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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사람들
등록일 2017.03.10 01:56l최종 업데이트 2017.03.18 01:05l 한기웅 기자(surfpengu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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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소녀상 르포 기사는 기자의 첫 기사였다. 처음 현장을 방문해서 취재를 해봤고, 처음 명함을 건네봤으며, 처음 PRESS증을 목에 걸어봤다. 처음 쓰는 기사에 중요하지도 않은 일까지 모두 기사에 담으려다 정해진 분량의 2배를 써서 줄이는데 애먹기도 했고, 그렇게 열심히 줄인 기사의 구도를 바꾸면서 아예 새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취재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이유는 단지 이 기사가 처음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 ‘위안부’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쓰기로 했을 때 기자는 책을 읽고 기사를 모니터링 하면서 끝없이 쏟아지는 부정적인 뉴스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않은 채 ‘불가역적’이라고 못 박아버린 12.28 한일합의는 물론이고, 이름과는 정반대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화해·치유재단의 행보,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고 극우 노선을 걷는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70% 가까이 나온다는 뉴스에서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계속 떨쳐버리려 했지만, “내가 이 기사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기자를 괴롭혔다.

  그래서 농성장에 도착했을 때, 기자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허리를 펴기도 힘든 비닐 농성장에서 이들은 왜, 아니 어떻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입 밖으로 내기에는 민망했지만,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농성장에 나가면서 기자는 서서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베 정권과 몇몇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를 그만 잊어버리길, 이제는 좀 치워버리길 원하겠지만, 소녀상 곁에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일본에서부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킴이들에게 따뜻한 음료와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는 시민들이 있었고, 그리고 춥고 좁은 농성장에서도 변함없이 소녀상 곁을 지키는 지킴이들이 있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잊히지 않은 것이다. 일시적으로 정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외교 관계에서 힘의 논리에 의해 억눌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다. 농성장에서 기자는 비로소 깨달았다. 소녀상도, ‘위안부’ 피해자들도, 지킴이들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기자가 새벽에 잠에서 깨 농성장 비닐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던 높은 건물들의 불빛과 보름달을 기억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