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호 > 문화
북한이 영화와 만났을 때 60년대 이념에 혈안이 된 절대적(敵)에서 2005년, 동거인(人)으로 변신하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유새롬 기자 (zzaero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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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과 영화와의 만남이 잦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 최고 흥행작 과 , , 12월 개봉할 등 2005년 최신 개봉작부터 최근 몇 년간 굵직한 영화들은 대부분 남북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역대 흥행작 1-6위 중 다섯 작품이 남북문제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으며, 이러한 영화와 북한의 잦은 부딪힘 속에서 북한은 그동안 보여 왔던 절대악의 모습과는 다른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60년대부터 현재까지, 영화속에 등장한 북한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때려잡아야하는 공산당에서 한방에서 동침하는 '북남연합군 동지'까지. 위부터 60년대 <7인의 여포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 분단영화 흥행의 첫 스타트를 끊은 <쉬리>.

첫 만남.

북한과 영화의 첫 만남은 순수하지 못했다. (1963), (1964), (1972) 등 60-70년대 등장한 북한소재 영화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선전 도구였다. 간혹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하려는 작품도 있었으나 이도 반공이데올로기의 바탕 하에서만 가능했다. 80년대 등장한 (1985)과 90년대의 (1990), (1994) 등은 그 전과는 달리 인간적인 아픔을 중점적으로 그리며 금기를 깨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 등장한 북한군 역시 이념에 대한 맹신과 광기를 버리지 못한다.



재회, 변화하기 시작하다.


나쁜 ‘사람’이 되다

(1998)는 ‘분단’이라는 소재가 오락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작품이었다. 언제나 무거운 주제였던 분단은 이 영화를 통해 한 걸음 물러서 가볍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 전반을 흐르고 있는 시각은 여전히 차가운 반공이데올로기였다. 영화 초반부에 이어지는 남파간첩의 훈련장면은 반공교육비디오의 한 장면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은 보다 입체적이 되었다. 최민식이 열연한 극중 이무영은 투철한 공산주의자이지만 카리스마적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이다. 그는 관객에게 여전히 ‘나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신념과 역할에 충실 하는 한 명의 ‘사람’이었다.


어수룩한 간첩이 되다

쉬리에 이은 (1999)은 분단현실이 만들어낸 가장 웃기는 직업, 간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 등장하는 간첩이 살상에 눈 하나 깜짝 않는 무시무시한 간첩이었다면 의 간첩은 택시강도를 당하는 어수룩한 간첩, 자본주의사회의 소시민이 된 간첩이다.
리철진(유오성 분)의 특명은 시민테러도 중요인사 암살도 아닌 슈퍼돼지를 훔치는 것. 이러한 상황설정은 간첩이라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직업’에 불과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웃기는 직업을 가진 남파간첩은 우리와 커피를 같이 마시고 우산을 같이 쓰고 순수한 사랑에 빠지는 어수룩한 한명의 사람이었다.



온전한 인간의 얼굴이 되다

에서 어수룩한 인간미를 과시했던 북한인은 (2000)를 통해 완전한 사람의 얼굴을 드러낸다. 이제는 간첩이 아닌 북한인 모습 그대로 남한인과 교류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만의 순수하고 따뜻한 매력으로 남한병사 이수혁(이병현 분)과 남성식(김태우 분)을 사로잡는다. 북한병사 오경필(송강호 분)과 정우진(신하균 분)은 이수혁의 지뢰를 제거해주고 여자친구의 사진을 돌려보기도 한다. 그리고 초코파이도 나누어 먹으며 한마디 한다. “왜 우리는 이런 거 못 만드는지 몰라”. 군사분계선 앞에서 가래침을 뱉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북한인은 이제 농담을 할 줄 아는 유연한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분단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젊은 세대는 분단이 농담의 대상일 뿐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북한청년에게도 남한청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소피 소령(이영애 분)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남북정서’와는 전혀 무관한 외세에 의해서 남북문제가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분단 한국의 현실을 고발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되다

