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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불평등의 사회적 함의
등록일 2017.04.25 11:03l최종 업데이트 2017.04.25 11:03l 권현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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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기치 않았던 대통령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니 유력 주자들이 정책공약을 정교하게, 그리고 부문 간 이슈를 유기적으로 엮어 만들어낼 시간이 없었음을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저성장, 고령화 단계에 접어든 한국사회에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핵심 사회이슈로 제기된 저출산 현상에 대해 문제의 저변을 꿰뚫는 정책제시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난무하는 공약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여전히 게으르게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정책담당자들도 15-64세 생산가능인구만 놓고 볼 때 55%에 불과한 여성 고용률이 저출산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에는 이른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인식은 젊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출산 및 양육 지원이 충분할 경우 저출산은 낮은 고용률과 함께 해소 가능하다는 생각에 멈춰버린 듯 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에서 여성노동 시장하면 떠오르는 ‘경력단절’이 저출산과 여성의 낮은 고용률을 매개하는 키워드라는 분석으로 이어져, 여성이 경력단절을 ‘선택’하지 않도록 돕는 다양한 정책 제안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출산 및 보육지원 예산이 몇 년간 급증했고, 일-가족 양립을 도모하는 각종 유연화 정책, 그중에서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위한 여러 정책이 이어졌다. 물론 개중에는 전환형 시간제 일자리와 같이 확산되지 않았지만 적극적 의지를 품은 정책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저출산 관련 예산이 대폭 확대되고 여성의 정책인지도가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불과 20여 년 전 5%에 불과했던 영유아 보육시설 이용률이 덴마크에 버금가는 세계최고 수준으로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가 초저출산율상태로부터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 고용률도 마찬가지다. 지난 15년간 약 5%p 증가했지만, 증가 속도가 여성의 경제활동수준이 우리처럼 저조했던 일본이나 이탈리아에 비해서도 너무 느리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역시 획기적이라며 제시되는 관련 공약의 주종이 출산 및 보육지원 정책에 머물러 있다. ‘사용시기와 기간을 유연하게’라는 전제가 있지만, 육아휴직을 3년으로 연장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 고용상황을 고려할 때, 3년의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노동자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설혹 고용안정을 얼마간 약속받았다 해도 생존을 위해서라도 뒤처지지 않으려 소위 경력관리에 힘 쏟는 노동자라면 육아휴직 3년은 딴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정책의 효과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이유 중 일부는 제안되는 다양한 정책이 양적인 접근에 치우치거나 혹은 우리 노동시장 상황에 근거한 치열한 고민을 담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만연한 출산에 대한 도구적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 문제를 겪었던 여러 나라의 경험은 단순히 출산증가에 초점을 두는 정책만으로는 출산율을 제고시킬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 장기적이고 비교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 전반에 젠더평등 의식과 제도가 광범위 하게 확산된 나라에서 출산율이 비례적으로 높다. (*) 이렇게 보면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은 그간 가려져 있었던 양성평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크게 지체된 노동시장에서의 양성평등이 제고되어야 한다.  

  우리 일터에서 젠더는 가장 끈질긴 불평등의 원천이다. 고용불안정과 임금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직장에서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인사이더와 이에 도전하는 아웃사이더 간 경쟁이 젠더적 양상으로 고착되는 경향이고 아직 승자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인사이더다. 가족 내 여성의 역할과 의무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직장에서 남녀간에 생산성 차이가 존재한다는 편견과 그리하여, 남성의 지위가 여성에 비해 일차적으로 고려되는 상황을 대개의 직장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수용하도록 한다. 여기에 채 5%도 되지 않는 여성의 노동조합 조직률이나 전체적으로 15% 정도에 불과한, 그것도 임원에 이르면 바늘구멍도 무색할 낮은 여성관리직 비율을 상기하면 직장 내에서 평등을 요구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만들어지거나 대변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차별요소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분석되는, 35% 정도의 남녀 임금격차가 유지되는 배경이다. 2007년 발효된 비정규직법의 차별금지 조항이 거의 사문화된 다소간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학교에서 인문사회계에 대거 몰려있는 여성들은 문과라서 죄송할 뿐 아니라 여성이어서 죄송해야 하는 이중고에 몰리고, 많은 경우 비전형적 저임금 일자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어렵게 괜찮은 직장에 진입하더라도 배치나 승진, 혹은 임금, 직장 문화 등에서 성차별적 상황에 직면한다. 여기에 요즘 부쩍 많이 회자되는 일-가족 양립은 양성의 평등을 통한 일과 (가족)생활의 균형을 도모하기보다 여성을 ‘배려’하는 정책이라는 함의와 신호가 농후하다.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남성이 간간이라도 3년간의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하는 일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남성에게는 100% 임금을 보전할 정도로 아버지 육아를 권장하는 법은 선진적일지라도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남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일-가족의 임무를 균형 있게 해야 하는 것도 일하 는 여성의 또 하나의 의무가 된다. 이 모든 곤란을 혼자 씩씩하게 타개하며 앞으로 가기는 힘에 겹다. 

  앞서 언급했던 55% 여성고용률은 사실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하위 소득분위 가구의 많은 여성들은 길게 경력 단절할 여유가 없다. 현재 하위 30% 소득 가구의 여성고용률은 이미 70%에 육박하고,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들이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자녀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조건은 시간제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괜찮은 임금과 근로조건을 보육시설 지원과 연계하는 데 있을 것이다. 한편, 고용과 출산양육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당수의 여성은 대졸이상의 교육을 받은 일반 사무 혹은 관리직 경력 여성에 분포할 것으로 생각된다. 남성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의 교육-문화적 지위를 지니게 되었지만, 안정적인 경제-직업 지위 획득, 혹은 가족 내 동등한 지위 획득에 곤란과 좌절을 경험하는 여성이다. 이러한 지위 불일치 즉 이들에 대한 노동시장과 사회의 불인정으로 인한 저출산-저고용은 낮은 처우가 기대되는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거나 일회적인 출산-양육책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이들에게는 직장 내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개입과 양성에 공히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일-생활 양립 정책의 끈질긴 추진이 필요하다. 뿌리 깊게 배태된 젠더불평등에 제대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긴 저출산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다. 

(*) 김영미 (2016) <출산과 성평등 주의 다층분석>, 《경제와 사회》 112: pp.41-74 



권현지 교수(사회학과) 본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부임 전에는 런던 킹스칼리지 경영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연구주제는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의 사회학, 비교 고용관계 시스템, 서비스산업 고용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