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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먹는 사탕 같은 달콤함 인피니트와 <인 더 하이츠>
등록일 2015.12.16 14:34l최종 업데이트 2016.01.15 20:42l 심하경 (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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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뮤지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뮤지컬이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전반적으로 화려하다는 것이다. 가끔 뮤지컬을 보고 나면 내가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스펙터클에 현혹되기만 하지는 않았나 자기반성을 하게 될 정도다. 우연히 <인 더 하이츠>(이하 <하이츠>)라는 뮤지컬의 포스터를 봤을 때도 랩과 비보잉이 가미된 신개념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 이유로 그 작품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미 모든 요소가 자극적인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힙합의 자유로운 느낌이 잘 살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금 13만원을 주고 결국 뮤지컬계의 소위 “듣보잡”이라고 할 수 있을 그 공연을 보고 왔다.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인피니트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두 명이나 나오기 때문이었다! <하이츠>는 뉴욕의 히스패닉 할렘이라고 불리는 워싱턴 하이츠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빈곤하고 차별 받는 라틴계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뮤지컬이다.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초연인 이번 공연에는 인피니트의 메인보컬인 김성규와 래퍼 장동우가 각각 베니와 우스나비 역에 캐스팅되어 출연했는데(더블 캐스팅을 넘어 트리플, 콰드러플 캐스팅이었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VIP석 예매를 감행하게 됐다. 괘씸하게도 공연장 1층 전체가 VIP석이라서 내 자리는 성에 찰 만큼 무대와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코입이 분명하게 보일 거리에서 내 아이돌을 볼 수 있다는 데, 예매 전 망설임에 허비해버렸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사실 나는 그간 인피니트에 대한 나의 팬심을 일종의 길티 플레저로 여겨왔다. 공연예술을 공부하다 보니 “좋은” 퍼포먼스에 대한 내 나름의 관점과 기준이 생기게 됐는데, 종종 인피니트가 퍼포먼스로서가 아니라 멋지고 귀여운 이미지로서 소비될 수밖에 없도록 자신들을 내보이는 것 같은 때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돌 스타로서 이 산업의 작동 논리 속에서 그럴 수밖에는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상품이 아니라 아티스트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처를 입는다. 마찬가지로 뮤지컬이 언제나 화려하고 멋진 이미지로 가득한 무대로 관객을 홀리는 “문화상품”이 아니라 “예술작품”이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자주 좌절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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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의심을 안고 잔뜩 경계한 채로 단지 인피니트를 보기 위해 관람한 <하이츠>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라틴계 이민자 캐릭터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랩과 비보잉은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걱정했던 부분들을 눈여겨보았지만, 보는 내내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인피니트를 제외하고는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주요 역할을 맡았고, 그들이 노련한 연기로 납득 가능한 세계를 구축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늘 지나치게 화려하다고만 느꼈던 뮤지컬 무대가 <하이츠>에서는 작품의 배경에 걸맞게 소박하고 친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가끔 어쩔 수 없이 인피니트의 연기가 살짝 튀게 되는 순간들은 있었지만,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랩과 비보잉이 크게 매력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또 그 외에도 음향이나 안무의 사소한 부분들이 내 심장을 가끔 조여들게 했지만, 결국엔 학예회에 참석한 학부모처럼 그저 너그럽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다.

  갈수록 많은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에 캐스팅되고 있는 요즘,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그들의 실력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뮤지컬 그 자체보다는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뮤지컬과 아이돌의 조합은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예술이 아니면 어떻고, 길티 플레저면 또 어떠랴, 이렇게나 달콤한데.



심하경 (공연예술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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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고 넓은 관심사 덕분에 공부가 순탄치 않지만, 
춤추지 않는 춤, 테크닉과 무용언어가 배제된 춤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