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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관악산
등록일 2016.05.11 14:26l최종 업데이트 2016.05.11 14:26l 진준현(서울대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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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가르치고 일하는 교직원들은 모두 하루 종일 관악산 아래에서 생활한다. 아침에 등교하거나 출근할 때 정문이나 후문을 통해 관악산을 쳐다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교하거나 퇴근할 때 어두워져가는 관악산을 뒤로하고 집으로 간다. 어떤 때는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어 보이지 않고, 어떤 때는 선명하고 맑은 얼굴로 맞아준다. 봄에는 빌로드 같이 부드러운 신록을 입고 서 있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치장하고 서 있다. 겨울에는 흰 눈을 덮고서 차갑고 가까이 하기 어려운 기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관악산은 일년 365일 한결같이 묵묵히 서 있다. 관악산은 너무나 당연히 거기 있으므로, 사람들은 의식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사진 찍기 좋은 모습을 보일때, 혹은 서울대학교에 처음 온 사람들은 배경으로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이처럼 관악산은 서울대학교와 혼연일체가 되어 항상 거기 있었던 것처럼 서 있다. 그러나 관악산이 서울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불과 40년이 조금 넘을 뿐이다. 1975년 서울대학교를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서울시내 동숭동 등에 산재해 있던 여러 단과대학들을 관악으로 모은 것이다. 관악산은 수천만 년, 수억 년 서 있었으나 서울대학교가 관악산 자락으로 옮겨온 것은 이처럼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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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필운상화도(弼雲賞花圖)>, 비단에 담채, 27.5×33.5cm, 개인소장. 최완수, 『겸재의 한양진경』(동아일보사,2004), p.152수록.



  필자는 서울대학교가 관악산과 함께 한 초기부터 생활해 왔다. 필자는 미술사를 전공하며, 남들과 달리 전공 상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하는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악산의 변화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항상 보고 느끼고 때로 의식적으로 즐기고자 하였다. 이 글은 관악캠퍼스 서울대학교 가족들 중에 필자처럼 관악산을 미적 향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 학생, 교직원분들을 위해 써 본 것이다. 관악산은 옛날부터 시로 읊어지고, 그림으로 그려졌다. 관악산을 그린 작품은 상당수 있으나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관악석람도(冠岳夕嵐圖)>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라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일본 야마또문화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악석람도>는 저녁 무렵 푸르스럼한 산기운에 쌓인 관악산의 모습을 그린 작은 작품이다. 돗배가 두 척 떠 있는 곳은 바로 한강이다. 강 건너 멀리 푸른 실루엣으로 보이는 산이 관악산으로, 마치 불꽃이 일렁이는 것처럼 표현되어 관악산의 형태적 특징을 잘 전달하고 있다. 그린 장소는 행주산성 부근이다. 관악산 바로 아래 돗배 위쪽에 바위섬이 세 개 수면위에 돌출해 있는데, 이곳은 공암(孔巖)이라 불리는 곳이며, 인근의 허가(許家)바위가 양천 허씨의 발상지로 알려져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이곳은 아름다운 한강변의 기암괴석이었으나,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면서 육지로 들어가서 현재는 강서구 구암공원 내에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 구암공원은 양천 허씨 중 명의(名醫)로 유명했던 구암(龜巖) 허준(許浚,1539-1615) 선생을 기념하는 공원이다. 공암의 오른쪽 한강변에는 숲이 우거진 가운데 기와집이 몇 채 보이는데, 이곳은 현재의 궁산으로 옛날 양천현 관아가 있던 곳이다. 현재 이 궁산 위에는 강서구청에서 겸재 정선 기념관을 건립하여 운영중이다. <관악석람도>를 그린 정선은 한때 양천 현령을 지내며 한강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은 작품으로 남겼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공암의 왼쪽 더 멀리 한강변에는 인가가 여러 채 서있는 산이 보이는데, 이곳은 선유도(仙遊島)이다. 선유도는 이름그대로 신선이 노니는 아름다운 섬이었으나,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놓이며 산이 깎여져 버렸다. 한편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한강 이쪽 강변에는 갓을 쓴 몇 사람이 언덕에 서서 아름다운 관악산의 저녁경치를 감상하고 있다.정선은 관악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 경치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그림 속에 작게 그려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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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관악석람도(冠岳夕嵐圖)>, 비단에 담채, 32.4×44.7cm, 일본 야마또문화관 소장.


  정선은 관악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여러차례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이 작품처럼 한강변에서 본 모습이 있는가 하면, 서울시내에서 바라본 작품도 있다. 그 중 한 점이 개인소장의 <필운상화도(弼雲賞花圖)>이다. 이 작품은 인왕산 자락 필운대에서 사람들이 봄꽃놀이를 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화면 가운데쯤 동그란 언덕이 필운대인데, 그 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봄철의 꽃을 감상하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한양 시가지는 시내인지 공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우거졌는데, 붉은 꽃들이 만발해있다. 필운대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선생의 옛 집터로서 근처에 살구나무가 많아서 봄철 꽃놀이와 시회(詩會)의 장소로서 많은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필운대의 아래쪽 소나무 아래에는 봄놀이를 온 사람들이 타고 온 말들이 매여져 있다. 한양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경치 좋은 필운대 위로 멀리 푸르스럼한 관악산이 실루엣으로 표현되어있다. 관악산 바로 아래에는 남대문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는 짙푸른 남산이 이어진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그림으로, 실제 우리나라의 자연을 표현한 것이다. 정선이 그린 두 점의 그림을 통해 관악산이 조선시대 한양 인근의 랜드마크로서 그 아름다움이 널리 감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경산수화의 특성상 작품을 감상하려면 실제 위치를 알아야 하므로, 그림에 그려진 지형을 다소 자세하게 설명하였지만, 이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독자들이 잘 아시리라 생각된다. 정선이 이 그림들을 그린 지 약 3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조시대는 끝나고, 아픈 여러 역사를 거쳐 민주주의 시대에 세계가 주목하는 많은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정선의 이 그림들은 우리가 놓치고 잃은 것이 너무 많음을 알려준다. 서울과 한강, 그리고 관악산의 아름다운 경관은 도시화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고, 돗배가 떠가던 한강 주변은 고속도로가 놓이며 차들이 줄지어 질주한다. 아름다운 공암과 선유도는 도로를 위해 훼손되고 숲이 우거졌던 한양시내는 삭막한 콘크리트로 뒤덮였다. 시대가 바뀌면 물론 인간의 삶의 터전도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주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을 우리는 얼마나 아끼며 보존하려고 노력했는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학교 캠퍼스 건물 중 100년 뒤에 역사의 향기를 지닌 채 살아남을 건물이 과연 있을까? 관악산은 앞으로도 수 천 만년, 수 억 년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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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준현(서울대박물관 학예연구관) 서울대학교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동 대학원에서 단원 김홍도 연구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1983년부터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재직 중이며 2013년부터 서울시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