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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의 배신 앞에서
등록일 2017.06.28 12:47l최종 업데이트 2017.06.28 12:50l 최한종 사진기자(arias643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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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부가 다시 점거되던 날, 카메라를 들고 있기가 힘들었다. 몇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있느라 무겁기도 했지만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학생들이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본부로 진입하는 사진이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폭력’과 ‘불법’이라는 수식어가 그들에게 덧씌워질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잘 찍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기계적으로 셔터를 눌러가며 불안감을 떨쳐냈다. 카메라의 프레임은, 2층 창문을 깨고 본부 왼쪽 출입구로 진입을 시도하는 학생들에 고정됐다. 외장 플래시까지 동원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 학생이 망치를 들고 유리창을 부수는 모습을 담은, 그럴듯한 사진 한 장을 얻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기사에 실었다.


  며칠 뒤 모 일간지에서 그 사진을 지면에 냈다. 제목은 “펜 대신 망치 든 서울대생들”, 첫 문장은 “쨍그랑, 와장창”이었다. 학생들이 불법적으로 행정관을 점거했고 점거에 대한 학내 여론은 차갑게 얼어붙었다는 내용이었다. 작은 프레임으로 현장의 모든 일을 담지 못해서였을까. 내 사진은 의도와 달리 ‘불법 폭력 행위’의 상징이 됐다. 프레임의 배신이었다.


  사진을 찍고 고르는 과정에서 프레이밍은 피할 수 없다. 사건의 모든 양상을 사진으로 담아내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배신을 피해 현장의 진실을 최대한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차선이라도 찾자는 생각에 그동안의 사진들을 되돌아봤다.


  많은 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현장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을 했던 건 ‘사람’이었다.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 미수습자 가족들의 호소와 “나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의 절규 속에는 어떤 거짓도 없었다. 프레임은 상관없었다. 멋진 구도로 찍지 않아도, 세팅을 잘못해서 초점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때로는 하소연으로,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온몸으로 진실을 쏟아냈다.


  재점거 당일, 내 사진은 현장에 떠다니는 감정과 공명하지 못했다. 수백 장의 사진에서,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이들을 불안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많은 동료 학생들의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학생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절박한 마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삿거리가 될 만한’ 모습만을 사진으로 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현장에서 사진을 찍겠지만, 그리고 그 사진의 프레임은 나를 종종 걸고 넘어뜨릴 테지만,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주목하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다음에 있을 현장에서는 한걸음 물러서서 렌즈를 돌려봐야겠다. 프레임의 한계를 넘는 진실한 마음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