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 기고·칼럼 >편집실에서
정치의 계절
등록일 2017.03.12 20:09l최종 업데이트 2017.03.21 22:39l 신일식 편집장(sis620@snu.ac.kr)

조회 수:399

  지난겨울은 정치적이었습니다. 어법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10월, 끝없이 추락하던 정치가 광장에서 촛불로 들불로 살아나는 모습을 어찌 달리 표현할까요. 정치의 계절을 마주해 많은 의문이 떠오릅니다. 대체 정치란 무엇일까요. 정치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요. <서울대저널> 141호는 그 질문에 기자의 방식으로 답해가는 과정입니다. 기자의 업에 충실하고자 논변하고 평론하기보다 위태롭고 아름다운 정치의 현장을 그대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커버스토리에는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생협 노동자들은 고질적인 악습과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협 노동자들이 자보를 붙이고,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교섭하는 일은 근 몇 년 서울대에서 보기 힘들었던 풍경입니다. 여기서 정치는 소수가 다수를 관리하는 정치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상대와 다투고 합의하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정치입니다.

  특집에서는 그렇게 수년간 싸워왔음에도 결국 ‘관리하는 정치인’으로부터 외면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왔지만 에피소드로만 남은 농민, 합의된 사항이 아니라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성소수자, 광화문 지하에서 1600여 일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장애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밑에서부터 시작한 정치가 관리자의 정치, 제도권의 정치에 어떻게 좌절했고 그럼에도 왜 도전하고 있는지 들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위험과 위협을 이겨내며 ‘태극기 집회’ 현장을 누볐습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가득한 대한문 앞은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전혀 정치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탄핵 기각, 국회 해산 등 제도권 정치에 많은 사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요구들은 자신의 이해에 기초하지도 않았고, 타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로 가득했으며, 정의로운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도 결여했습니다.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와 같은 피켓을 스스럼없이 든 이들은 서로 죽이지 않고 합의하는 방식을 찾자는 민주주의 정치의 전제마저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정치 현장이 있었습니다. 총학생회장의 거취를 토의하는 학생사회, 소녀상 앞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는 농성장, 거듭 새로워지는 집회 문화, 노조에 가입해 숨겨진 노동을 들춰낸 가스검침원들, 그리고 기자가 미처 다 가지 못한 어느 사람들의 모(某)처. 141호에 참여한 기자들은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고, 세심한 정성으로 묻고 들었습니다. 주장하는 대신 보여주고자 르포 형식을 여럿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 학기, 독자들에게 더 많은 현장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행여 기자의 입으로 주장하게 되더라도 두터운 취재와 현장에서의 경험을 그 근거로 하겠습니다. 이번 한 학기, 매 호 기다려지는 <서울대저널>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