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호 > 문화
무인도 안 작은 사회의 이야기 <로스트>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2013.10.31 04:17l 박정은 기자 (nautes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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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이데일리」에는 드라마 시즌 3에서 배우 김윤진이 28억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도 결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작은 이벤트였겠지만 우리는 모두 그녀의 할리우드 성공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는 다인종적인 배우구성을 통해 다양한 민족을 대상으로 높은 시청률 확보를 노렸다. 실제로 미국 내 인종비율이 백인(67%), 히스패닉(14%), 아시아계(12%), 기타(3%)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제작진들은 정말 치밀했던 것이다. 사실, 제작진의 의도대로 우리 한국인은 ‘김윤진’이 등장한다는 사실하나만으로 ‘’를 편애하고 있지 않은가?
는 장소, 소재, 방송기간 등에서 미국 드라마 중에서도 ‘블록버스터급’이다. 미국의 드라마를 ‘42분짜리 블록버스터영화’라고도 명명할 만큼, 그 막대한 제작비는 가히 짐작하기 힘든 수준인데 의 한 회당 제작비는 46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가 이렇게 큰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영국, 뉴질랜드 등으로 판권을 판 데에 따른 수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 리우데자네이루를 새 시즌의 첫회 배경으로 한 것도 거대한 남미시장을 고려했던 것임을 생각해볼 때 .>의 다인종적 구성은 드라마의 전세계적인 인기에도 한몫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인종적인 구성은 작품 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인, 히스패닉, 흑인, 아랍인, 한국인 등의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직업 구성은 그 누구의 관심도 놓치지 않으려는 감독의 욕심을
반영한다. 감독은 를 단순히 사람들이 즐겨보는 ‘entertainment'로서의 드라마가 아닌 철학적이고 종교적, 평화적 메세지를 전하는 매개체로 삼고 있다. 이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새넌(백인)과 사이드(아랍인)의 사랑, 진(한국인)과 마이클(흑인)의 우정으로 엮인 관계는 현실의 통념과는 매우 다르다. 인종갈등을 다루기로 유명한 스파이크 리의 영화 에는 한국인과 흑인의 반목이 적나라하게 그려져있을 만큼, 실제로 흑인들에게 있어 한국인들은 그다지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역으로 ‘외국인=백인’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흑인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고정관념들은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에 대한 시각이다. 시즌 1-6편에서 한국인 선이 사는 집은 궁궐로 묘사된다. 그 궁궐은 일본이나 중국의 성처럼 생겼다. 또 정원을 장식하는 방식도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과는 차이가 있고 집안 곳곳에는 붉은색 장식품과 가구들이 가득 차있다. 이는 미국인이 ‘한국’을 독자적인 특징을 가진 국가로 파악하기 보다는 ‘아시아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극중에서 선의 아버지는 큰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인이지만 마치 마피아의 보스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업을 처리하는 면에 있어서도 경쟁력보다는 뇌물이나, 비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부정적인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시즌 1을 통틀어서 등장하는 ‘진’의 가부장적인 모습은 수차례 기사화될 정도로 두드러진다. ‘웃는 표정보다는 무표정한 얼굴’은 서양인들이 동양인에게 갖고 있는 선입견을 그대로 드러낸다. 김윤진은 인터뷰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결점을 갖고 있는데 진의 결정이 가부장적인 모습일 뿐”이라 말했지만 왜 ‘굳이 ’진‘의 결점이, 그가 속한 사회를 표상하는 듯한 ‘가부장제적인 모습’이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한국은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미국인들은 한국을 생각할 때, 나라 자체에 대해 이해하기보다 ‘한국’과 관련된 이슈(북한, 한국전쟁)를 연결짓는게 일반적이다. 또 미국인들의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베트남’과 ‘한국’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에피소드에서 한국을 묘사할 때 등장한 ‘베트남풍’배경을 설명한다. 최근 한 신문기사에는 한국을 보는 미국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좋아졌다는 내용이 실렸지만, 역시 이는 FTA 체결로 인한 ‘한미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인 것이지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수준이 긍정적이라는 내용은 아닌 것이다.
한편 에서는 미국사회의 문제점들 역시 인물의 각 에피소드에 하나씩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판된 Larry Elder의 'Ten Things You Can't Say in America(미국에서 절대 말하면 안되는 10가지)’의 10가지 중 에서 살펴볼 수 있는 건 다음 세 가지다. △인종차별, 흑인이 백인보다 더 심하다 △ 미국은 미혼모 공화국이다 △ 마약과의 전쟁, 미국은 또다시 패배하고 있다. 에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의미의, 독특하고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코리안 저널」 2004년 6월호에 의하면 미국은 현재 출산한 여성 전체의 33%가 미혼모이며, 특히 15세에서 18세까지 총 인구의 10명 중 1명이 미혼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에 미혼모 클레어가 등장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등장인물 가운데 찰리는 한 때 유명한 밴드의 베이시스트였으며 마약중독자다. 비행기가 난파된 이후에도 그는 마약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는 시즌 1에서 로크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마약중독에서 벗어나지만 시즌 2에서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 이런 찰리의 모습은 미국 내 마약문제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의 마약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상태다. 미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할 만큼 마약은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는 시즌 4를 끝으로 종영한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떨어지는 시청률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하는데 너무 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만큼 이 이야기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한 몫 했을 듯 하다. 다른 ‘폐인’들처럼 엔딩을 맞춰보는 것도 좋지만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그대로 흘러나오는 현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