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호 > 문화
철수와 영희, 이야기와 마주하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과 지원 확대돼야
등록일 [데이터가 없습니다]l최종 업데이트 [데이터가 없습니다]l 이래경 기자 (reflection462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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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너무하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사태, 용산 참사 보면서 안됐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직도 그래?’ 자기 일이 아니라 이거지?”
“서울역 앞에서 KTX 여자 승무원들은 아직도 투쟁하는데, 그걸 보며 ‘아직도 저래? 뭐먹고 살아’ 이런 얘길 하게 만드는 냉정한 세상. 전 대통령이 목숨을 던졌지만 결국 잊혀질 테지”
“내가 글을 쓴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속는 셈치고 좀 움직여보고 즐거워 보려고 발악이라도 해 봐야하는 건 아닐까. 그래. 할 수 있을 때까진 해보자”
나의 이야기를 담아 만드는 이야기
세상을 향한 한 줌의 관심이 있었다. 관심은 문자를 만났다.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와 소통하려 했다. 작년 에서 실시한 ‘제 1회 손바닥 문학상’에서 ‘인디안밥’으로 가작을 수상한 한혜경 씨는 최대한 자신의 경험을 살려 소설을 썼다. 한예종 출신으로 1인 시위를 했던 날을 떠올렸고, 그 당시 비키니를 입고 시위하지 못했던 걸 아쉬워하니 소설 속 주인공은 어느새 더운 여름날, 핫핑크 색 비키니를 입고 막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는다. “친한 지인들의 작은 프로필 조각이라도 요긴한 얘깃거리가 된다”고 글 쓰는 즐거움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지닌 소소한 매력을 일러주었다.
은 한 씨와 같은 일반 사람들의 글쓰기를 장려하자는 취지에서 시대와 호흡하는 짧은 소설, 한 손바닥으로 가려질 소설을 찾아 나섰다. 평범한 이들의 소설 창작에 보내는 박수, ‘손바닥문학상’이 바로 그것이다. 1회 차임에도 불구하고 총 171편의 작품이 응모되어 일반인들이 지닌 글쓰기 욕망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자 한혜경 씨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글 속에 반영한다.

사실 일반인들의 이야기가 주목받은 건 최근의 일은 아니다. KBS는 지난 2007년부터 를 약 1년 반 동안 방송했다. 두세 명의 출연자가 나와 ‘이야기 배틀’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반인들에게 녹아있는 좋은 이야기들을 발굴해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취지였다. 심야 시간에 편성돼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전문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전하는 이야기의 참신함에 매료된 매니아 층을 형성하면서 이야기 문화의 발전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제작을 맡았던 최인성 PD는 “프로그램 시작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대중에게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로 프로그램 기획에 착수했다. 일반인의 머리에서 정제되지 않고 뿜어오르는, 세련되지 않은 이야기가 지닌 창의성의 가치를 믿은 시도였다.
<스토리텔링클럽: 이야기발전소> 프로듀서 최인성 씨. 1차 스토리의 생산을 강조했다.

