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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 얼마나 외로웠을까
등록일 2017.09.02 15:21l최종 업데이트 2017.09.02 15:21l 송재인 문화학술부장 gooa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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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인아, 안방으로 와볼래?”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엄마는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한껏 죽여 아무도 없는 방으로 나를 불렀다. 눈치가 빠른 나는 이미 어떤 말이 오갈지 알고 있었다. 생리가 무엇인지 설명을 하려는 엄마의 말을 끊고 말했다. “엄마, 그거 이미 .” 어렴풋이 생리에 대해 들은 바가 있던 나는 며칠 속옷에 묻어있던 초콜릿 핏자국이 생리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에 어찌할 모르고 비닐봉지에 넣어 서랍장 깊숙이 처박아 두었다. 딸내미가 이미 생리를 시작했다는 엄마는 설명할 줄었는지 빠르게 생리대 사용법 설명을 마치고, 평소처럼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는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딸이 여자가 됐다며? 축하해.” 날은 모두가 조용했다. 엄마도 아빠도, 설명과 축하도 모두 조용하게 내게 다가왔다. 


  이후로도 나의 생리는 조용함, 아니 은밀함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생리대 포장지를 화장실에서 가지고 나오는 어떻게 까먹을 있냐며 나의 칠칠치 못함을 조용히 꾸짖었다. 어떤 때는 생리대는 투명한 봉투가 아니라 까만 봉투에 모아 버려야한다고 차례 조용한 설명을 했다. 함께 장을 날이면 엄마는 구매한 생리대를 재빠르게 장바구니 가장 아래로 밀어넣었다. 오빠나 아빠가 장바구니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교에서도 생리하는 나는 평소와 달리 요란하게 굴지 않았다. 생리는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도 왠지 부끄러워, 화장실 칸에서 소리를 죽여 생리대 포장지를 뜯었다. 좌악 생리대의 접착면이 속옷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언제나 숨기기 어려웠지만. 교실에서 여자 친구들은 소리 없이 다가와 당황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귓속말을 했다. “ 혹시 그거 있어?” “ 마법 터져서 체육 빠질 . 둘러대줘.” 남자 친구들은 다행히 여자애들을 대놓고 놀리지 않았다. 대신 신경질적으로 구는 남자애를 두고 자기들끼리 농담처럼 읊조렸다. “ 그날이냐? 난리야.” 딴에는 자기들끼리 숨어 숙덕거린 것인데, 이상하게 귀에는 선명히 들렸다. 


  나의 생리는 분명 조용함뿐인데, 고요 속에 철저히 감춰지고 있는데, 이상하게 나는 자꾸 생리로 설명되고 있었다. 꼼꼼하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내가 생리로 대체된 같다고 느꼈다. 아빠 오빠로부터 생리대를 숨긴 , ‘ 생리대 샀어요전시하듯 장바구니 위에 생리대를 놓은 칠칠치 못한 , 생리 때문에 야자를 빠지는 , ‘그날난리칠수도 있는 . 사람들은 나를 생리로 한없이 꾸짖고 캐묻고 놀리고 있는데, 내가 생리를 대할 때면 언제나 조용하고, 은밀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했다. 소리 죽인 생리와 함께 내게 남은 고립감과 여성으로 태어난 몸에 대한 원망이었다. 


  지난 1 인사동에서의 ‘#생리대를 붙이자퍼포먼스, 생리백일장 생리를 시끄럽게 외치는 움직임이 있었다. 누군가는 혐오스럽다고 말했던 일련의 움직임들이 나는 반갑기만 했다.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같았다. 그간 억지스런 고요 속에서 힘들지 않았냐고, 외롭지는 않았냐고. 생리대를 눈에 보이게 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요즘의 나는 다시 그때의 내게, 혹은 나처럼 조용한 생리를 했던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때 얼마나 외로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