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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미코의 집’에는 ‘우리’가 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2006)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양정숙 기자 (dorothyv@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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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마주보는 것, 서로에게 상냥해지는 것은 사오리와 게이 가족들을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하게 한다.

로 한국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린 이누도 잇신 감독이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그의 후속작인 가 일본 인디영화로는 가장 큰 규모인 9만 8천 여명의 관객 수를 단 4개 상영관에서 달성한 것이다. 전작 에서 장애인 여성과 일반인 남성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담담하게 보여준 이누도 잇신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게이 실버타운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겉보기로 판단하는, 다를 것 없는 시선
24세, 중소 건설사 직원인 요시다 사오리에게 키시모토 하루히코라는 이름의 남자가 찾아온다. 하루히코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게이로서의 삶을 산 아버지의 애인이다. 사오리는 그녀의 볼품없는 인생과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가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하루히코의 전화를 무시해왔다. 그는 사오리에게 아버지가 연 게이 양로원에서의 아르바이트를 제시한다. 양로원의 이름은 아버지가 일했던 게이바의 이름을 따서 지은 ‘메종 드 히미코(히미코의 집)’. 돈이 궁했던 사오리는 이 제안에 응하게 되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양로원에 들어서자마자 사오리가 맞닥뜨린 것은 화장하고 여자 옷을 입은 채 TV 드라마를 보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그 ‘할아버지’가 사오리에게 붙인 한 마디, “언니, 무슨 일 있어?”는 사오리를 기겁하게 만든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경계 태세에 돌입한 사오리는 동네 짓궂은 중학생들이 친 장난에 자전거에서 넘어진 자신을 보고 내민 게이 할아버지인 ‘루비’의 손을 거절하고 만다. 루비 역시 “게이의 손 따위 더러우니까 닿고 싶지 않은 거지? 이런 손으로 뭘 했을지 모르니까”하고 사오리의 속내를 꿰뚫는다.
하지만 사오리 역시 겉보기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선의 피해자다. 회사 사원을 새로 뽑기 위해 이력서를 본 호소카와 전무는 면접도 보지 않고 사진만으로 사원을 골라낸다. 전무와 내연 관계에 있는 동료 직원 역시 이력서에 실린 사진을 보고 “다리가 두꺼울 것 같다”는 이유로 신입 사원을 고른다. 한편 드랙퀸(여장남자)인 야마자키의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는 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말에 사오리는 “뭐 여자라고 해도… 못 입는 옷도 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낸다. 돈이 궁해 간신히 술집에서 일할 결심을 한 사오리에게 지배인은 “넌 바니짱은 안되겠다”며 사오리를 떨어뜨린다. 외모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기는 ‘메종 드 히미코’를 바라보는 사오리뿐만이 아니라, 사오리를 향하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마음의 벽 허무는 마법의 주문, “피키피키 피키”
루비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마법 주문인 “피키피키 피키”의 율동을 알려주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사오리.

사오리가 쌓은 마음의 벽은 그녀가 루비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면서 점차 사라지는 듯 해 보인다. ‘피키피키 피키’라는 말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는 루비를 보고 “더럽게 못하네”라는 말을 흘린 사오리. 루비는 사오리가 ‘피키피키 피키’의 출처를 알고 있다고 직감하고 사오리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연인 즉슨, 자신이 커밍아웃하면서 떠나온 아들이 장성해 결혼한 뒤 손녀가 생겼는데 이후 자신에게 ‘피키피키 피키’라고 적힌 익명의 엽서가 왔더라는 것이다. 사오리는 ‘피키피키 피키’가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 나오는 마법 주문임을 알려주고 율동까지 가르쳐준다. 그러나 간신히 손녀와의 접점을 찾은 루비는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병시중때문에 다른 시설이나 가족에게로 옮겨가야하는 루비를 위해 사오리는 히미코에게 상속을 포기하겠다고 하지만, 알고 보니 유산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양로원을 사들이면서 히미코는 가진 재산을 다 써버렸고, 유산 이야기는 하루히코가 사오리를 데려오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한편 루비가 쓰러진 이후 히미코의 건강 역시 급격히 나빠져 갑자기 피를 토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 와중에 ‘메종 드 히미코’의 게이들과 사오리는 야마자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외출한다. 야마자키는 여자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만 그곳에서 옛 직장 동료를 만나 희롱 당한다. 야마자키와 함께 있던 사오리는 “지금 당장 사과해! 제발 한 번이라도 사과해!”라며 야마자키를 모욕한 옛 직장 동료를 물고 늘어진다.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 처음 왔을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엇갈리는 마음, 하지만 사랑은 그곳에 있다
야마자키의 옛 직장 동료 때문에 벌어진 소동이 마무리 되고 나서, 하루히코는 사오리에게 키스하고 그 이후로 둘은 서로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분위기에 휩쓸려 관계를 갖기 직전까지 가지만, 하루히코가 여성의 몸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챈 사오리가 씁쓸하게 말한다. “만지고 싶은 곳, 없는 거지?” 하루히코뿐만 아니라 ‘메종 드 히미코’에 모여든 다른 게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려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지만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 할 수 없었고, 결국 가족을, 직장을 뒤로 한 채 떠나오게 된 것이다.
한편 명절날 히미코 네는 제사 준비와 함께 루비를 보낼 준비를 한다. 엄마 사진을 꺼내다 사오리는 아버지와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처음으로 터놓게 된다. 어머니때문에라도 여전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오리에게 아버지는 당연한 결론이라면서도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이렇게 말한다. “니가 … 좋단다.” 하지만 게이인 것을 알리지 않은 채 루비를 가족에게 보낸 ‘메종 드 히미코’의 게이 식구들과 사오리는 마찰을 벌이게 되고, 결국 양로원을 뛰쳐나가 그동안 사모해온 회사 전무 호소카와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날 밤 히미코는 숨을 거둔다.
“사오리가 보고 싶어 피키피키 피키”

