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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누가 지켜주나요?
등록일 2016.12.14 21:36l최종 업데이트 2016.12.15 13:12l 이기우 사회부장(rna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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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을 맞은 새누리당 당사를 의경들이 청소한 것에 대해 경찰청장이 “의경들이 자발적으로 청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는 기사를 봤을 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군 복무 중인 의경들이 ‘주말에’ 그것도 ‘자발적으로’ 청소를 했다니. 심지어 장소마저 부대 밖이다. 반드시 의경이 아니더라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내가 군대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경험이었다. 내가 할 일이 아닌 일을 해야 하는 불합리함. 물론 군대는 집단지향적인 곳이고, 내가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 만큼 굳이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을 떠안는 쪽은 계급이 낮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은 집단 전체가 아니라 보통 일을 시키는, 계급이 높은 사람 개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대한 반발은 군대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마법의 한 마디로 일축된다. “까라면 까.”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말이다. “까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의미하는 걸까? 적어도 상식적인 지시의 뉘앙스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비상식적인 지시라도 상관의 지시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저 네 글자에 함축돼 있다.

  철저한 상명하복은 군대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이는 군의 기강을 잡고 지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다시 말하면 군이라는 집단의 존립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병장이 자신의 빨랫감을 이병이 빨래하도록 시키는 것이, 하사가 자신의 행정 작업을 병사에게 시키는 것이, 장군이 운전병을 시켜 야밤에 놀러 나가는 자기 아들을 공무용 차량에 태워 보내는 것이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군의 존속을 위한 상명하복의 원칙이 계급 사회에서 상위에 있는 사람이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군대 안에서만 일어난다면 백 번 양보해서 넘어갈 용의가 있다. 그러나 “까라면 까”라는 마법의 주문은 사회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수많은 불합리한 지시들이 오늘도 정당화되고 있지만 실제로 추구되는 것은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소수 개인의 이익이다. 부사수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사수나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상사는 직장 생활의 어려움에 등장하는 가장 흔한 인간상이다. 이러한 문제가 모두 군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겠지만, 사회 체제의 일부인 군대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근거 없는 공격은 아닐 것이다.

  <서울대저널> 140호 커버스토리 <군대의 그림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폭행과 악·폐습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대 안에서의 특수한 사고방식과 관습이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며, 사회와는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거창한 문제의식을 기사 세 개에 온전히 녹여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군대 안에서 억눌려 있는 개인들을 대신해 질문 하나를 던지는 역할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군인은 국민을 지킵니다. 그럼 군인은 누가 지켜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