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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예쁘게 꾸미는 거 아냐?” 공공디자인, 아름다운 디자인을 넘어 배려하는 디자인으로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우람 기자 (knas1004@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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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전시. ‘디자인서울’을 알리는 목소리는 요란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 지면에 디자인 관련 기사가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디자인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21세기는 문화가 경쟁력이고, 디자인이 그 어떤 산업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외쳤다. 지난 9월 ‘행정중심복합도시 통합디자인 구현을 위한 워크숍’에서는 “디자인 명품도시를 위해 노력하자, 디자인이 곧 도시 경쟁력을 말해준다”는 말이 오가기도 했다.
최근 쏟아지는 디자인에 관련된 발언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기능과 효율에 초점을 맞추는 산업디자인을 디자인의 전부인 것처럼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디자인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하지만 오히려 디자인의 본래적 의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는 얕아졌다.

디자인, 아름다운 것이 전부가 아니야
건국대 현용순 교수(디자인학부)는 “디자인이란 단순히 물건을 외형적으로 세련되게 만드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계획적인 행동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흔히들 형태를 다루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본래 디자인이란 사고도 포함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디자인은 단순히 심미성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 환경에 대해서 다각적인 조망을 획득해야 한다”고 현 교수는 덧붙였다.

현 교수는 “디자인은 외형만을 다루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디자인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연세대 이연숙 교수(주거환경학과)는 저서 에서 “산업화로 인해 기계적 효율성만이 강조돼 본래 디자인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 교수는 산업디자인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상업적으로 포장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쓸데없는 장식을 하는 것이나, 상품의 정보를 알린다는 미명 하에 광고 경쟁을 하는 것은 모두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자인=산업디자인’이라는 우리나라의 편향된 이해는 몰개성적이고 무의미한 상업주의의 범람을 낳았다. 그리고 이와 같이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디자인 중심적 사고가 공공디자인에 적용될 때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전문가들은 ‘디자인서울 프로젝트’를 그 문제의 전형이라 지적한다.

목적을 망각한 디자인의 도시
2007년 4월, 서울시는 도시디자인 분야를 총괄할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발족하고 디자인을 시정의 중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 해 10월, 국제산업디자인단체총연합회 총회는 이러한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의 의지를 인정해 서울시를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몇년 새 정부와 서울시는 디자인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지나치게 빽빽한 서울시를 재배치하고 불필요한 시설을 없앰으로써 서울시를 ‘비우고’ 표지판이나 여타 시설물을 일관된 가이드라인을 통해 ‘통합시키며’ 시민과 행정, 전문가 사이의 소통을 통해서 ‘더불어 하는’, 그리고 환경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디자인 서울을 만들겠다는 디자인 전략을 선보였다.
그러나 서울시의 정책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공공디자인의 특성상 일의 진행이 하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김영대 대구 도시디자인 총괄 본부장은 “공공디자인의 미명 하에 시행된 결과, 과도한 장식과 어색한 표현이 난무한다. 요란하고 울긋불긋한 포장은 치졸하고 반환경적인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현용순 교수는 “각 구별로 다른 표지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 서울시의 도시디자인은 통합적인 측면도 부족하다. 더구나 간판의 일률적인 정비는 조화를 파괴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시민들의 삶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거세다. 거리의 가판대를 새 디자인으로 고치는 사업은 단순히 보이는 것만을 고려했을 뿐, 실제 상인들의 삶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여 실용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시행 기간이 너무 촉박했고, 시민들과의 의사소통도 없었기 때문에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는 비판도 있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절실해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서울시 개발은, 서울을 더욱 ‘가득 차고’, 원활한 소통도 없이 ‘요란하고 어지럽게’만 바꾸고 있다. 이런 불친절한 서울시는 본래의 의도와 상당 부분 거리가 멀어 보인다.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 권영걸 씨는 ‘기능과 효율만을 중시하고 역사를 단절하는 하드시티(Hard City)’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이 만나고 인간을 중심에 두는 소프트 시티(Soft City)’로 서울이 나아가야 한다며 ‘소프트 서울’을 역설한 바 있다. 그는 또한 지난 7월 충주시에서 가진 강연을 통해 “디자인이란 공공성이 전제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률적인 형태로 일사불란하게 도시를 뜯어고치려고만 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외형적인 가치에 기반을 두고 상업주의에 매몰된 디자인관이 사회에 만연한 상태에서 도시디자인은 단순히 구색맞추기, 도시홍보 수단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현직 디자이너는 “물론 산업디자인을 무조건 지양해서도 안 되지만, 디자인이 본래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는 ‘디자인서울’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살림과 살핌, 그리고 어울림
이런 상황 속에 올 9월에 개최된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의 프로젝트전은 앞으로의 디자인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프로젝트전은 크게 ‘살림(Design to Save)’, ‘살핌(Design to Care)’, 그리고 ‘어울림(Design to Share)’ 3개의 전시로 구성됐다.

