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호 > 기고·칼럼
보아라, 찾아가라, 움직여라: 당신 책상 밑 ‘모멸의 구조’를 학내 노동 운동을 위한 작은 변론
등록일 2017.05.02 16:26l최종 업데이트 2017.05.15 14:48l 김윤혜 (철학 석사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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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울대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학생모임 ‘빗소리’에서 활동한 경험에 기초하고 있으나, ‘빗소리’ 전∙현 구성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그때 비학생조교님 한 분이 그러셨 어요. ‘너무 고마워요, 이거 결국 우리 밥그릇 싸움인 걸...’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인가 싶고, 왜인지 모르게 멍해지더라고요.” 고민이 있다며 찾아온 후배가 말했다. 학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까지 했던 친구가 이렇게 말하니 한편으론 놀랐지만, 동시에 무슨 말을 하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학내 노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결로 쉬이 정돈되지 않는 무엇이니까.

  대학과 노동

  ‘대학에도 노동이 있다’라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많은 사람들은 학생식당의 배식대, 10여분의 셔틀 구간, 쉬는 시간에 마주치는 미화노동자의 비질, 그런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과거에 나는 학교에 노동이 있음을 안다 자신했지만, 내가 떠올리는 노동은 나의 눈에 띄는 이미지들의 모음, 거기까지였다. 학교 생활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이미지일 뿐이었다. 아마도 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의 ‘학문의 장’, 강의실과 연구실의 공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 안 노동의 실체는 학문 사이에 삽입되는 이미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진실로, 서울대 안의 노동은 학문을 가능케 하는, ‘학문을 떠받치는 노동’이었다. 교육과 연구가 있기 위해 서는 4천 명의 끊임없는 노동이 있어야 했다. 종일 쭈그려 앉아 재료를 다듬는 낮고 어두운 지하 조리실에, 경비실 안 쪽 깊숙한 당직실에, 캠퍼스 구석 24시간 돌아가는 파워플랜트 굴뚝에, 땀이 줄줄 흐르는 본부 지하의 기계실에, 행정과 예산을 이어주는 수많은 전화통과 이메일에… 그렇게 우리의 강의실 아래에, 책상 아래에, 노동이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있는 우리의 삶이 있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싸고 움직이는 세상에 이 학문의 세계를 붙들어놓을 4천 명의 노동이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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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학생조교를 응원하는 학생들의 리본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미화도 동정도 아닌 ‘밥그릇’으로서의 노동

  ‘서울대를 움직이는 노동’을 발견하고 나서도, 내 책상 밑의 노동에 대한 진실된 앎에 닿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더 있었다. 먼저 이 4천 명의 노동을 대학과 학문을 위해 ‘당연히 거기에 있는’ 헌신으로 보지 않을 수 있어야 했다. 학생을 중심에 놓고 대학을 보는 나는, 마치 집에서 언제나 나의 생활을 뒷바라지해주는 엄마처럼 학내 노동자들 을 바라보게 되기 쉬웠다. 노동자분들 가운데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분들을 ‘감사한 어머니’가 아니라 노동자로 볼 수 있어야 했다. 동시에 노동 자들에 대한 동정에 빠지기도 쉬웠다. 열악한 환경을 목격하고 힘겨운 이야기 에 아픈 마음은 매우 쉽게 ‘베푸는’ 마음이 된다. 그 베푸는 마음은 ‘참 안 되었다’라고 생각될 만큼 ‘충분히 괴롭고’ ‘충분히 열악한’ 노동에 대해서만 행동할 이유를 찾아내는 데에 익숙해진다.

