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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동생과 함께한 시설 밖 400일 장혜영 감독의 ‘어른이 되면(2018)’
등록일 2019.02.27 21:03l최종 업데이트 2019.02.27 21:03l 박세영 기자(precieuses@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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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정이 13살이던 어느 날 가족들은 그를 경기도의 한 장애인 시설로 입소시켰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헤정은 둘째 언니 혜영이 그녀를 데리고 나오기까지 18년의 세월을 보낸다. 혜영은 2016년 동생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고 그때부터 자매는 주말을 같이 보내거나 여행을 다니며 준비 기간을 가졌다.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혜정이 차츰 바깥에 적응해가고 자매가 다시금 가까워졌을 무렵, 자매는 드디어 함께 살기 시작한다.

 


시설 밖에서, 함께

 

  어린 시절 혜정의 곁에는 늘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를 도울 제도나 지원은 부재했고, 혜영이 온 종일 혜정의 곁에서 그녀를 돌볼 수 밖 없었다. 혜영은 ‘(당시에) 혜정이의 언니가 된다는 것은 내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혜정은 온전히 가족의 책임이었고, 그들 가족의 뒤에는 누구도 없었다. 사회는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움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보호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삶을 강요했다.


  자매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 세상은 혜정이 시설로 갈 수 밖에 없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경기도에 살던 혜정이 서울로 오자마자 이용할 수 있는 복지 프로그램은 아무 것도 없었다. 혜영이 눈여겨보던 한 프로그램은 서울시 거주 6개월 이상이라는 지원 자격을 처음부터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 혜정을 돌보기로 한 혜영의 결심은 더 이상 그녀의 삶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혜영은 혜정을 시설로 보내고 대가로 얻어진 시간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진짜 자신의 시간을 찾기를 바랐다. 일단 6개월이라는 기간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혜영은 혜정이 자신 없이도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은 가능성을 시도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 정말 혜정을 위한길인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활동해보기 위해 자매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이들을 위해 교육을 진행하는 학교다. 학교에는 아프리카 댄스를 배우거나, 함께 영화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수업들이 마련돼 있다.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혜정이기에 혜영과 촬영감독 정민은 혜정이 지나치게 흥분할지 모른다는 걱정과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이 함께 아프리카 댄스를 출 때, 혜정은 교실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은 채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번 해보자는 혜영의 말에 혜정은 잠시 참여하는 듯 하다가도 금새 돌아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정민은 혜정이 내가 음악을 좋아할 순 있지. 하지만 이 음악은 아니야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혜정이 하나의 독립된 개성과 욕구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혜정은 다 같이 영화를 볼 때도 재미없어했고, 하루의 소감과 이름, 취미를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도 도통 집중하지 못했다. 대답 대신디즈니랜드 가봤어요’ ‘에릭 왕자를 만났어요같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거나 대화 중에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혜영은 자신이 그런 혜정의 행동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건지, 혜정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혜정이에게 무엇을 원했던 걸까?’ ‘나는 노들야학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을까?’ ‘나 자신에게 나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이어지는 질문 속에는 낯선 혜정을 마주한 당혹스러움과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막막함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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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과 혜정이 바닷가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다. 네이버 영화



  혜영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둘만의 시간을 갖고자 혜정과 떠난 바닷가에서 혜영은 이제 막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한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마음을 정리한다. 조바심을 버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보기로 결심한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혜정이 시설 밖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곁에서 필요한 활동을 보조해주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엄마에게 24명의 친구가 있어 매일 한 시간 씩 돌봐줬다면 우리는 지금도 같이 살지 않을까혜영은 생각한다. 중증장애인들 곁에서 필요한 활동을 보조하는 활동보조인의 급여를 국가가 많은 부분 지원하는 제도인 활동보조사업이 국민연금공단에 있다. 혜정을 데리고 활동보조사업의 등급심사를 받으러 간 혜영에게 기관 담당자는 혼자 화장실은 갈 수 있는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을 순 있는지, 이것 저것 물어왔다. 그리고 국민연금공단 측은 한달 뒤 월 94시간의 서비스 시간을 통보했다. 94시간인지에 대한 의문은 뒤로하더라도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관할 지차체의 모든 활동보조인에게 연락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매는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했다.

 

  혜영은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생긴 틈을 자신과 혜정의 친구들로 채워갔다. 뮤지션인 친구 인서는 혜정에게 주 3일 음악을 가르치기로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와 춤에만 반응하던 혜정은 조금씩 박자와 가사에 맞는 노래를 배웠다. 혜정은 친구들과 함께 혜영의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혜영이 제주도로 일을 하러 떠났을 땐 친구들과 함께 공연도 보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파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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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으로 혜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혜정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네이버 영화



  혜영은 동생을 시설로 보낸 지 17년이 지나고 나서야 혜정이 시설에 갇혀 지내는 삶을 선택한 적이 없다는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긴 시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에게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며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던 혜정이 어른이 될 때는 언제일지생각한다.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단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혜영은 그것이 결코 혼자 살아가는 상태는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도 결코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갈 순 없다. 그렇기에 혜영은 각기 다른 지원과 도움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에서, 혜정도 필요한 지원을 받으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인서에게 노래를 배운 혜영과 헤정이 작은 공연에서 함께 부른 노래의 가사다. 시설 안에 갇힌 채 가려져 왔던 장애인들에게 시설 밖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지원 제도는 열악하고, 차별적인 시선과 태도는 공고하다. 혜영과 혜정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