의 성공과 6.15 공동선언이후 많은 영화들이 북한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한다. (2002년), (2003), (2003), (2003), (2004), (2004), (2005) 등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영화들을 통해 관객은 스타가 연기하는 북한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북쪽 사람에 대한 거부감을 점차 완화시키게 되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딸과 남한 청년의 사랑을 다루는 , 북한 여성 오영희(김사랑 분)과 남한의 작업왕 김철수(조인성 분)의 로맨스를 다루는 , 얼짱 간첩 림계순(김정화 분)과 최고봉(공유 분)의 풋풋한 러브스토리가 등장하는 . 이들 영화는 북한 여성과 남한 남성의 사랑이라는 내용을 코믹하게 풀어나간다. 그 풀어나가는 과정이 때로는 어설프고 고전적이며, 상황과 시대에 대한 부족한 성찰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 영화들을 통해 북한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는 연인의 얼굴도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동거인이 되다

2005년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 에서 남한인과 북한인은 한방에서 동침을 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출신을 표현해주는 유일한 표시, 남북한 군복은 이제 한 빨래 줄에 섞여 널리고, 군복이 빨래 줄에 널린 그 때에 그들은 이념과 불신에서 한껏 자유로워진다. 일반인의 복장을 한 그들은 이제 동막골 사람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동막골이라는 환상의 공간 속에서 전쟁의 상처와 역사적 무게는 녹아버린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이 쉽게 섞인 것은 아니었다. 상처의 깊이와 역사의 무게만큼이나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용해되는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동막골이라는 강력한 촉매제가 작용하면서 그들은 총을 내리고 멧돼지를 함께 잡고, 같은 옷을 입고, 동침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북남연합군’이 되어 동막골을 구해낸다. 동막골이라는 판타지 속에서 ‘하나되는’ 우리민족의 판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영화는 비록 판타지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염원을 풀어나가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야기 속에 스며있다. 우리가 잡아야 할 손은 북한의 손이며 스미스대원으로 상징되는 외세의 힘은 ‘도움’으로 한정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아쉬운 변화의 미숙함

또 다른 표준화의 가능성

북한이 영화를 만났을 때 절대 악에서 악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 어수룩하지만 인간미 있는 사람으로, 온전한 얼굴을 한 사람으로, 연인으로 동거인으로 점차 변해왔다. 영화 속에 점차 얼굴을 드러낸 북한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 듯 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완전한 현실의 인간은 아니다. 우리가 들여다 본, 우리의 시각으로 본 피사체로서의 북한일 뿐이다. 영화에 드러난 북쪽 사람은 사람다워졌지만 우리가 원하는 ‘순박하고 의리 있는’ 또 하나의 정형화 된 사람들이다. 이우영 경남대 교수(북한대학원)는 “과 를 보며 소박함·순진함이 또 다른 북쪽사람의 표준형이 되는 게 아닌 가 우려했는데 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다”며 “세 인물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드러내지만 궁극적으로는 정형화된 인물이다. 과거 도깨비 스타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비슷한, 순수함으로 표준화 된 인간이다”라고 우려한다.


일상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야

한과 영화와 만날 때 드러나는 또 다른 점은 북한문제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경직성과 엄격함이다. 2000년대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코메디 영화가 대부분 흥행에 실패한 사실은 이러한 점의 방증이 된다. 북한이라는 소재를 부드럽고 가볍게 다룬 코메디 영화는 분단이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 큰 스케일과 심각성을 전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받아들이는 관객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북한사람을 만나는데 어색하고, 만드는 사람은 일상에서의 북한 사람을 다루는데 미숙하다. 이우영 교수는 “등 몇몇 코메디 작품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외 대부분의 영화는 북한 문제를 단순한 ‘소재’로 쓰고 있을 뿐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이 많고, 관객들도 기존에 좋아하는 스케일이 아니기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 문제를 가볍게 다루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고 말한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SIYFF)의 비평조교로 참여한 이재욱(사회과학 05)씨는 “이제까지 대부분의 영화가 6.25 등 과거의 이야기만 했기에 북한일상에서 오는 어색함을 완화시키지 못했다”며 “이제는 북한사람들이 전쟁 이후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이야기해야한다”고 전한다. 이제 완전한 얼굴을 얻은 북한은 남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틀을 한 층 깨부숴줄, 한층 더 그들다운 모습으로 영화와 만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