하루히코는 유품을 챙기러 온 사오리에게 ‘사오리와 호소카와와의 관계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어 사오리가 아니라 호소카와가 부러웠다는 하루히코의 질투 담긴 말에 사오리는 울음을 터뜨린다. 우는 사오리를 뒤로 한 채 양로원으로 돌아가는 하루히코. 이때, ‘메종 드 히미코’와 사오리의 관계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마 뒤, 양로원으로부터 도색 견적서가 들어온다. 양로원의 벽에 “사오리가 보고 싶어 피키피키 피키”라고 써놓고 사오리를 기다리고 있는 ‘메종 드 히미코’의 가족들은 그렇게 다시 재회한다.

‘삐딱선’타고 있는 것은, 우리들
노골적 성적 행위 묘사와 자극적 표현을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선정성’ 기준에 의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 <친구 사이?>.

는 보는 사람에게 이해나 납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듯이 보는 사람 역시 영화를 쫓아가게 만든다. 이 영화는 우리와 그들의 사랑이, 고민이, 삶이 ‘우리’와 ‘그들’로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다르지 않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 때문에 가족들을 떠나오긴 했지만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자식을 그리워하고, 그의 손녀를 보고 싶어 하는 루비의 마음은 이성애자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력함을 느끼는 하루히코 역시 “살아간다든가 하는 걸 생각할 수 없게 돼”라는 말로 그들의 사랑 역시 우리의 사랑과 같다는 것을 넌지시 전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가혹하다 못해 끔찍하다. 일반 사회는 그들의 삶을 더러운 것 혹은 패션아이콘 쯤으로 취급한다. 지난 11월 9일,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한국 영화계에서 커밍아웃 한 영화인 가운데 한 명인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내렸다. “성적 행위 등의 묘사가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표현으로 선정적인 부분이 있어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영화(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영화)”라는 것이 이유였다. 성행위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 의 등급 판정은 한국 사회가 동성애를 ‘청소년이 봐서는 안되는’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대중들은 현실에서의 동성애는 꺼려하면서도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동성애의 이미지는 좋아한다. 멀게는 영화 ‘여자만큼 예쁜 남자’가 등장하는 에서부터 대놓고 살을 내보이며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던 은 엄청난 흥행을 끌어냈다. 남장여자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 이나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괜찮은 남자에게는 여자친구가 있고, 완벽하다 싶으면 남자친구가 있다”는 한 이동통신사 광고 카피는 잘생긴 얼굴에 마른 몸매, 뛰어난 패션 감각에 좋은 직업까지 갖춘 게이에 대한 환상을 가감없이 제시한다. 동성애가 ‘더럽고 위험한’ 것이라는 주장과 게이는 ‘잘생겼다’는 편견은 모두 동성애를 특별한 것으로 보는 인식을 보여준다.

영화 첫머리에서 ‘메종 드 히미코’의 옆 건물에 사는 할머니는 혼자 건물로 들어가는 젊은 여성인 사오리를 보고 기겁해서 자기 집안으로 들어가고, 영화 말미에서는 사오리를 기다리는 양로원 사람들과 사오리를 보고 또다시 기겁해서 들어간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꼭 이 할머니를 닮았다. 아버지는 용서할 수 없었지만 ‘메종 드 히미코’의 게이 가족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오리처럼, 각자의 사랑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사랑의 방식이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