  내가 미화와 동정의 관점을 넘어서지 못했던 과거의 나라면, 아마 그 후배처럼 ‘밥그릇’이라는 말결에 휘청했을 것 이다. 그러나 나는 1년을 지나오며 이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 다. ‘학교 안의 노동 역시, 대단한 아름다움도 불쌍함도 없는 임금노동이다.’ 물론 나 역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밥그릇’을 넘어서는 보람, 자부심, 학생들 에 대한 애정을 품고 살아가는 노동자 들의 모습에 항상 감탄했고 기뻐했다. 그러나 ‘밥그릇’을 그 자체로 바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런 기쁨에 기대지 않고서도 월급과 보험, 수당, 연금, 휴가, 협상에 대해서 듣고 말하고 애쓸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배는 자꾸 고민이 된다 했다. 우리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결국 자기 ‘밥그릇’ 때문에 일하는 것”이고 노동 문제도 결국 ‘이들의 밥그릇 문제’라 고 생각하니, 어쩐지 우리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우리가 품을 들일 문제는 사 회정의의 문제, 공동선의 문제인데, 이들의 문제는 결국 ‘밥그릇’이고 ‘이권’이 라서 우리는 품을 들일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나는 품을 들일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먼저 ‘밥그릇’으로서의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우리가 서울대학 교가 정의롭기를 원한다고 할 때, 그 말 은 우리 공동체를 떠받치는 사람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공부를, 생 활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의 삶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나는 서울대 공동체가 정의로웠으면 한다’라고 말한다면 누가 그 말을 진실하다고 생각할까. 그들이 무엇을 받는지는 나 와 무관하다 하면서 그들로부터 받을 것은 모두 받아 누린다면, 그것이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본 많은 이들은 ‘합당한 보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누가 무엇을 받아야 하는가’는 거대한 문제다. 그러나 이 거대함을 마주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또한 열린 문제다. 서울대 노동자들의 삶, 그 삶을 위한 ‘밥그릇’이 나와 무관해서가 아니라 문제의 거대함이 문제라면, 길은 적어도 외면이나 추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눈앞의 노동자에게 ‘당신이 왜 이만큼 임금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해보라’라고 따질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시야에 두고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본부가 교섭에서 줄기 차게 외치듯이 자체직원에 비해 조교 월급이 얼마나 높은지를 논하는 대신에,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 처한 위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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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에도 선전전을 지속하는 비학생조교들.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밥그릇’을 넘어서는 노동: 모멸의 구조

  당장 이렇게 되받아칠지 모르겠다. 각자의 ‘밥그릇’을 정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대한 이해와 공동의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면, 지금 우리가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서 할 바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각자에게 합당한 것’이라는 거대한 물음 앞에서, ‘지금 당장’ 애를 써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나는 ‘밥그릇’을 넘어서는 노동, 즉 ‘모멸의 구조’를 이루는 노동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노동자들을 만 날 때마다 실감했던 사실은, 서울대에서 비정규직으로 사는 것은 단순히 얼마얼마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밀려남’이고 ‘낮춰짐’이라는 사실이 었다. 수 년 혹은 직장생활 전체를 서울 대에서 일해놓고도 서울대가 아닌 모 ‘용역업체’에 고용된 ‘용역직원’ 기계전기 노동자들은 본부 직원들이 쓰고 버린 사무집기를 주워 써야 했다. 업무용 전화기조차도 사주려 않던 학교는 행사 도시락도 기계전기 노동자들에게는 배부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슬쩍 물어봤더니, “눈에 보이지 않아서” 생각을 못 했다고 한다. 마음이 쓰렸다. 남녀 구분도 없는 파워플랜트의 녹슨 화장실, 그리고 학생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본부 지하에 숨겨진 기계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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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동 파워플랜트의 노후한 샤워시설 ©김대현 사진기자


  간접고용이 아닌 자체직원, 조교들도 끊임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재계약의 압박을 받으며 남의 일까지 대신 해야 했다. 임신을 하면 축하는커녕 휴가는 언제냐는 핀잔부터 들어야 했다. 자체 직원분은 정규직 노동자가 “내가 자체 직원이나 조교도 아닌데, 그 사람이 날 이런 식으로 대접할 수 있느냐”라며 화를 내는 걸 옆에서 들어야 했다. 몇 달을 고용불안으로 우울에 시달리는 조교님은 학생, 교수와 소소한 어려움만 생 겨도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차라리 지금 떠나버릴까”하는 생각이 무시로 든다 했다. 모 조교님은 노조 활동을 시작하고 교수님으로부터 “5년 일했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왜 생떼냐”하는 말을 들었다 하셨다.

  비학생조교 고용안정 투쟁에서 모멸의 구조는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학교는 조교님들에게 교섭권을 부여하라는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고 "면담을 하면 되지 왜 교섭을 하려고 하느냐"라고 했다. 대등한 주체로 마주앉아 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해고는 없다는 말을 뒤집고 30여명을 해고시켰다. 조교님들이 울면서 돌아가는 사이 ‘출근해도 일 시키지 말라’는 공문을 내려 보내고 순식간에 메일 계정을 막았다. 대표자 조교님은 굴욕감이 제일 견 디기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얘들 월급 안 나올 거야. 일 못해. 행정 다 죽였어. 애들은 어린이집 못 가. 이래도 안 받아 들일 거니?”라고 하는 것 같다면서. 해고된 조교님은 “월급 안 줘도 좋으니 일만 하게 해달라”,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라며 매달렸다. 학교에서 이미 쫓겨난 힘도 없는 해고자들이 “총장 퇴진” 을 운운한 플래카드를 걸었다는 이유로 학교는 면담을 취소했다. ‘이 따위로 굴면 만나주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교섭은 결국 연기되고 있다.

