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호 > 문화
마술적 사실주의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Gabriel Garcia Marquez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최유정 (서어서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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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난장이를 합쳐서 한 명의 거인을 만들어낸다든지, 열 손가락을 모두 열 마리의 전갈로 변하게 한다든지, 장난기 많은 아이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고슴도치를 한 마리 꺼내는 것과 같은 마술 앞에서 누구나 신비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설령 '마술은 고도의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믿고싶은 사람에게도 마술은 신비한 그 무엇이다. 또한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거짓 아닌 체 말하는 광고의 어법에 비하면 이런 마술의 어법은 솔직한 데가 있다. 광고가 '너희들은 속고있지 않다. 너희들은 그것을 믿어야 한다. 너희들의 행복은 그 믿음 속에 있다.' 라고 말한다면 마술은 '나는 거짓이다. 너희들은 속고 있다. 너희들은 그것을 잘 안다. 그러나 즐겁지 않니? 마술은 이렇게 즐거운 거짓말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콜롬비아 출신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Garcia M aquez)는 작가보다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비록 실제로 마술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대신 자신의 꿈을 왕성한 문학작품의 창작에서 꽃피움으로써, 바로 중남미 붐(Boom)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 부상한다. 그에게 있어 마술적인 것은 현실로 변하고, 반대로 현실적인 것은 마술로 변하곤 하는데, 바로 이런 의미에서 양자의 경계는 무너지고 결국 '총체적인 현실'에 다다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Realismo Magico)'의 경향이다. 물론 이는 대략의 정의일 뿐 이것이 '마술적 사실주의'란 이름 하에 거론될 수 있는 수많은 중남미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표현을 완전히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주의' 라는 말이 내포하는 '재현성'과 '마술적'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글쓰기의 실험성'은 단순한 기록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중남미 현실을 보여주는, 다양성을 융합하고 통합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중남미 역사와 문화 및 사회문제를 표현하는데 있어 전통적인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문학 서술의 한계를 느끼고, 과감하고 혁신적이며 실험적인 테크닉을 사용하려는 노력이다. 그렇다.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비록 실제로 마술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대신 자신의 꿈을 왕성한 문학작품의 창작에서 꽃피운 것이며, 중남미 붐(Boom)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 부상한 것이다.

그는 과장하고, 왜곡하거나 과감히 생략하며,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뒤집어서 배치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마술적 사실주의 안에서는 실제 사건과 공상, 역사와 설화, 객관과 주관이 뒤섞인다. 마치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 어디까지나 세계의 총체상에 대한 재현이라는 소설 고유의 특성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친숙한 설화적 서술 방식과 평이한 구어체를 택함으로써 대중성의 확보에도 성공한 그는 '소설은 죽었다'라고 절규하며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구미 소설의 운명에 유력한 탈출구를 제공했음은 물론이다. '죽은 것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의 부르주아적 형식, 곧 부르주아적 사실주의'라는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호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렇듯 천재적인 이야기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를 빼놓고는 현대 중남미 문학을 논할 수 없다.

중남미 현대소설은 '붐(Boom)'소설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데, 이는 말 그대로 폭탄의 굉음을 나타내는 의성어이며, 동시에 '갑작스런 인기상승'을 표현하는 말이다. 제3세계 문학 혹은, 유럽의 종속문학으로 불리며 주변부 문학에만 머무르던 중남미 현대소설이 가르시아 마르께스, 바르가스 요사, 훌리오 꼬르따사르, 기예르모 까브레라 인판떼 등의 일련의 작가들에 힘입어, 6-70년대에 들어 대성황을 이루게 된 '현상'을 일컫는 말이 된다. 이는 하나의 문학사조라기 보다는 시대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러한 붐소설의 전례 없는 성공으로 인해 중남미 문학은 세계문단을 주도하게 되는 명실상부한 문학의 중심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기본적으로 스페인어 인구가 차지하는 시장의 규모가 매우 방대하다는 점과 스페인어로 쓰여진 많은 작품들이 그 문학적 성공에 힘입어 즉시 영어나 불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는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하에서의 성공도 간과할 수 없다. 