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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를 대입하면 성립하는 공식 '공대생의 연애 공식(토니슬라브 흐리스토프, 2014)'
등록일 2016.05.02 19:16l최종 업데이트 2016.05.03 16:41l 선창희 기자(sch71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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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의 수재 공학도들이 모였다. 실험자 1명과 피실험자 4명, 이들의 목표는 특정 컴퓨터를 해킹하는 완벽한 공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들은 토의하고, 강의를 듣고, 온갖 실험을 진행한다. 하지만 성공은 요원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해킹하고자 하는 컴퓨터는 다름이 아닌 여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수재들이 모인 이유는 ‘솔탈’이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 속 인물들의 실사판을 보는 듯하다. 사람을 사귀는 데 유용한 모든 사회적 기술을 결여하고 있는 괴짜들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울림이 있다. ‘공대생의 연애 공식’은 그 울림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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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연애공식(토니슬라브 흐리스토프, 2014)’의 포스터. ⓒIMDB



사랑의 과학적 이해

  이들에게 사랑이란 뇌의 화학적 반응이다. 여자란 인생의 어떤 목적지다. 사랑은 상대를 향한 욕망으로 시작한다. 욕망이 끌림으로 발전하면 뇌에서 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 호르몬이 분비돼 연인들이 들뜨고 행복하게 만든다. 다음 단계는 애착이다. 이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옥시토신, 바소프레신으로 사랑이 오래 지속되게 돕는다. 인간의 뇌가 이와 같이 반응하고 사랑을 하는 이유는 진화론적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종족 번식을 위해서이다. 사랑에 빠지는 방법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된 일례가 있다.

  그럼에도 피실험자 투오마스는 지난 30년 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 다른 피실험자 토도르는 머리로 아는 것과는 별개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손짓이, 표정이 어색하다. 안돈도 마찬가지다. 물론 실험자 아나타스는 결혼을 했고 어린 아들이 있다. 그가 피실험자들을 데리고 모든 실험을 지휘한다. 소개팅에서 피실험자와 상대 여성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소형 마이크를 통해 듣고 실시간으로 조언을 한다든지, 실험실에서 대화하는 피실험자와 상대 여성의 뇌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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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대화하는 피실험자와 상대 여성의 뇌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실험 중.

ⓒhttp://www.love-and-engineering.de/galerie.html


  한 실험은 체취가 개인의 매력에 미치는영향을 알아내기 위해 진행됐다. 남성 피실험자 중 마르쿠스에게 유독 높은 점수를 준 여성 피실험자는 그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하게 만드는 대화가 오고간다. 마르쿠스는 컴퓨터 게임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상대에게 신이 나서 게임 ‘매스 이펙트 3(mass effect 3)’을 설명하고, 자신이 개발 중인 게임 이야기를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질문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데이트 이야기를 들은 토도르는 “내가 여자였다면 당신에게 반했을거다”라고 맞장구치니 이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혼자서도 잘 살아 왔는데…”

  “연애는 논리적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해가 되잖아요.” 토도르는 눈물을 글썽이며 메인 목으로 따지듯이 말을 내뱉는다. 그는 실험을 진행하던 중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만난 지 두 달이 지나갈 즈음 그는 스스로 관계를 정리한다. 상대가 멀어지는 걸 느끼고 관계에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나 약속을 잡지만 그녀는 당일에 전화해, 마치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태연스럽게 약속을 취소한다. “이런 게 문제에요”라며 토도르는 스스로를 진단한다. “혼자서도 잘 살아왔는데 2달 반 동안 여자를 만나자 모든 게 엉망이 됐어요.”

  사랑의 마지막 단계는 애착이 아니다. 거부(rejection)다. 구애를 거부당한 사람의 뇌는 세로토닌 지수가 낮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강박감이 생긴다. 뇌는 자신이 갈구하는 대상을 얻지 못할 것이라 인식하고 이에 마음이 아니라 몸이 반응한다. 토도르의 증상은 불안감, 빠른 맥박, 그리고 답답함이다. “생리적으로 뭔가 일어나고 있어요. 내 뇌가 내게 영향을 주고 있는거죠.” 병명은 그 이름도 극악무도한 사랑이다.

  그는 타인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부당한 듯이 스스로를 잃어버렸다. 운동을 하고 빵과 설탕을 피하는 식단을 고수하면서 직접 요리하기를 즐겼지만 이젠 아니다. ‘이게 다 뭔가’싶어 운동을 그만두고 불량식품과 패스트푸드에 의존했다. 그리고 그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사랑은 알고리즘 그 자체

  실험에 참가한 네 명의 남성 피실험자들 중 토도르만이 공식을 알아냈다. 마음의 문제를 논리와 이성으로 상대했고 끝내 좌절한 그가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논리적인 사람에서 감성적인 사람이 됐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하도록 훈련받은 그가 이제 직감을 믿는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수천 년에 걸쳐 진화했기에 온라인 데이트나 매칭 시스템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는 잠시 눈이 멀기 전엔 몰랐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이정하, 「눈이 멀었다」)’ 호르몬의 이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과학적 지식은 반드시 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해는 이론이나 공식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사랑의 공식은 눈이 멀어 공식을 잃어버렸을 때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 토도르는 확신한다. “3초면 짝을 알아볼 수 있죠. 사랑은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