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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기 이전에 사람이잖아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2015)’
등록일 2015.12.04 23:22l최종 업데이트 2015.12.05 16:09l 임재연 기자(kylie1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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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인턴'의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무급인턴’, ‘열정페이’. 요즘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대 이슈다.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는 ‘갑질’에 민감해진 사회는 정당한 보상이 지급되지 않는 인턴의 노동에 대해 분개한다. 오늘날 인턴은 쉽게 뽑아 쓰고 쉽게 버린다는 의미에서 ‘티슈’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인턴’이 내포하는 의미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인턴이 내뿜는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전면으로 뒤집고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화가 있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인턴’이다.


  영화 ‘인턴’의 이야기는 한 기업의 지역 봉사활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창업 약 2년 만에 놀라운 성공신화를 일궈낸 온라인 의류 회사 ‘어바웃 더 핏(About the Fit)’은 지역 주민에 대한 봉사의 일환으로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직장에서의 은퇴와 아내와의 사별 이후 다소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벤 휘태커는 시니어 인턴을 채용한다는 ‘어바웃 더 핏’의 광고를 보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지원서를 보내고, 이내 면접을 통과해 인턴으로 채용된다. 함께 채용된 젊은 동료들과는 달리, 직장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노련함으로 그는 곧 ‘어바웃 더 핏’에서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


  줄스 오스턴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어바웃 더 핏’의 CEO. 그녀는 고객 상담 전화부터 의류 포장까지, 회사의 모든 일을 직접 담당한다. 밥을 제때 챙겨 먹을 시간도,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틈도 없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과 보내는 시간은 출근하기 전 나누는 짧은 대화가 거의 전부다. 줄스의 회사가 성장 궤도에 오르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점차 힘들어지자 줄스의 남편 매트는 직장을 포기하고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게 됐다. 줄스의 휴대폰은 회사, 공장, 친구, 가족의 연락으로 분 단위로 울린다. 회사에서는 더 많은 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실내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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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려고 회사에서 자전거로 이동하는 줄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갈등은 인턴 벤이 줄스의 직속 부하로 배정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채용 직후 벤에게는 이렇다 할 직무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40년가량 전 직장에서 부사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벤은 회사에 손이 필요한 곳을 척척 찾아내 해결하면서 동료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다. 이 모습을 보고 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CEO 줄스는 그를 자신의 직속 인턴으로 지정한다. 그러나 연배가 높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어색하고 힘든 줄스에게 벤의 세심한 충고와 배려는 견딜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오고, 그녀는 다시 마음을 돌려 벤의 부서를 바꿔버린다.


  하지만 상황은 곧 반전된다. 줄스가 자신이 벤에 대해 가졌던 불편함이 그녀와 부모님 사이의 좋지 못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면서다. 그녀는 벤에게 그간의 성의를 무시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였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하고 다시금 벤을 자신의 부서로 옮긴다. 줄스를 ‘빈틈없이 냉정한 무서운 여자’로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직원들과 달리 벤은 CEO로서, 한 명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갈등하는 줄스의 인간적 모습을 읽어낸다. 회사에서의 지위는 턱없이 낮지만, 70년의 인생에서 축적된 경륜은 여러 중첩되는 역할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30대 초반 CEO의 내면에 치유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상급자와 하급자의 딱딱한 관계를 떠나 벤은 줄스가 가장 결핍하던 인간적 소통을 채워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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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스와 벤은 CEO와 인턴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서로와 소통한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인턴’이 주는 메시지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내적 소통이 결핍된 사회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직무와 과업의 수행에 수반되는 기계적인 소통 이외의 교류나 연결은 점점 메말라간다.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달려 온 역사는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성장을 위해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기계적인 의미로 전락시켰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해야 할 일들과 역할에 치일 뿐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받고 대우받는 일은 드물다. ‘갑질’ 논란, ‘열정페이’도 골자는 모두 같다.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다소 저조한 성과를 거둔 영화 ‘인턴’이 누적관람객 354만 관객을 돌파하며 유독 한국에서만 큰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입소문을 타고 관객을 모은 ‘인턴’의 성공은 인간적 소통, 인간적 관계를 향한 사람들의 갈구와 내면의 결핍을 보여주는 징표다. 70대 인턴 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인생 조언이 아니다. 벤을 통해 우리는 바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삶의 빈칸들을 돌아본다. 목표를 추구하느라 놓았던 인간관계,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접었던 나의 열정, 성과를 내기 급급해 돌보지 못했던 나의 내면을 비로소 돌아보게 된다. ‘인턴’은 어떤 직위를 부여받기 이전의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그 안에는 뻔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살면서 방황하고 갈등을 겪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갈등과 방황을 실패로 치부하는 가혹한 잣대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움츠러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턴’은 그 자체로 유쾌할 뿐 아니라 삶에 치이는 나를 치유해 주는 좋은 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