‘UD탐험단’의 한 어린이가 광주역에서 조사한 결과를 전시하고 있다.


우선 ‘살림’ 전은 지구환경을 살리기 위한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짜여졌다. 세계 각 국의 에코 디자인 제품들이 전시되고, 지속가능한 작품의 사례도 선보였다. ‘살핌’ 전은 어린이나 노인,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UD)’을 소개한다. 지난 7월 학생과 노인, 장애인으로 구성된 34명의 ‘UD탐험단’가 광주 도심을 돌아다녔다. UD탐험단은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디자인적 요소를 찾아서 이를 전시하고 차후 이를 적극적으로 환경개선사업에 반영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마지막으로 ‘어울림’ 전은 광주의 과거와 현재를 조화롭게 한데 묶는 기회를 제공한다. 양림동 역사마을의 한옥과 주변을 전시공간으로 하여 현대적 디자인과 접목을 시도한다. 지역디자이너들의 양림동 역사문화 골목 탐방도 주목을 끈다.
“환경을 생각하고 약자를 배려하며 사람과 사람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지는 디자인”이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테마는 상업적인 디자인의 한계를 넘어 진정 아름답고 쾌적한 디자인 환경을 구성하는 데 좋은 영감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2009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은병수 총감독은 “상업적인 성격을 배제할 수 없는 디자인 분야가 지금까지 서구의 것을 답습하고 받아들이는데 그쳤다면 이제는 우리 것에 눈을 돌리고 이를 통해 세계 디자인계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할 만한 역량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디자인비엔날레의 취지를 밝혔다.

‘아름답기만 한’ 디자인을 잊고 ‘배려하는’ 디자인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이상의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 비록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서울시가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됐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서울시도 공공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성숙시켜 나가고 있다. 일례로 서울시는 지난 8월, 장애인과 어린이, 노인을 비롯한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보행할 수 있는 보도환경 조성을 위해 ‘장애없는 보도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기존의 보도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부적절한 편의시설만 난립하고, 오히려 불편만을 가중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서울시내에 새로 만들어지는 모든 보도에 폭 2m 이상의 무장애 보행안전구역이 조성된다. 무장애 보행안전구역에는 분전함이나 차량 볼라드 같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점자블록의 난립으로 인한 시각장애인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자블록도 통합하도록 했다. 또한 도로단차, 즉 보도와 도로의 높이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도로단차가 어느 정도 있어야 도로의 경계를 인식할 수 있어 안전하나, 반대로 지체장애인의 경우 도로단차는 보행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양측의 의견을 한데 반영하여 디자인을 해야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해 4개 장애인 단체와 서울시 관련 부서 간의 긴밀한 협의로 이뤄진 결과”라며 “이후에도 매년 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보도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직접 당사자들의 의견을 직접 반영하고 ‘유니버설 디자인’의 요소를 충실히 반영했다는 점에서 ‘요란한 전시행정이다’, ‘일회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디자인서울 프로젝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사례라는 평이다.

서울시는 ‘장애 없는 보도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행안전구역을 확보하고 경고용 띠를 조성했다.


이라는 책에서 디자인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고민한 빅터 파파넥은 디자인의 본질을 말하면서 “디자이너에게 높은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을, 대중으로 하여금 디자인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디자인이라는 과제 앞에 고민해야 하는 자는 정부나 서울시만은 아니다. 시민들의 디자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