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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연극, 깊이의 푯대 위에 날개를 펴다 실험적 소극장에서 연극의 순수한 정신을 찾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김윤주 (naoco9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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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극장 오동식 씨는 소극장을 연극의 순수한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장소로 봤다.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 위 한줄기 조명이 비친다. 배우들이 움직이는 곳은 스크린 속이 아니다. 관객들의 눈앞이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의 몸짓 하나 하나에 집중한다. 배우들은 크게 웃다가 슬프게 울고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기도 한다. 관객들은 배우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인간의 희노애락을 느낀다. 이 몇 시간 동안의 드라마는 영화관도 대형극장도 아닌 300석 남짓의 공간에서 완성된다. 배우들이 바로 눈 앞에서 생생히 연기하는 그 곳. 바로 잊혀진 우리들의 소극장이다.


연극의 순수한 정신을 지켜온 소극장운동

소극장협회 정대경 이사장은 소극장 연극이 진지한 성찰을 일깨워 줄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했다.
소극장은 300석 정도의 객석규모를 가진 작은 극장을 말한다. 소극장의 역사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된다. ‘소극장운동’은 연극의 상업주의를 배격하고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연극을 시도한 운동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소극장운동은 소극장을 갖지 못한 채 시작됐다. 1950년대에는 국립극장인 원각사만이 유일한 소극장으로 존재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연극계는 더욱 침체된다. 관객들은 전쟁의 아픔을 가벼운 대중극이나 영화를 통해 잊으려 했고 진지한 연극은 밀려났다. 1960년대 역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번복되는 공연법 개정으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극계는 이에 좌절하지 않았다. 아마추어적 성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인제 극단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비로소 1970년대에 이르러 소극장은 확산되기 시작한다. 극단 수와 공연 기간도 더 늘어났다. 상업극이 늘어나고 연극의 전반적인 질이 하락하기도 했지만 연극계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 연극의 순수한 정신을 지켜나갔다.


소극장, 연극을 실험하고 창조하는 공간

오프 대학로에 모인 소극장에서 실험적이고 비상업적인 연극이 상연되고 있다.
연극계가 소극장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릴라 소극장의 오동식 극장장은 “대극장에 비해 소극장은 대관료 부담이 적어 순수한 실험적 연출이 가능하다”며 소극장의 의의를 밝혔다. 소극장을 연극의 정신을 순수하게 구현할 수 있는 실험의 장으로 본 것이다. 오 극장장이 운영하는 게릴라 소극장은 대관료가 없다. 소극장이 없었던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주 무대로, 터를 잡은 지 6년이다. 극단이 항상 상주하면서 1년 동안의 미리 짜여진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것이다. 새로운 배우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유연하다. 대관료로 이윤을 남기기보다는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극장은 작품과 관객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수의 작품들도 소극장에서 처음 공연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소극장은 관객들의 반응을 빨리빨리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부자 주연으로 대중화된 연극 <오구> 역시 소극장에서 출발해서 성공한 경우다.


