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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영웅 되기, 그 눈물겨운 일대기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Super)>(2010)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이희원 기자 (hun06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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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모자란 주인공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통해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 <슈퍼>

영화 는 영웅이 되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다지 위대하지 않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와 다르다. 조금 모자란 주인공이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려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패러디 히어로 영화를 연상시키지만 깊이 있는 풍자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띈다. 실컷 웃으며 영화를 본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달콤한 케익을 먹다 모래를 씹은 것 같은 껄끄러움이 왠지 모르게 남는다. 마이클 샌델의 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영화 속 세계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소시민
주인공 프랭크 다보는 모자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내 사라가 마약판매상 자크를 따라 집을 나가버린다. 프랭크는 아내를 찾아달라고 경찰에게 신고를 하지만 경찰은 단순히 아내가 바람이 나 도망간 것으로 치부해 접수조차 하지 않는다. 경찰이 도와주지 않자 직접 자크와 아내에게 찾아가지만 마약 중독이 재발된 아내는 프랭크를 무시해 버린다. 마약판매상 무리에게 달려들었다가 실컷 맞고 돌아온 날, 집에서 울던 프랭크는 머리가 갈라지고 신의 손가락이 뇌에 닿는 환상을 경험한다.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 그는 스스로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다. 프랭크는 히어로 만화를 통해 영웅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옷도 만들어 자신만의 영웅 ‘크림슨 볼트’를 탄생시킨다.
‘크림슨 볼트’의 탄생은 여타 영웅과는 다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슈퍼맨처럼 초능력을 지니거나, 배트맨처럼 돈이 많거나, 하다못해 스파이더맨처럼 변종 거미에게 물리기라도 해야 한다. 패러디 히어로 영화 의 주인공조차도 초능력이 있다. 그러나 프랭크는 초능력은 커녕 재력도 없다. 신의 손가락이 뇌에 닿긴 했지만 그 이후로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프랭크는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내를 뺏어간 마약판매상과 폭력을 행사한 그들 무리를 아무도 혼내주지 않는 현실에서, 그 누구도 영웅이 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어로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찾아 간 만화가게에서 직원 리비는 ‘모두가 악당과 싸우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만화 속 영웅의 대사를 보고 “그럼 왜 스스로 영웅이 되려하는 사람이 없을까요?”며 현실을 비꼰다. 이 말은 프랭크가 영웅이 되기로 결심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장애인 학교에서 실제 발생한 충격적인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역시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교사들이 청각장애인을 상대로 상습적 성폭행을 일삼고 있음에도 학교 내부에서는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주인공 강인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모두가 악당과 싸우는 영웅이 될 수 있음에도 아무도 영웅이 되려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물론 영웅이 되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을 욕할 수는 없다. 영화 속에서 강인호가 성폭행 피해자들을 돕느라 자신의 생업을 그만둔 것을 알고 그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나쁜 거 몰라서 그냥 있는 줄 아나. 그냥 눈 닫고 귀 막고 네 잘 되는 길만 찾아서 가라”라고 타박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치여 다른 사람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프랭크, 강인호와 같은 소시민이 영웅을 자처하기까지는 신의 손가락이 뇌에 와 닿는 것과 비견할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프랭크의 뇌에 신의 손가락이 닿는 모습. 소시민이 영웅이 되는 것은 이정도의 충격적인 계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제도권에서 벗어난 정의도 정의인가
많은 사람을 대신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영웅 ‘크림슨 볼트’가 된 프랭크였지만, 정의의 실현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웅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첫날은 헌옷 수거함 뒤에서 범죄가 일어나길 기다리기만 하다가 아무 일 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렸고, 범죄 현장을 직접 찾아간 날은 범죄자들에게 맞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다시 초능력이 없는 히어로가 나온 만화를 연구한 끝에 그는 자신만의 무기로 스패너를 선택한다. 스패너로 무장한 그는 드디어 범죄자를 처단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범죄자를 쓰러뜨리고 “마약을 팔지마!”, “어린이를 추행하지마!”,“도둑질을 하지마!”라고 통쾌하게 소리 지른다. 그러나 뉴스에 등장한 크림슨 볼트는 빨간색 옷을 입고 길거리에 튀어나와 아무에게나 스패너를 휘두르는 미치광이일 뿐이었다. 어느 날 프랭크는 새치기를 하는 남자와 언쟁을 벌이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차에서 옷을 갈아입고 크림슨 볼트로 변신한다. 그리고 새치기한 남자의 얼굴을 스패너로 가격해 얼굴을 뭉개버린다. 그 날 이후로 크림슨 볼트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더욱 더 과격해져 간다.
이처럼 크림슨 볼트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가 추구하는 정의가 진정한 정의인 것도 아니다. 마약 판매, 강도, 아동 성추행은 그렇다 쳐도 새치기가 ‘얼굴이 뭉개지는’ 대가를 치를 만큼의 범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크림슨 볼트의 과격한 행동은 제도권을 벗어난 정의의 실현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새치기를 한 사람에 대한 크림슨 볼트의 처단은 제도권이 처벌하지 않는 악행에 대한 단죄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사회에서는 ‘법’이라는 사회적 약속과 제도로 당연히 처벌해야 하는 사건들에 대해 솜 방망이식으로 가볍게 단죄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잠든 여학생을 성추행한 가해자 학생들을 감싸주는 학교나, (불법 자금 의혹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등, 그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악행들이 처벌받지 않았을 때 느끼는 아쉬움이 크림슨 볼트라는 소시민적 영웅을 탄생시킨 것이다. 크림슨 볼트의 정의가 꼭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정의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크림슨 볼트가 악인들을 처치할 때 통쾌한 느낌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동 성추행범을 쓰러뜨린 후 경고하는 크림슨 볼트. 다소 과격한 그만의 단죄 방식을 보고 있자면 경악스러움과 왠지 모를 통쾌함이 함께 느껴진다.