  온 힘으로 서울대를 밝히고 덥히는 기계전기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밀려나 야 할까? 우리 과를 책임지던 조교님의 자리는 어쩌면 이렇게 손쉽게 날아가 고, 권리를 되찾으려는 이들은 왜 이런 업신여김을 받아야 할까? 나도 완전한 답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불평등한 중력이 이들이 ‘노동자’라는 사실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노동자들에게 노동이 ‘밥그릇’이라는 것은 이들 이 ‘밥그릇’을 위해서는 노동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서울대에서의 일자리 는 ‘밥그릇’을 담보로 노동자들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감내하고 희생하게끔 하며 부당한 처우에 무력하게 만든다. 이 안전망 없는 사회, ‘보이지 않는 곳’ 에서 하루하루 참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그 압력이 누적되어 이 견고한 모멸의 구조가 들어서버린다.

내 책상 밑의 모멸의 구조 찾아가기, 그리고 움직이기

  무엇이 합당한지, 나에게 완전한 답은 없다. 누가 얼마를 받아 마땅한지, 휴가는 며칠이 적합한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세상에 노동자라는 이유로 모멸을 받아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삶터에서 밀려 나기 싫으면 안간힘을 쓰라고 요구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나의 공동체가 이토록 기울어진 모멸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를 조금이라도 평형에 가깝게 만들 이유, 그래서 나의 생활을 떠 받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억눌리게 할 이유가 나에게는 있다. 나는 학내 노동 운동을 이렇게 이해한다.

  혹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대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모멸의 구조가 우리 손에 달려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거나 우리가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마음은 움직이기 어렵고, 한국 사회가 노동을 없는 것 취급하는 한 어디에든 모멸 받는 노동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의 마 음은 우리의 것이지 않은가. 그것이면 우리는 이 모멸의 구조를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다. 이 모멸의 구조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라서, 콘크리트로 만든 양 굉장히 견고해 보일지라도 우리의 작은 손길, 발길로도 아주 쉽게 덜컥덜컥 움직인다.

  한여름 땡볕 아래 조교님들 앞에서 처음으로 연대발언을 하던 순간이 생각 난다. 긴장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한, 조교님들이 서울대를 움직이신다는 당연 한 말 몇 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보았다. 인터뷰에 응하신 조교님은 윗사람들한테 받은 괴롭힘을 토로하시면 서도, 이렇게 알아주는 학생들이 있어 “서울대에서 일한 시간이 헛되지 않다 고 느낀다”라고 하셨다. 마이크를 잡거나 대단한 프로젝트를 꾸려야 하는 게 아니다. 몇 마디 짧은 응원 메시지에 눈 물을 글썽이고, 포스트잇 한 장에, 지나가는 학생의 가방에 달린 ‘해고 철회’ 리본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이 환히 빛나는 것을 무수히 보았다.

  모멸의 구조는 그 뿌리가 너무나 깊어서, 이를 평평하게 만들려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제도를 바꾸고 문화를 바 꾸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모멸 받고 내몰리는 이들의 곁에 잠시 서는 것, 귀 기울이는 것, 인사 한 번, ‘좋아요’ 하나의 힘을 믿는다. 단박에 바로잡지는 못할지라도, 외치다 지쳐 입술이 부르튼 사람들, 그들의 마 음을 짓누르고 있는 벽돌을 들어올릴 힘은 우리에게 있다. 그 벽돌을 한 장, 두 장 들어올려 나감으로써 이 모멸의 구조를 흔들어놓을 힘이 우리에게는 있다. 며칠 전에 고민을 털어놓던 그 후배 를 만났다. 노동자분들을 찾아 뵈러 다닌다고, 그랬더니 그 많던 생각들이 느새 잠잠해졌다고 했다. 처음으로 연대발언이라는 것도 해봤다 했다. 또 하나의 마음에서 길이 나고, 모멸의 구조 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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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혜 (철학 석사17)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진짜 좋은 것을 찾아서 13년 철학과에 들어왔다. 모범생으로 얌전히 졸업할 뻔 했으나, ‘빗소리’의 발단이 된 글을 쓰고 2016년 탄생 첫 해 동안 ‘빗소리’의 대표를 맡았다.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몸살을 앓다 고민 끝에 윤리학∙정치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모토는 “말과 글의 힘을 믿으며, 누구도 모멸 받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