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 > 문화 >이한권의책
역사여 아, 역사여! 다이 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사람아 아, 사람아!>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노관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조회 수:587


역사란 무엇인가. 문득 꺼낸 이 물음에 어떤 책을 찾으면 좋을지 책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두 가지 인용문을 준비해 보겠다. 하나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그침 없이 오가는 대화이다.’라는 어떤 역사가의 명제. 다른 하나는 ‘역사란 ‘뒤엎고’ ‘뒤엎어진다’는 단 두 마디가 전부다.’라는 소설 속 어떤 인물의 넋두리. 어느 쪽이 더 그럴싸하게 다가오는가? 만일 전자가 마음에 든다면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 도서번호 901번대의 책들이 진열된 서가 앞에 설 일이다. 역사에 관해 사변적인 혹은 비판적인 철학적 접근을 추구하는 서가의 책들을 열람하면서 앎으로서의 역사를 계발하는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후자가 마음에 끌린다면 도서번호 895번대의 책들이 진열된 서가 앞에서 이 책 를 펼쳐 볼 일이다. 자기 역사를 성찰하는 많은 작중 인물들과 만나면서 삶으로서의 역사를 자각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역사 입문서는 주로 역사인식론 또는 역사방법론을 중심으로 앎으로서의 역사를 탐구하는 학리적인 성격이 짙었지만, 이제는 역사실천론을 중심으로 역사를 묻는 삶으로서의 역사를 추구할 때도 되었다. 우리의 삶은 자연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시작한 것이고 우리의 역사는 이미 과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시대의 격랑 속에서 역사의 짐을 지고 자기 삶의 한가운데에서 역사를 물으며 온전히 삶의 변혁을 추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삶으로서의 역사를 통찰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이 책 는 삶으로서의 역사를 통찰하는 훌륭한 역사 수상록이자 역사로서의 삶을 변혁해 나가는 감동적인 인생 드라마로 적극적으로 권독(勸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 책은 삶으로서의 역사에 관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는가? 그것은 크게 ‘역사’와 ‘역사의 짐’, 그리고 ‘역사의 책임’으로 대별할 수 있겠다. 여기서 ‘역사’란 작중 인물들이 중국 사회에서 1950년대의 반우파투쟁과 1960년대의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로 입었던 자기 삶의 총체적인 고통을 말한다. 그것들은 특정한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었고 그 정치적 상황이 소멸되면 함께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역사’이다. 예컨대, 쉬허엉종처럼 ‘역사’란 뒤엎고 뒤엎어진다는 두 마디가 전부라고 생각하거나 씨리우처럼 ‘과거의 공로(=반우파투쟁), 10년의 고통(=문화대혁명), 현재의 권력’으로 과거가 도식화되는 발상에서는 ‘역사’의 유효 기간은 뒤엎고 뒤엎어지는 단락을 넘지 않기 때문에 ‘역사’는 언젠가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이들은 굳이 ‘역사’를 현실로 밀착시켜 ‘역사의 짐’을 만들지 않는다. 이들은 ‘역사’에 책임을 질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긴다.

반면 쑨위에의 ‘역사’는 그녀가 씨리우와 정치적 부침을 같이했으면서도 씨리우와 달리 과거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 스스로 의지적으로 ‘역사’를 현실로 끌고 와 스스로 ‘역사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인위적인 계급투쟁으로 고통스런 ‘역사’를 조성했던 ‘역사’의 본질에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역사’가 현실과 밀착하여 미래를 삼킬 듯이 너무나 괴롭지만 쑨위에는 자신의 친구 리이닝이 정신과 생활의 대립적 통일에서 형성된 이 ‘역사의 짐’을 정신과 생활을 분리하여 자신을 생활 속에 몰입함으로써 벗어 던졌던 지혜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쑨위에가 비타협적으로 ‘역사의 짐’을 현실에 괴롭게 짊어지고 있다면 허징후는 ‘역사의 짐’으로부터 ‘역사의 책임’을 창조한다. 허징후는 계급투쟁과 노선투쟁으로 가득한 현실의 ‘역사’가 양산될 당시 인민 사이를 유랑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인민의 열정을 발견하였고 아버지를 통하여 희생적인 인민의 사랑을 자각하였다. 그렇기에 당의 역사가 하달하는 무거운 역사의 짐을 인민이 지우는 역사의 책임으로 바꿀 수 있었다. ‘역사’가 과거의 영역이고 ‘역사의 짐’이 현재의 영역이라면 ‘역사의 책임’은 미래의 영역이다. 그는 ‘역사’를 소중히 간직하여 ‘역사의 책임’이라고 하는 미래에 건네주려는 것이다.

이처럼 미래를 전망하기에 허징후에게 씨리우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넋두리는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해치우지 않으면 이 쪽이 당하게 된다. 사람아 아, 사람아! 인간이란 모두 이렇다. 아침부터 밤까지 싸워도 나아지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싸우지 않으면 더욱 악화된다.’ 계급투쟁의 관성이 여기에 있었고 ‘역사의 짐’이 이 관성에 의해 인간을 영구히 구속하려 하였다면 ‘역사의 책임’은 이 관성을 물리치고 휴머니즘을 성취한다. 이 때 비로소 ‘역사에서 (출발하여) 인간으로 (귀착하는)’라고 하는 마르크스주의적 휴머니즘이 완성된다.

‘역사’, ‘역사의 짐’, ‘역사의 책임’. 나는 이 책에서 공부한 삶의 역사학의 어휘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조심스럽게 붙여본다. "역사여 아, 역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