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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동네, 샤로수길을 둘러싼 기대와 걱정
등록일 2016.09.21 17:45l최종 업데이트 2016.09.21 17:45l 황운중(자유전공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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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로수길이 뜬다. 페이스북을 보면 연신 샤로수길의 숨은 맛집이 카드뉴스로 제작되어 있고, 사람들은 친구를 일제히 태그해서 가자고 꼬드긴다. 내가 신입생 시절이던 14년도보다, 확실히 서울대입구역은 더욱 붐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역으로 가는 골목길에는 2년 만에 특색 넘치는 가게들이 포장마차처럼 천막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마치 재래시장같은 구조에 세련된 음식과 가게들이 즐비한 모습은 쉬이 보지 못하던 풍경이다. 그 ‘힙’함이 트렌드를 찾아 움직이는 자들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있다.

  관악구는 서울시 모든 구 중에서 20대 청년들의 거주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고시촌의 역할이 한몫했다. 이렇게 젊음으로 넘쳐날 여지와 잠재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데다가 서울대학교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다 이곳에서 활동한다. 나는 관악구 출신은 아니지만 늘 이 동네가 ‘뜨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샤로수길 붐은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서울대학교와 그 근방의 동네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어필하고 외치고 다니느라고 내 대학 생활의 전부를 보냈다. <샤우팅>이라는 잡지를 만들어서 음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Starfall Live Day> 라는 공연을 만들어서 관악구의 지역 밴드, 공연장, 외부 음악인들과의 교류를 꾀했다. 그러느라고 내 잔고는 줄었지만, 이곳에서는 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점점 인식하게 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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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지금 샤로수길을 보고 있노라면 옛날 일이 생각이 난다. 08년도의 일이다. 아버지를 따라서 심부름을 나갔다가, 나올 때까지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씀을 듣고 나는 합정역 근처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어린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당시의 합정역 근처는 아직 ‘뜨는 동네’가 아니었다. 순대국집, 곱창집 같은 것들이 있었고 정겨운 간판의 백반집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카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원룸이든 주택이든 사람 사는 곳이었고, 슈퍼와 세탁소, 미용실, 수선집 같은 것들이 있었다. 지금의 샤로수길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11년도에 나는 다시 합정역을 찾았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놀러 간 것이었는데, 그런 입장에서 합정역은 아주 적합한 장소로 변해 있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즐비했고, 편의점들이 다섯 걸음마다 있었으며, 노래방, 당구장같은 것들이 밤의 불빛을 밝혔다. 다 놀고 나오면서 친구들은 새로운 장소를 찾았다고 즐거워했으나, 나는 찝찝한 뒷맛을 남기면서 자리를 떴다. 합정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 지역이 되어 있던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제는 정말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다. 외국어라 생경하고 낯선 느낌이라 그 공포심은 더 증폭이 되는데, 추상적인 공포에 남겨두지 말고 국립국어원에서 권한 ‘둥지내몰림’이라는 표현을 써서 똑바로 마주해 보자. 요즘 마포구는 둥지에서 내몰리는 가게들로 가득하다.

  나는 둥지내몰림 현상을 나름대로 오랫동안 연구했다. 신촌이 뜨고, 과포화로 인해 몰락한 뒤 홍대가 다시 떴다. 지금 홍대는 신촌의 절차를 그대로 밟아가며 자신의 위상을 합정에게 넘겨주고 있다. 합정도 아마 같은 절차를 밟을 것이다. 반복된 패턴을 미리 눈치챈 부동산의 흐름은 상수와 망원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뜨는 곳이 지고, 새로운 곳이 뜬다. 마포구는 그 굴곡진 흐름에 온통 뒤덮여 있다.

  얼마 전에 09년도와 16년도, 홍대/합정/망원/상수 지역의 상권 유형을 그래프로 만든 자료가 있었다. 09년도에는 한식당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몽땅 카페가 들어차 있다. 점들의 숫자도 열 곱절 많아졌다. 그 점들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가 있었다. 두드러기같이 번진 모습이었다. 홍대뿐이 아니다. 서촌에서, 가로수길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 신촌과 압구정로데오는 이미 단물이 다 빠진 채로, 외롭게 휘황찬란하다.

