 정해졌다. 윤 씨는 “어떤 분들을 초대할까 생각했을 때, 일단 내가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과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윤덕원_신해경.jpg1회차 공연의 게스트인 신해경과 덕원의 모습. 이날 덕원은 신해경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왔다. ⓒ스튜디오브로콜리


  함께하는 뮤지션의 매력을 극대화할 방법을 궁리하다 보니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을 여러 가지 떠올릴 수 있었다. 9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물먹은 아리랑’ 외에도 모든 시리즈에 재미있는 연출이 하나씩은 들어갔다. 1회차 공연에서 윤덕원 씨는 게스트였던 신해경의 트레이드마크인 짧은 일자 앞머리와 안경을 그대로 복사한 채 노래를 불렀다. 2회차에서는 게스트 김사월이 듀오로 활동할 때의 파트너인 김해원의 분장을 한 윤 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공연에서 그는 게스트 재주소년의 대표곡인 ‘귤’의 무대가 한창일 때 귤 탈을 쓰고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게스트와) 전체적인 흐름은 공유했지만 내가 준비한 결정적인 한 방은 마지막까지 공개하지 않았다”며 “소위 말하는 ‘리얼’이 나올 수 있는 포인트를 남겨두고 계획했다”고 밝혔다. 건조한 합동공연에서는 부각하기 어려운 각 뮤지션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장치였다. 그의 서프라이즈에 게스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무대 위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예상할 수 없었다. 윤 씨는 “그래도 9가 ‘물먹은 아리랑’을 같이 불러줘서 고마웠다”며 웃었다.


윤덕원_김사월.jpg2회차 공연에서, 김해원의 분장을 하고 무대에 등장한 덕원과 게스트 김사월은 함께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을 불렀다. ⓒ스튜디오브로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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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소년의 '귤' 무대에 귤 탈을 쓰고 올라온 덕원은 재주소년에게도 같은 탈을 씌웠다. ⓒ스튜디오브로콜리



  윤덕원 씨는 “아티스트와 콘텐츠의 ‘곱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음악과 연출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공연을 보신 분들이) 다들 ‘진짜 준비 많이 했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며, “보통은 이런 걸 안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출과 더불어 영상과 음향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매 회차마다 고화질의 후기 영상이 브로콜리너마저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다. 그 중 하나에는 “(지금까지) 본 공연 영상 중에 화면도 제일 예쁘고 소리도 (가장) 예쁘게 나온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윤 씨는 “1회차 공연을 함께 준비한 신해경의 경우, ‘(라이브가)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다’는 말까지 해줬다”며 의도했던 바가 결과로 나온 것 같아 뿌듯했다고 전했다.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 지속 가능한 덕업일치

  덕업일치 라이브의 차기 시즌도 계획하고 있냐는 질문에 윤덕원 씨는 “이번 공연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을 받은 부분이 있어 작은 규모에 비교적 저렴한 티켓값으로도 (연출, 음향 등에) 신경을 많이 쓸 수 있었지만 이런 형식으로 지속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어떻게 아이디어를 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과거에 라이브클럽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도 사람들이 ‘지금 가면 뭔가를 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정해진 때마다 공연을 했다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그는 “(다음 공연의 형식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콘텐츠 산업의 중심이 SNS, 유튜브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는 여전히 “좌판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윤덕원 씨와 9, 밴드 ‘눈뜨고코베인’의 깜악귀(김남훈), 장기하 등이 활동하던 2000년대 초반이 관악 문화자치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에도 그는 “그 때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후에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았으면 그것도 ‘그 때 그런 앨범이 있었지’ 정도로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기라는 인식도 이후의 평가들이 만든 결과”이기에 지금 전개되고 있는 활동들이 어떻게 남을지는 “지나봐야 안다”는 견해다. 윤 씨는 다만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더라도 뭔가를 꾸준히 내놓을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잊히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한때 몸담았던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가 내건 모토처럼, 그는 여전히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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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과 9의 공연 후 기념사진. 둘은 15년이 넘도록 알고 지낸 친구 사이다. ⓒ스튜디오브로콜리



  그렇다면 그의 ‘덕업일치’도 과연 지속 가능할까. ‘좋아하는 뮤지션을 소개한다’는 하나의 컨셉 안에서 계속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겠다”는 기자의 말에 윤덕원 씨는 “그게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학교를 다닐 때나 브로콜리너마저 활동을 하면서나, 제한된 상황에서 재밌는 걸 만들어보는 일에는 익숙해 있다”는 그는 이 부분에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홍대 라이브홀 규모에서 브랜드 장기 공연을 성공시킨 최초의 팀”인 브로콜리너마저로서의 경험 등이 그 자신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윤덕원 씨의 ‘덕업일치 라이프’는 모양을 바꿔가며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덕질은 덕후를 춤추게 하는 법이다. 음악과 공연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그라면 덕업일치 라이브의 순간들을 통해 영감을 받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가 만들어낼 다음 번의 ‘덕업일치’를 보며 무기력한 몸을 또 한 번 일으킬 힘을 얻을 기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