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호 > 기고·칼럼 >기자수첩
코덕의 크루얼티 프리
등록일 2017.12.06 21:58l최종 업데이트 2017.12.06 21:58l 김가람 기자(1004grk@snu.ac.kr)

조회 수:22

  화장품을 좋아하는 나는 ‘코스메틱 덕후’, 줄여서 ‘코덕’이다. 대학을 입학한 이후 과제나 시험이 끝날 때마다 내게 주는 선물이라며 사 모은 립스틱이 벌써 50개.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까지 다 쓸 수도 없는 양이지만 화장대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내 새끼’들을 보며 매일 아침 뿌듯하다. 혼자만 화장품을 수집하기 지루해질 때쯤, 덕질의 필수코스를 따라 코덕의 커뮤니티에도 자연스레 가입했다. 

  그러다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코덕들 사이에서는 서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세 가지 ‘비윤리적 화장품’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우익제품”이라고 통칭되는 화장품이다. 전범기업 계열사 제품이나 욱일승천기를 디자인 도안으로 사용한 적 있는 브랜드를 뜻한다. 둘째, ‘여혐기업’의 제품이다. 여성혐오 논란이 있던 개그맨을 광고모델로 쓰거나, 여성혐오적 컨텐츠를 홍보물에 담은 경우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은 동물이 활용된 화장품이다.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100번 바르는 토끼실험 뿐만 아니라, 동물 털을 뽑아 만드는 화장 도구들도 포함된다. 인조모를 쓰면 되지 않냐고? 털의 강도에 따라 화장품의 색이 다르게 발리기 때문에, 코덕이 제품에 맞는 도구를 사 모으는 건 마치 카메라 덕후들이 렌즈를 여러 개 사 모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윤리적 화장품’에 속하지 않는 회사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쯤 되면 세 원칙을 다 지키다간 코덕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올 4월 일이 터졌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 나스(NARS)가 중국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나스 공식 SNS계정에는 동물실험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윤리적 소비”라는 멋진 단어를 1/3이라도 실천해보고자 크루얼티 프리 생활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주가 지난 지금, 크루얼티 프리 생활이 주는 어려움과 부담감에 조금은 힘이 들기도 하다. 크루얼티 프리 화장품을 알아내는 것부터, 구매해 사용하기까지 한 번도 맘 편히 있지 못하고 늘 동물실험을 의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쉽게 사서, 뜯고, 사용한 후 버리는 간편한 공산품을 쓰며, 이것이 어디서 나와 누구를 거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고민해본 경험이 없었던 과거와 비교해서 귀찮고 성가셨다. 집 앞 마트에만 가도 처음 본 물건이 쏟아지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제품을 만날 수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이런 생각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눈앞의 물건이 누군가의 희생과 착취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소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바꿔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리적 소비”라는 미명하에 개인이 모든 책임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으면 혹은 소비자가 이용하지 않으면 회사는 달라질 거라는 말로 코덕에게 모든 부담을 지울 수는 없다는 의미다. 동물실험 없이도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가 늘고, 중국의 동물실험 의무화가 폐지되고, 소비자가 어떤 가치를 실천하든 비슷한 수준의 선택지가 마련될 때야 비로소 우린 코덕에게 소비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소비에 대한 우리의 의식화가 누구를 향해 화두를 던질 것일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