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 > 기고·칼럼 >기자수첩
일상 속으로 숨을 권리
등록일 2017.09.03 20:20l최종 업데이트 2017.09.03 20:20l 박수현 기자(oksh4979@snu.ac.kr)

조회 수:87

  사람들 속에 파묻혀 보내는 일상은 지루하게 들릴지 몰라도 굉장히 속 편한 일이다. 손에 땀낼 일 없고, 얼굴 붉힐 일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어딜 가나 타인으로부터 시혜와 동정의 가면을 쓴, 어쩌면 끈질긴 시선을 받곤 하며, 깔때기로 여과되고 남은 한 단면으로 대상화되곤 한다. 광화문 장애인권투쟁 농성장의 활동가들은 장애인을 향한 다른 종류의 시선을 요구하고 있었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복지를 받는 객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존할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로 말이다.

  농성장은 가기 이전의 상상으로는 수많은 힘든 점들이 예상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1800일 넘게 유지해온 농성장은 활동가에겐 굉장히 익숙한 ‘집’이었다. 선풍기도 있고, 콘센트도 있으며, 정수기까지 있었다.

  그 ‘집’에서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다. 농성장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수많은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 중 한 분과는 단 둘이 밥을 먹기도 했다. 많은 장애인 활동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 일도 거의 처음이었다. 고등학생 때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마주했던 장애인의 모습과 농성장에서 취재를 위해 마주한 장애인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아마 그들을 대하는 기자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는 응답을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으면서도 기자 본인부터도 그런 ‘차별 대우’를 삼가기란 쉽지 않았다. 한 장애인 활동가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쉬운 질문만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명료한 대답에 놀라움을 속으로 감추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놀라웠던 점 중 하나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장애인을 포함한 휠체어 이용자를 발견하기 굉장히 쉽다는 사실이었다.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한국보다 훨씬 많은 휠체어 이용자를 볼 수 있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선입견은 그 집단에 속하는 사람과 자주 대면하고 교류하면서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들은 기억이 난다.

  기자에게 있어 농성장은 완전한 ‘비(非)일상’의 공간이었다. 나란히 놓인 13개의 영정사진을 포함해 지하보도에 보통 있을 거라고 예상되지 않는 사람과 사물 주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갈 때 새삼 기자가 주변의 사람들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는 걸 느꼈다. 일상 속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것이었다.

  144호가 발행되면 찾아가겠다고 약속한 농성장이 9월 5일부로 사라지게 됐다. 5년 넘게 지속된 농성은 누구에겐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비춰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세운 농성장은 장애인의 일상을 전시한 공간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제도적 무관심으로 계속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알리고, 장애인도 충분히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외치며, 그런 장애인이 이제 모두에게 일상의 존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장소였다. 긴 시간을 거치며 농성장이 광화문역의 익숙한 풍경이 된 것처럼, 장애인과의 공존 역시 익숙한 사회적 풍경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