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호 > 문화
아빠와 아이들이 가버린 자리엔 시청률만 남았다.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최은국 (ceenge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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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된 지 3개월 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아빠, 어디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며 아이들의 순수함에 대한 걱정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일요일 저녁, 리모콘을 잡은 손은 SBS와 KBS 2TV를 번갈아 틀 뿐 MBC로 향하지 않았다. 한 쪽에서는 숨막힘을 연출하지만 짜고 치는 것만 같은 쇼프로가, 다른 방송에서는 ‘리얼’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함인지 알아서 야외취침을 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월요일을 앞둔 씁쓸한 저녁을 달래주기에는 두 프로그램 모두 손색 없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반복되는 포맷이 지겨워진다. 그러던 찰나 저조한 시청률에 허덕이던 MBC가 다섯 명의 아이들과 아빠들을 구세주로 내세웠다. 방송이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아빠 어디가’는 죽어가던 MBC 주말 예능의 심폐소생기로 역할을 톡톡히 했고, 아이들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아이돌’로 성장해 예능을 벗어나 광고계까지 넘보고 있다.

‘후’와 ‘지아’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러브라인’으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었지만 ‘지나치게 어른의 시각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이들연애사(使), ‘너넨 그냥 사랑하는 거야’
‘아빠 어디가’가 온 국민의 인기를 끄는 현상을 두고 많은 평론가들은 ‘착한 예능에 목말랐던 국민들의 열망’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막장이 판치는 드라마 판, 민망한 ‘쩍벌춤’을 선보이는 음악 프로그램, 그리고 ‘리얼’에 집착하다 보니 조작 논란에 휘말린 예능까지 시청률에 눈이 멀어버린 방송에 질렸다는 것이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30번 절하고 자기 이름을 ‘10준수’로 쓰는 아이들. 그 자체로 얼마나 리얼하고 순수한가. 여기가 타락한 세상의 마지막 보루인 것만 같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돌발 반응을 제외하고는 ‘아빠 어디가’에 등장하는 장치들은 너무나 익숙하다. 방송이 아이들을 시청률을 위해 움직이게 만들고 그들의 행동을 지극히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반찬을 구하러 다니는 아이들의 난처함은 이미 1박 2일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아이들’이라는 소재에 눈을 돌리면 ‘아빠, 어디가’에서 방송계가 사용했던 클리셰가 더 잘 드러난다. Beauty(미인), Beast(동물), Baby(아기)라는 3B는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소재들이다. 그렇다 보니 예능에서도 3B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방송됐다. TV 동물농장을 비롯해 우후죽순 등장했던 동물 프로그램(Beast)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졌고, 방송사들이 그 대안으로 삼은 것이 아이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양상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키즈 프로그램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환상의 짝궁’에서 아이들은 부차적 요소였다. 아이들이 낸 퀴즈를 맞추는 연예인들의 기지가 더 부각됐다. 하지만 2009년 SBS에서 ‘붕어빵’을 통해 공동메인으로 떠오른 아이들은 ‘아빠 어디가’를 통해 프로그램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아빠, 어디가’는 아이들에 의한 착한 예능이지만 소재면에서 볼 때 높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계획된 어른들의 프로그램인 것이다.
어른들의 시선이 특히나 느껴지는 대목은 심심찮게 등장하는 아이들의 ‘러브라인’이다. 프로그램 초기, 제작진이 찾아낸 ‘후’와 ‘지아’의 러브라인은 ‘아빠, 어디가’의 인기를 견인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에 ‘준수’까지 가세한 아이들끼리의 연애 이야기는 프로그램의 중요한 요소로 점점 더 부각됐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응 속에서 생각해 봐야할 것은, 아이들 사이의 단순한 친근감의 표시를 어른들이 임의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꾸며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빠, 어디가’에는 ‘민국’이와 ‘동생’들이 보여주는 우애와 아이들끼리 순수하게 교감하며 발산하는 감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연애감정’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빠, 어디가’가 마냥 아이들에 의한 착한 예능으로 불리는 것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아빠가 진짜 가버린 ‘아빠, 어디가’, 기획의도가 뭐였더라?
‘아빠와 아이, 오롯이 단 둘만이 서로를 의지하며 마음을 나누는 밤을 보내게 된다’,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소외되어가는 아빠의 자리 …(중략)…, 그 자리를 찾아 나섰다’
모두 ‘아빠, 어디가’의 기획의도다. 하지만 요즘 ‘아빠, 어디가’를 보면 기획의도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첫 회에는 아버지들의 인터뷰를 통해 집 안에서 아버지가 겪는 고충을 보여 주고 기획의도에 충실하려 했다.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후의 ‘먹방’, 준수의 ‘엉뚱함’과 같은 장면들을 통해 아이들의 매력이 부각되면서 다섯 아이들의 아버지는 뒤로 밀려났다. 프로그램 내에서 아버지들이 나오는 시간은 아이들이 구해온 재료를 가지고 밥을 하는 순간 그리고 간간이 등장하는 둘 만의 시간뿐이다.
‘아빠, 어디가’의 인기 요인이 부자끼리 공감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흐뭇함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여주는 엉뚱함과 귀여움이 된 순간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순수함을 간직하기가 예상보다 어려워진 것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이 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3월에는 ‘후’가 학교에서 밥 먹는 모습을 담은 ‘도촬’이 인터넷에 게재되기도 했다. 초기 제작진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해치지 않는 착한 예능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들과 아이들이 방송에 나가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인기가 올라가며 주위에서 아이들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TV 출연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비밀일 수 없게 됐다. 출연자 이종혁 씨가 트위터에서 ‘아들 준수가 TV에 출연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글을 게시한 것은 아이들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과 그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마감을 하고 있는 지금 TV에서는 ‘아빠, 어디가’가 방송되고 있다. 엉뚱한 다섯 아이들은 혜민스님의 ‘한 마디’보다 우리를 치유해주고 생활 속에 무뎌진 아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후가 ‘간장계란밥’을 먹으며 CF를 기대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월요일을 앞두고 생각만으로 지쳐버린 우리들을 아이들이 위로해주듯 그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