현실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현실이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영웅이 된 프랭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영웅이 된 후 아내를 구하는 것 보다는 다른 범죄자들을 소탕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이런 프랭크의 모습은 범죄는 물론이고 이웃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조차 꺼리는 요즘의 세태와 비교된다. 지하철에서 어른에게 막말을 퍼부은 남성의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 때 그 남성에 대한 비판 외에도, 당시 그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제기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크림슨 볼트는 현실에서나 있을 법 한 영웅임에도 실제 우리의 현실에는 없는 영웅인 것이다.
급격히 나빠진 여론에 겁먹은 프랭크는 크림슨 볼트 행세를 그만둘 생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아내를 찾으러 자크의 아지트에 홀로 잠입한다. 결국 그는 총상을 입고 마약판매상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프랭크는 만화가게 직원 리비의 집으로 숨어들어가고 리비가 크림슨 볼트의 조수 ‘볼티걸’을 자처한다. 총상이 회복되고 여러 무기를 개발한 후에 크림슨 볼트와 볼티걸은 마지막으로 프랭크의 아내를 찾으러 간다. 마침 자크가 마약 거래를 위해 주변에 겹겹이 조직원을 배치해 둔 터라 그들은 금세 발각되고 공격을 받게 된다. 악당들의 총알 한 발에 볼티걸은 죽게 되고, 분노한 크림슨 볼트는 준비한 무기를 총동원하여 조직원들을 물리친다.
이 영화는 히어로에 대한 영화이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현실에서 가능한 일들만 보여준다. 초능력도, 재력도 없는 주인공은 히어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스패너라도 휘둘러야 하고, 급하면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차 안에서 속옷을 보여 가며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총알은 히어로라고 비켜가지 않으며, 총을 맞으면 회복할 때까지는 활동할 수도 없고, 아무리 히어로의 조수라고 해도 총을 맞으면 죽는다. 그러나 ‘현실성’에 대한 이 영화의 집요한 고집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틈틈이 사용되는 만화적 기법을 통해 이 영화가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임을 상기시킨다. 소시민 프랭크가 영웅이 될 수 있는 공간은 영화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크림슨 볼트가 되기 위해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프랭크. 그의 속옷은 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다.


당연해져버린 무(無)정의 사회
다른 악당들이 모두 죽고 혼자 남은 마약판매상 자크는 프랭크에게 영웅 행세 하지 말라고 비난하며 그 ‘새치기했다고 사람을 죽일 뻔한 싸이코’라고 비아냥댄다. 이에 프랭크는 “새치기 하지마! 마약도 팔지마! 애들을 성희롱하지마!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하지마! 오래 전부터 법으로 정해져 있던 것들이야! 정의는 변하지 않아!”라고 일갈하며 그를 처단한다.
프랭크의 이 대사는 단순히 자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단횡단과 같은 사소한 범법행위부터 대기업의 불법 비자금 조성까지, 법을 어기고도 처벌받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사회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다. 법이 무시되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행태가 반복되면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기에 급급한 개인들의 정의감은 무기력감으로 바뀌고 만다. 그런 그들에게 다른 사람의 불행까지 신경 쓰고 영웅이 되라며 등 떠밀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어떤 사회에 영웅이 없다고 그 사회를 비난할 수는 없다. 영웅이 등장한다는 것은 오히려 한 사회의 정의 실현이 개인에게 전가될 만큼 그 사회의 정의가 무너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웅이 지켜주는 사회가 아닌,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정의’다. 마이클 샌델의 와 영화 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정의를 갈망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사회의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 흥행은 단순한 인기에 그치지 않고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재조사 요구로 이어졌고 현재는 ‘도가니법’ 제정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사회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고 스스로 그 필요성을 느끼며 사회 재정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는 다분히 B급 영화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쓸데없이 선정적인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웃고 넘어가기에는 프랭크가 던지는 마지막 절규가 너무나도 처절해 보인다. “내가 죽는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아?”라고 소리치는 자크에게 프랭크는 “시도해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이야”라고 대답한다. 의 소재가 된 실제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우리사회 속 성폭력이 완전히 근절되는 것은 아닐 터다.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기업 한 둘을 처벌한다고 우리나라 기업 문화가 완벽하게 개선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의에 대해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프랭크의 말처럼, “모를 일이다”.
영화 <도가니>의 상영 이후, 실제 사건을 재조명한 <PD수첩>. 이 영화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에서 우리사회의 정의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