상업적 연극을 ‘파는’ 일부 소극장

대학로는 상업적 연극과 실험적 연극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최근 상업적 연극이 범람하여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게릴라 소극장은 이른바 오프 대학로에 위치한다. 편의상 대학로 일대는 대학로와 오프 대학로로 나눈다. 1970년대 이후 대학로에 상권이 형성되면서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다. 상업적인 연극을 상연하는 극장은 오르는 임대료를 충당할 수 있었지만 기존의 지하 소극장들은 임대료에 허덕이게 됐다. 결국 임대료 부담을 피해 실험적이고 비상업적인 연극을 상연하는 소극장들은 대학로를 약간 벗어난 오프 대학로에 모이기 시작했다.
현재 대학로에는 130~150개의 소극장이 밀집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실험적인 소극장의 정신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 극장장은 “극장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극장이 너무 많다”며 극장의 기본조차 갖추지 않은 소극장들을 비판했다. 극장으로 활용하려면 최소한 지켜야 할 높이가 있지만 일부 소극장은 일반 상가를 객석으로 만들어놓거나 배우들 머리 바로 위에 조명 몇 개를 달아놓고 극장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시설이 열악한 소극장에서 질 높은 연극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무대가 열악하다고 해도 대관료는 그리 싼 편이 아니다. 무대 상태가 양호한 곳은 40~60만원 정도의 대관료를 요구한다. 전속 소극장이 없는 극단들은 대관을 한다고 해도 겨우 한 달만 공연할 수 있다. 오 극장장은 “연극은 준비과정에서 의상비 등 많은 돈이 든다. 겨우 한 달동안의 공연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대관료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했다.
부실한 설비 이외에도 소극장 수의 무분별한 증가는 연극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한국소극장협회 정대경 이사장은 상업적인 연극의 범람이 소극장의 가치를 훼손할까 우려했다. “많은 젊은 관객들이 그런 상업적 연극만을 진짜 연극으로 알고 있다. 그런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문을 연 정 이사장은 수많은 연극이 장사의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실험적 연극은 연극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고 예술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실험적 연극은 상업적 연극처럼 관객의 표 값에서 얻는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 홍수와 스타마케팅 속 아날로그 연극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연극 외부에 있다. 사람들의 눈을 자극하는 영화, TV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다. 기술 또한 놀랄 만큼 발달해 스크린은 디지털화된 3D 영상을 상영한다. 반면 연극은 아날로그적이다. 정 이사장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갈 때 연극은 홀로 아날로그적인 것을 고수한다. 살아남기 힘든 장르다”며 연극이 처한 현실을 진단했다. 연극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도 자연히 멀어졌다. 스타마케팅을 활용한 몇 몇 연극만이 젊은이들의 주의를 끌 뿐이다. 오 극장장은 스타마케팅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가 생각하는 연극은 한 배우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제 역할을 해내는 하나의 유기체다. 하지만 스타마케팅은 스타 혼자만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 그친다. 오 극장장의 시각에서 이는 공간만 극장으로 옮긴 TV 프로그램과 다를 것이 없다.
오 극장장은 국내 마케팅 능력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관객들의 관심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지 의문을 표했다. 정 이사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정 이사장은 “공연은 항상 대중성을 담보로 하므로 스타마케팅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상업적 연극과 비상업적 연극의 조화다”라며 현 연극계가 상업적 측면만 너무 비대해졌다고 비판했다. 상업적 연극과 비상업적 연극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성찰이 주는 울림으로 소극장의 활성화를”

“제대로 해야죠. 시공간의 제약을 떨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하나의 연극을.” 소극장이 보다 활성화될 방안을 묻자 오 극장장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오 극장장은 연극을 유명세를 위해 거쳐 가는 통로로 생각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는 반면, 연극에 모든 삶을 투자해서 온 몸을 바치는 연극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오 극장장은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진정한 연극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사람들의 인식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연극은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실질적이고 강력한 인상을 준다. 이는 TV, 영화가 쉽게 선사할 수 없는 연극의 강점이다. 연극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사람들이 느끼고 알아야 할 것들을 전달하는 프리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옛날에는 연극이 젊은이들에게 큰 의미였으며 연극을 보지 않는 대학생은 미개인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오 극장장은 “TV드라마, 영화 등 많은 볼거리가 넘쳐나는 데다 3D 심지어 4D까지 놀랄 정도로 디지털화되고 있다”며 세상의 변화를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오감을 자극하는 일회적 즐거움에 빠져 진지함을 잃는 세태를 경계했다. 정 이사장은 “넘쳐나는 자극 속에서 소극장 연극이 진지한 성찰을 일깨워주는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재미보다 문학적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인간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소극장 연극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소극장 연극, ‘깊이’의 푯대 위에 날개를 펴다

“나는 배우예요. 무대에서 연기를 하면 만족과 환희에 도취돼 엄청난 기쁨을 맛보죠.” 연극 갈매기에서 배우를 꿈꾸는 여주인공 니나의 대사다. 배우 니나가 날개를 펼 수 있는 소극장은 생존하여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을까? 오 극장장은 소극장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본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오히려 상업적인 의의를 두기 보다는 한 작품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들이 관객들에게 통한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작품에 대한 장인정신이 확고했다.
물론 소극장이 상업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윤을 내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외향적이고 화려한 것보다는 내면적이고 인간적으로 깊게 다가간다는 점으로 차별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오 극장장은 편법을 쓰지 않고 깊게 근본적으로 접근해야만 연극의 정신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지식보다는 전문적인 신념같은 것이 더 필요한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극장 연극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