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호 > 문화
그 많은 과반이름은 다 어디서 왔을까? 저마다 과의 특성과 역사를 담고 있는 과반이름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윤영아 기자 (young9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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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사회대 과방문들. 각 과방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개성 가득한 문패들이 달려 있다.


“○○반에 배정되셨어요. 신입생환영회 때 봐요.”
아마 서울대 신입생이라면 입학 전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말일 것이다. 신입생들이 앞으로 함께 할 동기와 선배를 만나는 곳이자 다음 학번 새내기를 맞이하기 위해 모이는 곳, 그곳은 바로 학생자치공간인 과반이다. 서울대에는 여러 단과대 안에 다양한 과반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반들은 저마다 특색있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특별난 이름 없이 학과이름을 그대로 쓰는 과반도 있지만, 철학과/사고뭉치반, 동양사학과/용화반처럼 독특한 이름을 붙여 쓰기도 하고 심지어 알파벳 A, B, C, D를 반이름으로 쓰는 과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과반이름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일까?
과반이름이 생긴 이유가 각 학과마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이들이 생기게 된 데는 학부나 단과대 차원에서 통합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광역화’가 큰 몫을 했다. 자연계열을 중심으로 시작됐던 모집단위 광역화는 2002년에 인문·사회·사범계열로 확대됐는데, 이러한 광역화 모집은 이전의 과라는 단위를 통해 맺었던 선후배 관계를 단절시키고 학생회를 구성하는 데도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인문대와 사회대의 과반이름도 광역화에 반대하는 차원에서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 인문대 학생회장 미경(미학 05) 씨는 “당시 광역화에 의해 과단위의 자치적인 흐름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각 과의 자치단위 사람들과 새내기들이 모여 이름을 지은 것”이라며 “신입생 명단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본부와 마찰을 겪기도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때 만들어진 과반이름들은 대체로 학과와 관련된 연관어이거나 광역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은 단어들이었다. ‘경제학과/불꽃반’의 경우, 반가 ‘혁명의 투혼’에 자주 나오는 ‘불꽃’이란 단어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다고 이지윤(인류 07) 씨는 설명했다. 이 씨는 “다른 경제 B반(飛반), C반(始반)과 다르게 한자로 A를 표현할 수 없는 까닭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문대 ‘미학과/모반’은 성(姓) 뒤에 쓰여 ‘아무개’의 뜻을 나타내는 관형사 ‘모(某)’의 뜻처럼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단어 그대로 저항을 뜻하는 ‘모반(謀反)’이란 의미로 읽혔다. ‘독문과/아우토반’은 ‘아우토반(Autobahn)’이라는 독일의 자동차 도로 명칭을 차용했다. 아우토반의 김준호(독문 03) 씨는 “속도제한이 없는 독일을 대표하는 고속도로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 과를 더 잘 나타내줄 수 있는 ‘과반이름’
단지 광역화만이 과반이름을 생겨나게 한 배경은 아니다. 광역화 이후에도 과반이름이 없다가 최근에 새로 이름을 지은 반들도 있다. 전공 명칭을 줄여 ‘작생반’이라 불리던 농생대 작물생명과학과의 경우, 2008년 새터를 준비하면서 ‘햇반’이란 반이름을 새로 지었다. 작물생명과학과/햇반의 서석교(식물생산 07) 씨는 “우리 과도 과의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특별한 이름이 있다면, 부를 때 더 정감이 있고 동시에 우릴 더 잘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만들게 됐다”며 과반이름을 지은 계기를 이야기했다. 모 회사의 전자레인지용 인스턴트 쌀밥 제품명과도 일맥상통하는 ‘햇반’은 기억하기도 쉬운데다 주로 쌀, 콩, 보리와 같은 식량 작물을 연구하는 작물생명과학과의 특성도 잘 나타내 채택됐다고 한다.
물론 반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생긴다. 서 씨는 “농생대는 다른 단과대와 다르게 학과명이 길기 때문에 줄임말을 반이름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처음 반이름을 만들고 새터에 갔을 때, 다른 반들은 모두 ‘지시공(지역시스템공학)!’, ‘농경사(농경제사회학)!’라며 힘찬 구호를 외치는데, 우리 반만 ‘햇반’이라고 외치니 모두 웃었던 기억이 난다”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단과대에서 홀로 튀는 공대 랄라반, 룰루반
과반이름들은 이처럼 학과의 특성과 연관이 있지만, 도통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무슨 뜻일까 의아하게 만드는 이름도 있다. 바로 공대 전기컴퓨터공학부의 랄라반과 룰루반이 그것이다. 같은 전기컴퓨터공학부인 R반, C반과 다르게 이런 발랄한 이름을 가지게 된 계기는 꽤 단순하다. 병준(컴공 05) 씨는 “전기컴퓨터공학부에서 R반, L반, C반은 원래 RLC회로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런데 한 반에 들어오는 신입생 수가 늘면서 L반을 두 반으로 나누게 된 것이 랄라반과 룰루반이 생기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그는 “다들 랄라반과 룰루반에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무 뜻도 없다”며 “선배들끼리 술자리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때론 이런 독특한 이름이 과반학생들을 곤란에 빠뜨릴 때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기과 졸업생은 “누군가에게 과반이름을 말하면 ‘그게 반이름이냐?’고 재차 물어와 대답하기 부끄러웠던 적도 있다”며 곤혹스러웠던 기억을 고백하기도 했다.

과반이름은 추억을 남기고
랄라반, 룰루반과는 정반대로 딱 봐도 의미 없어 보이는 A, B, C반에도 재미난 에피소드들은 존재한다. ‘경제학과/始반’은 과반이름을 발음하는데 유독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잘못 발음하면 왠지 욕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반에 배정받은 새내기들에게 처음 전화를 거는 선배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이처럼 다양한 과반이름은 또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남긴다. 실상 과반이름은 신입생 때부터 꼬리표처럼 과반학생들을 쫓아다니지만, 정작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물론 과반이름이 무슨 뜻인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바쁜 일상 속에 오늘 하루쯤은 자신이 속한 과반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