바로 이 시기, 가르시아 마르께스의『백년동안의 고독 Cien anos de soledad (1967)』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세인의 주목을 받으며 순식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다. 작품은 스페인과 중남미를 아우르는 광대한 스페인어권을 겨냥하여 대량으로 인쇄되었고, 곧이어 세계 주요 언어로 속속 번역되었다. 당대의 비평가들로부터 쏟아진 찬사는 그를 단번에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며,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는 방법은 무한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작게는 자유당과 보수당의 끊임없는 내전의 피비린내로 얼룩진 콜롬비아의 역사이며, 크게는 1492년 이후의 스페인의 식민주의, 그리고 영국의 득세와 19세기 말 이후 미국의 영향 하에서 역사적 주체성 상실과 정치?경제적 종속을 감수해야만 했던 '수탈과 정복'이라는 중남미 역사 전체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형상화된 인물과 사건은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되었거나 조부모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모델로 하는데, 보수?자유 양당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체결된 '네엘란디아 조약(1903년)'이나 '바나나 농장의 대학살 사건(1928년)' 등은 실제 역사이다. 하지만, 신화 비평적인 관점으로 보면, 백년동안 이어지는 마꼰도의 역사는 어쩌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인류의 타락사일 수 있다. 또한 결정론적이며 운명론적인 내용의 세계관은 고대 희랍 비극 혹은 기독교의 성경(Bible)적 구조와 일맥 상통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도 있다. 테레시아스가 예언한 대로 오이디푸스의 운명이 흘러갔듯, 테레시아스를 닮은 예언자 멜키아데스가 양피지에 이미 적어둔 바대로 마꼰도의 운명이 전개된다. 근친상간이라는 씻을 수 없는 원죄는 이미 예견되어 있듯이 돼지꼬리 달린 아이를 태어나게 했고, 이로 인해 백년동안 지속되었던 마꼰도의 운명은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 창조부터 멸망까지라는 '직선적인 시간관' 속에는 동시에 '순환적인 시간관'도 등장하는데, '아우렐리아노'와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의 후손들이 그 이름이 가진 운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시간관은 이야기를 복합적이고 다층적 구조로 상승시킨다. 또한 장치적인 면에서 '마술적 사실주의'의 요소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죽은 자와 산 자가 대화를 나누고, 죽음을 알리는 핏줄기가 동네를 가로지르며, 4년 11개월 동안이나 계속 내리는 비, 죽음과 함께 노란 꽃송이들이 쏟아지고, 미녀는 하늘로 승천한다. 즉, 가르시아 마르께스는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총동원해 마꼰도라는 공간을 완벽히 창조해 내었고, 그 상상의 공간 속에서 전개되는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아무도 대령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El coronel no tiene quien le escriba (1961)』는 6?25 내전을 겪은 우리의 정서에 훨씬 더 와 닿을 것이다. 마르께스는 대령으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암묵적으로 박해받으며 소외당하는 콜롬비아 참전 용사들의 비참한 상황을 콜롬비아 내전(1899-1902) 및 '콜롬비아 폭력사태'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소설 속에 흡수하며 스토리를 전개해 간다. 매주 금요일마다 양복을 잘 차려 입고 '정부가 약속했던 연금'을 수령해 가라는 내용의 편지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편지는 오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너무 가난한 대령은 이제 마지막 남은 재산인 수탉을 팔아야 할 시점까지 이르렀지만, 팔지 못한 채 또 다시 편지를 기다리러 집을 나선다. 바로 이 '오지도 않을 편지'를 기다리는 대령의 모습과 수탉으로 상징되는 명예와 자존심은 대령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견 어리석어 보이는 대령의 기다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작가는 인간의 주체성은 존중받아야 하며, 인간의 본질이 독재자, 권력가, 사회제도, 금력, 조직 등의 대상을 통해서도 상실되지 않을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이는 지배갈등이나 소외의 상태에 빠져들지 않은 채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주체성을 간직할 수 있는 사회체제를 꿈꾸는 것이며, 동시에 자유, 평등, 희망, 정의 등의 인간 궁극의 가치를 회복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저널리스트출신으로서 중남미 독자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 때문에 '가보Gabo'라는 애칭으로도 통하는 가르시아 마르께스. 그는 올해 74세로, 문단에 데뷔한지 55년이 지났다. 하지만 작가생활의 대부분을 정치적 이유로 조국 콜롬비아를 떠나 유럽과 멕시코, 쿠바 등지에서 망명자로써 보내야 했으며, 지금은 외롭게 암 투병 중이다. 그가 평생을 해온 글쓰기 작업은 '작가의 혁명적인 임무는 무엇보다 잘 쓰는 일, 우리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기여할 문학의 창조'라고 말했듯이, 그의 작가적 재능과 냉철한 시대 의식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독특한 서술방식과 조합되어 총체적 소설, 더 나아가 총체적 세계를 구현하기에 충분했다.
“독자 없는 소설은 이미 소설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거짓이다. 너희들은 속고 있다. 너희들은 그것을 잘 안다. 그러나 즐겁지 않니? 마술은 이렇게 즐거운 거짓말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