보통 사람들이 주는 날것의 저력에 주목해야
일반인들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이란 키워드가 지닌 잠재력에서 엿볼 수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조앤 K. 롤링에게 단숨에 무려 300조의 수익을 안긴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영화 ‘아바타’의 극장 흥행 수익이 20억 달러에 이르러 2014년 완공 계획인 ‘제 2 롯데월드’ 공사비 수준이라고 하니 잘 짜인 이야기, 공장 100개 부럽지 않다”며 굴뚝 없는 문화산업이 지닌 부가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인성 PD는 특히 문화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는 1차 자원으로써 이야기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야기는 문화콘텐츠로 탈바꿈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 적합하다. “한국영화가 최대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관객 천만 명을 동원한 영화가 많았는데, 2006년을 기점으로 침체됐다. 왜 망했는가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이 ‘스토리’였던 것 같다”며 이야기 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한국 문화계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소수의 전문 작가 층이 생산해 내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드라마에서 초반에 참신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다가도 결국 소재는 바닥을 드러내고 ‘출생의 비밀’과 같은 고질적인 한계가 반복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다.
그 이유를 최 PD는 일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엔 이야기의 원천이 될만한 풀(pool)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야기의 저력은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문화산업에 쓰일 콘텐츠로써 다용도로 사용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고 말하며 그는 ‘전설의 고향’이나 지난 해 개봉했던 ‘뉴 문’을 사례로 들었다. 전설이나 민담에서 발전한 두 이야기를 통해 “어떤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쉽게 접근하기 위해선 보편적인 내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고 일러줬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우리가 아는 전설이나 민담이 그 예다. “1차 이야기를 만들 때 전설이나 민담의 내용 및 구조를 참고하는 게 좋다”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반 사람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일본의 경우 다양한 이야기 소재가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인에게 친숙한 보편적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본 줄기에 조금만 가지를 쳐도 익숙한 이야기를 토대로 누구나 쉽게 독특한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최 PD의 분석이다.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한국 문학계는 일종의 순혈주의를 고집해 순문학 외 다른 장르의 문학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반인들에게 순문학이 요구하는 진입장벽은 결코 낮지 않다.
짤막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의 장 열릴까
140자로 전하는 이야기. 트위터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고 전할 수 있는 마당이 넓어졌다. 작가 매트 스튜어트는 ‘프랑스 대혁명(The French Revolution)’이라는 그의 소설 전체를 트위터에 올리는 시도를 했다. 대략 48만 자로 되어있는 이야기 전체를 트위터로 옮기려면 3,700여 개의 트윗을 작성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의 탄생을 예고한 것으로 그 참신함이 주목받았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는 “스마트 폰의 확산으로 누구나 어디서든 신속하게 트위터로 정보를 전달하고 받을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해졌다”면서 “전문적인 글쓰기가 요구되지 않는 트위터를 통해 일반인들의 이야기 생산의 장이 새롭게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 애완견의 죽음을 슬퍼하며 유기견을 길러냈던 사연을 올렸다. 순식간에 많은 이들이 애도의 글과 함께 감동받았다는 답변을 달았다”는 사연을 얘기하며 “140자의 짤막한 문장으로도 이야기 생산의 충분한 가능성을 발견했다”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1994년 쯤 한 서울대 학생이 무선호출기(삐삐) 인사말로 하루에 20초씩 자작소설을 녹음했다. 20초 안에 몇 문장이나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소설의 뒤 내용을 궁금해 한 사람들로 인해 무선호출기 통화자가 폭증했다” 짤막한 이야기였기에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작성할 수 있었고, 나와 같은 평범한 이의 이야기였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트위터는 간략하게 핵심을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더 선명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프랑스 혁명'이 올라오고 있는 트위터. 트위터가 이야기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까.

물론 내용의 핵심만을 추려 압축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수상자 한혜경 씨는 “짧은 이야기일수록 일반인들이 쓰기 힘들다”며 보통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자칫 아무 의미도 획득하지 못할 수 있는 손바닥문학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게 뭐야?’란 반응이 당장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이야기에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 은 ‘손바닥 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하고도 “‘손바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을 찾기는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분량을 원고지 70매 안팎으로 정하다보니 80매 내지 90매에 이르는 기존 단편 소설과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에 공모된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로 보였다. 이에 은 “손바닥문학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하한선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고 전해왔다. 지난해 60~70매였던 하한선을 30매 정도로 할까 논의 중이라고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이야기, 원초적 즐거움을 찾아서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이야기 문화가 발전하기 어려웠던 이유로 공통적으로 제시된 사항이 바로 ‘말 막는 문화’와 ‘무관심’이다. 김용민 평론가는 경쟁위주 사고의 틀이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식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부모세대의 권위적인 태도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나아가 정제된 글쓰기만을 대우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시했다. “논리가 아닌 감정이 지배하는 글이 좋은 평을 받기는 힘들지만, 글이 글쓴이의 진심을 담는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맞춤법, 문맥호응,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세태가 결국 글쓰기를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한 건 아닌지 꼬집었다. 한혜경 씨 또한 “어려서부터 입시 경쟁의 한 가운데로 내몰린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즐기는 일을 사치라고 여기게 됐다”며 “도구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원초적인 놀이방법 중 하나인 이야기 문화를 어린 세대에게서 뺏지 말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모든 게 경쟁인 사회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원초적 즐거움을 뺏기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구둘래 기자는 “이야기는 재밌기 때문에 좋다. 진짜 이야기는 그 자체의 힘이 있어야 한다”며 “교훈을 얻는다, 감동을 얻는다 식의 싸구려 부수 효과 없이, 책을 읽는다는 자체만으로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형식은 다를 수 있지만,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즐거움을 찾는 데 이야기만큼 손쉬운 방법도 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국에 수천 개의 스토리 클럽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이야기 문화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낮은 시청률로 고생했던 때, 마침 KBS의 경영진이 교체됐다. 결국 폐지된 를 회상하며 최인성 PD는 “이야기콘텐츠를 발표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져야 한다”며 씁쓸한 내색을 비쳤다. 덧붙여 를 제작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이야기의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례로 충북 청주시는 ‘1인 1책 펴내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높게 느껴지는 출판계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그들이 자신만의 책을 갖도록 돕자는 취지다. “독서만을 강조하기 이전에 책을 스스로 써보면서 이야기에 친숙해질 수 있다”는 게 관계자 임정숙 씨의 말이다.
사실 사람이 사는 곳에 언제나 이야기는 있었다. 문학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기쁨을 알아가는 사람들, 다듬어지지 않아서 다듬어질 수 있는 원석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