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호 > 문화 >필름通
“나쁠 거 없어, 모두 마술이니까” 퍼시 애들론 감독의 ‘바그다드 카페(1987)’
등록일 2016.09.18 00:15l최종 업데이트 2016.09.27 14:47l 김경우 기자(kwkim9037@naver.com)

조회 수:335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야스민과 그녀의 남편이 싸우기 시작한다. 점차 격해지는 싸움 끝에 야스민은 자신의 짐을 들고 차에서 내리고, 남편은 차를 타고 떠난다. 같은 시각, 바그다드 카페 주인 브렌다와 카페 운영에 관심이 없던 남편이 언쟁을 벌인다. 말소리가 커지고, 마찬가지로 남편은 집을 나간다. 카메라는 두 여자의 충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기울어진 프레임으로 야스민을 비추고, 한참 동안이나 눈물이 맺힌 브렌다를 보여준다. 그렇게 서로 아픔을 가진 두 여자는 바그다드 카페에서 만나게 된다.


사진1.jpg

▲'바그다드 카페' 포스터  ⓒ네이버 영화



당신과 나는 다르다

  삶에 불만이 많고 모든 걸 거침없이 말하는 브렌다는 떠난 남편을 제외하더라도 가족관계에 문제가 많다. 천방지축인 딸은 마음대로 되질 않고, 아들 녀석은 이해할 수 없는 피아노 곡만 쳐댄다. 카페 역시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기 일쑤다. 심지어 야스민의 로젠하임산 커피메이커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커피도 못 만들던 카페였다. 그런 황량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에 독일에서 온 이방인, 야스민이 찾아온 것이다.

  브렌다에게 야스민은 낯설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여자는 너무나 다르다. 피부색과 언어뿐만이 아니다. 남편과 헤어질 당시, 화를 낸 상태에서도 자신에게 던진 깡통을 아무렇지 않게 줍는 야스민과는 달리, 브렌다는 남편이 집을 떠날 때 남편에게 깡통세례를 퍼붓고 그 깡통을 슬픔에 겨워 줍지 못한다. 어수선한 카페가 브렌다에게는 아무렇지 않지만, 야스민은 꼭 청소를 해야할 것만 같다. 심지어 브렌다는 야스민을 처음 봤을 때 어느 원주민의 의식에 제물로 사용되는 돼지를 떠올린다. 브렌다는 야스민이 남자 옷만을 입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저 멀리 타국에서 왔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는 야스민이 묵는 방에 수상한 물건이 있다는 이유로 보안관을 부를 정도로 그녀에게 적대적이다. 심지어 총을 겨누기도 한다. 삶에 대한 짜증과 불만으로 편견이 생긴, 살벌한 여인이다.

  이런 브렌다의 적대감과는 별개로, 야스민의 존재는 바그다드 카페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야스민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카페의 잡동사니를 하나씩 치운다. 브렌다는 자신의 영역을 건드렸다는 것만으로도 치를 떨지만, 바그다드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야스민을 통해 그들 사이에 있던 편견이란 장애물을 걷어버리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바그다드 카페의 사람들 역시 처음부터 야스민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야스민 특유의 성격은 그들 사이에 있었던 벽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브렌다의 아들 살라모에게 야스민은 고요하고 적막한 카페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는 좋은 이웃이기도 하다. 카페 점원인 코앵가 역시 야스민이 가져온 커피메이커의 사용법을 배우고, 그녀의 싹싹한 성격에 점차 그녀에게 마음을 연다. 브렌다의 딸인 필리스와는 야스민이 가져온 옷이나 장신구들을 서로 입어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브렌다에게 야스민은 그저 자신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청객에 불과하다. 어쩌면 브렌다 자신은 즐겁게 못 지내는데 즐겁게 지내고 있는 야스민에 대한 질투의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브렌다는 끝내 야스민을 쫓아내려고 하기에 이른다.



당신은 나로 인해, 나는 당신으로 인해

  하지만 그 순간 브렌다와 야스민은 남편과의 헤어짐, 불안정한 가정 등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공유하게 된다. 야스민과의 교감 이후, 브렌다는 짜증만 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며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변화는 카페에도 일어난다. 맛없는 커피를 뽑아내던 로젠하임산 커피메이커는 야스민의 손길을 거치면서 멀쩡해진다. 야스민이 실수로 들고 내린 마술키트로 카페는 마술쇼가 벌어지는 축제의 장이 된다. 사람들이 하나 둘 바그다드 카페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조용하고 한적했던 카페가 시끄럽고 유쾌한 곳으로 변한다.

  늘 밝게만 지내던 야스민 역시 바그다드 카페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이 카페에는 그녀의 남편과 달리 그녀의 진가를 인정해주고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다. 자식이 없는 야스민에게 살라모, 필리스 등 자식 같은 친구도 생겼다. 특히 노령의 할리우드 출신 화가 루디콕스는 누구보다도 야스민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야스민은 루디콕스의 그림 모델이 되고, 그림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알아간다. 

  야스민이 비자 문제로 카페를 떠나야했을 때, 카메라는 다시 한 번 우울해진 바그다드 카페를 조망한다. 바그다드 카페는 마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야스민이 돌아왔을 때 브렌다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그녀를 반긴다. 척박한 주변 풍경과는 대조되게 행복하게 얘기하고 있는 두 주인공에서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은 청량감마저 느껴진다.

  야스민이 다시 돌아온 후, 그들은 한편의 멋진 공연을 펼친다. 바그다드 카페에 사는 사람들과 그 곳을 오고가는 사람들 모두가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야스민은 늘 그랬던 것처럼 멋진 마술을 선보인다. 놀라운 것은 브렌다 역시 야스민과 합을 맞춰 마술을 보인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꾸려나가는 무대는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야스민과 브렌다가 “나쁠건 없어, 모두 마술이니까”라고 노래하는 장면은 그들이 삶을 온전히 즐기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사진2.jpg

재회한 그들의 모습  IMDB



‘누군가의 여자’로서 다뤄지지 않는 그들

  미디어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은 주로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서거나 남성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바그다드 카페’에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두 주인공의 상처가 다 치유된 이후에야 중요하게 다뤄진다. 브렌다의 남편은 떠난 후에도 브렌다를 계속해서 관찰하지만, 야스민과 브렌다의 감정의 골과 상처가 다 치유된 다음에야 브렌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루디콕스 역시 모든 상황이 정리된 이후 야스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그런 고백을 들은 후에 야스민의 반응 역시 친구인 브렌다와 얘기해본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끝까지 야스민과 브렌다라는 두 여인의 정신적 교감에 집중한다. 그들의 서로 달랐던 첫 만남부터, 갈등을 겪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그 과정에 집중함으로서 ‘누군가의 여자’가 아닌 여성들을 구현해낸다. 영화에는 브렌다와 야스민, 단지 그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80년대에 나온 이 영화가 아직도 위대한 페미니즘 영화로 칭송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