  그래서 나는 샤로수길을 보면 기쁘면서도, 이곳도 역시 둥지내몰림 현상이 잔뜩 휘젓고 다닐 곳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든다. 함께 걱정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여기도 5년만 있으면 지금의 마포구처럼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긍정적인 전망이기도, 부정적인 전망이기도 하다. 샤로수길의 번창으로 서울 서남부의 예술가들은 이곳으로 모여들고 고일 것이다. 비로소 ‘씬’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탄생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앞을 내다보면, 임대료는 오를 것이고, 세탁소, 순대국밥, 막걸리집, 이발소는 그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지금 낙성대 씬의 기둥을 잡아주는 공연장들도 장기적으로 보면 위험하다. 조그만 라이브클럽 공연장 하나가 아쉬운 시점에, 그냥 두고만 보기에는 애간장이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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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지내몰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둥지내몰림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둥지내몰림은, 정부가 낙후된 지역, 혹은 중심에서 밀려난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사업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은 목적이 될 수가 없다. 도구로 전락하기가 일쑤다.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곳에 젊음이 있고, 젊음이 있는 곳에 자본의 유입이 있으며, 자본이 유입되는 곳에 지역 발전이 있다는 것은 일련의 공식처럼 작용한다. 예술가들이 몰려들도록 유인하는 이런저런 혜택들은, 결과적으로 자본 유입과 지역 발전을 꾀하기 위한 스파크에 불과한 경우가 다분하다.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예술가들은 ‘토착민’의 입장이 되어, 오르는 집값을 감당치 못하고 내쳐지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스스로가 수동적인 입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술가가 도시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능동적인 움직임에서 도시 변화가 시작되어야, 문화와 예술이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가 있다. 

  둥지내몰림 현상을 극복한 사례를 보면, 아티스트들이 연합해서 조합을 만들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푼 두푼 후원을 받아 자금을 마련한다. 그렇게 조달된 자금으로 조그만 건물을 구해서,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아틀리에로 삼는다. 그 아틀리에를 중심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오가며 교류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하며, 여기서 성공을 거둔 팀들은 다시 그 아틀리에의 운영을 물심양면 돕는다. 이런 식으로 세력을 키운 아틀리에는 건물 하나, 구역 하나로 차츰 발전한다. 그 곳의 건물주들은 그 주변의 동네가 뜨는 것과 관계없이, 아티스트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돕는다. 이렇게 견고해진 구역은 하나의 보루가 되어,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모여들게 하고 결과적으로 더욱 견고해진다. 이것은 구성원들 간의 이해타산적인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그 보루를 지키고자 나서기 때문이다. 아무도 둥지에서 내몰리지 않는다. 그럴 때 비로소 둥지는 둥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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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는 이미 몇 가지 조합들이 꾸려져, 기울어 가는 한국의 몽마르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두리반 사태’를 돕다가 결성된 ‘자립음악생산조합’이나, ‘홍대앞에서 시작해서 우주로 뻗어나갈 문화예술 사회적 협동조합 (‘홍우주’)’ 등이 각자 목소리를 내면서 세미나를 열고, 지원활동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들의 움직임이 이미 둥지내몰림 현상이 시작된 이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홍대앞의 낌새를 일찍 알아차리고, 거대자본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면, 지금 그들이 구축한 둥지는 생각보다 더 엄청났을지도 모른다.

  낙성대와 샤로수길이 뜨고 있다. 그 말인즉슨, 지금 우리는 시간이 없다. 둥지내몰림 현상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을 모으고, 그들의 도움을 하나하나 모아서 우리들의 요새를 구축해야 한다. 아직 낙성대에 살아 숨쉬는 막걸리집, 해장국집, 재즈 카페, 라이브 클럽들의 향취를 오래오래 맡고 싶은 사람들의 작은 바람을 모아야 한다. 나는 잡지를 만들고, 공연을 만들면서 그 바람들을 어떻게든 끌어 모으고자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2016년, 나는 마포구에 놀러 가는 습관을 이제 그만두었다. 더 이상 예전의 버스킹, 예전의 카페, 예전의 걷고 싶은 거리에서 느껴지던 향수가 없다. 대신 내가 다니는 이곳과 가까운 관악구에서 되살아나는 정겨움에 기뻐하고 있다. 나는 이 정겨움만큼은 지키고 싶다. 뜨는 이곳, 샤로수길. 나는 여기만큼은 지키고 싶다.

황운중(자유전공 14)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락스피릿을 사랑한다. 그래서 락스피릿이 넘치는 글을 쓰는 게 욕심이다. 서울대에서 음악매거진을 만들어서 편집장을 하고 있고, 기획공연을 만들기도 한다. 자유전공학부에서 미학과 영상매체예술을 전공한다. 돈이 안 되는 길만 골라가는 중이지만, 돈이 없는게 원래 락 스피릿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