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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인권을 항상 말해야 합니다.
등록일 2018.03.09 00:25l최종 업데이트 2018.03.12 20:54l 백지은 (정치외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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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전체의 의견이 아닌 위원장 개인의 의견입니다.)


1.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께서 방송에 나와 성폭력 피해를 진술하시면서 한국에서 미투운동이 확산된 이후,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에 부쩍 취재 요청이 많이 왔다. 언론사 기자분들께서 질문하시는 내용은 다 비슷하다. “학소위의 ‘장기자랑 강요 FREE 선언’과 미투운동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결론이 정해져있는 것 같은 기사이지만 ‘장기 자랑 강요 FREE 선언’을 소개하고자 열심히 답변했다. “장기자랑을 하는 사람은 원치 않는 성적 표현을 할 것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기자랑을 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소외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선후배 사이의 권력관계로 인하여 신입생들은 장기자랑 을 거절하기 힘듭니다. 장기자랑 강요 FREE 선언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침묵할 것을 요구해왔던 사회구조와 기득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미투운동과 이러한 점에서 공통된다고 생각합니다.”


2. 
  난감한 질문을 하는 기자분들도 계셨다. “몇몇 대학에서는 미투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서울대에는 왜 미투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나요?” 최근에 #MeToo 해시태그를 달고 서울대에서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SNS에 올린 분은 없었던 걸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SNS에 피해 경험을 공개 게시해야지만 미투운동에 포함될 수 있으며, 서울대에는 지금까지 미투운동이 없었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학생회 기구에 인권침해를 호소하시면서,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도록 사건의 공론화를 부탁한다고 말씀해주신 피해호소인분들도 미투운동에 이미 함께하신 것이 아닐까.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가 학내 인권운동을 하면서 받는 질문은 딱 여기까지이다. 사람들은 서울대 내 인권침 해실태를 궁금해하고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학소위의 문제의식을 물어본다. 학소위가 할 수 있는 대답의 범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학소위에 제소된 사건을 사례로 들면서 해당 사건의 의미와 공론화 과정을 설명하고, 여기에 미투운동과 같은 현재의 사회 이슈와 인권침해 사건과의 연관성을 덧붙이는 것이 대답 내용의 전부이다.

  사례 중심으로 인권 사안을 접근하고 화제가 되고 있는 인권 이슈와 학내 사안을 연관지으려는 시도가 부적절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사례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사례를 보고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인권문제를 제기할 때 예시를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피해자의 폭로로 인권침해 사건의 대응이 시작되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자 추가적인 진술 확보를 위해 당사자와 주변인들이 노력하고,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알게 하는 미투운동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인권침해 사건을 대응하려면 누군가 한명은 본인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해야 하고 이것이 ‘묻히지’ 않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경험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줘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학생·소수자인권위원 회 활동을 하고 있는 본인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폭로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후 해당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는 인권운동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공동체에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없거나 사건 신고인은 있는데 사건의 진위 파악이 어려울 때 그 공동체에는 인권운동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인권침해 문제 없었는데 왜 난리야?”,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은 다 인권의식 있는데 너 혼자 유난 떨지마.” 인권침해 사건이 최근 공론화된 적이 없는 단위에서 인권 의제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소수가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특히, 새맞이 중에 내규(인권에 대한 내부 자치규약) 교육이나 인권 세미나가 기획되거나 신입생 환영회 및 새터 프로그램에 인권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경우 항상 나오는 반론이다.

“새맞이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인권 얘기해야겠어?”라는 주장은 실제로 다음과 같은 언행으로 이어진다.
- “프로불편러들이 주장하는 거니까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 “인권팀/내규팀 없네. 이제 노잼 술자리 그만하고 내규 없는 술자리하자.”
- “새맞이 끝났지? 새맞이에서 뭐 문제 없었지? 내규 이제 안 지켜도 되겠다.”
위와 같은 발언은 공동체에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대상의 범위를  축소한다. 인권은 프로불편러들이 다른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것이고, 내규는 경우에 따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인권과 내규는 전부 ‘새맞이용’이라는 주장이다. 새맞이 도중과 그 이후에 각 단위에서 인권과 내규의 중요성이 아무리 말해지더라도, 이러한 발언이 있게 된다면 인권과 내규의 위상은 한 순간에 추락하여 회복 불가능하게 된다.

  인권은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권을 보장하자는 내규는 껐다 켜고 켰다가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와 인간관계는 새맞이를 끝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동체가 함께 합의하고,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내규는 새맞이가 끝나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새맞이는 신입생을 맞이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소개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인권과 내규를 특히 더 강조할 뿐, 인권과 내규가 새맞이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권과 내규에 관하여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을 제시하는데 공동체가 그것을 모두 받아들이고 복종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설득력이 없는 인권 담론을 계속해서 주장하거나 내규 준수 여부로 편을 가르는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비판받을 만하다. 공동체의 합의에서 벗어나는 내용을 제시하면서 ’내규를 준수하지 않았다‘며 개인을 특정하여 낙인을 찍는 수단으로 내규를 이용하는 것 또한 비판 받을 수 있다. 인권을 말하고 내규의 준수를 요구하는 사람의 모든 언행은 이유불문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인권과 내규에 관하여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이 인권과 평등의 가치에 직접적으로 위배되는것은 절대 아니며 그것은 인권운동이추구해야 하는 방향에 어긋난다.

  인권과 내규에 관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을 공론장에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내규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내규는 공동체에서 토론을 하고 합의를 하면서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아무런 토론과 합의 없이 다른 학생회 단위가 제시하는 내규나 이전부터 내려온 내규를 그대로 준용하는 것은 내규와 인권에 대한 공동체만의 고민이 부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공동체의 내규를 공동체에 새로이 들어 오는 신입생에게 소개해야 하는 새맞이 기간에는 인권 문제와 내규에 대하여 미리 각 단위에서 토론과 합의를 하고 신입생에게 내규를 어떻게 소개할지 정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충분히 논의되어서 합의가 된 내규의 내용과 내규 소개 방법은 공동체가 함께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인권과 내규에 관하여 입장을 표명하고 관철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규 공유 전에 선행될 토론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피력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입생 환영회에서 내규를 신입생에게 가르치는 식으로 알려주는 것에 불만이 있다면 신입생들이 참여를 하면서 내규를 익히는 방식을 제안하며 이 방식이 더 적합하며 기존 방식의 문제를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내규와 내규 전달 방식이 새로이 공동체 합의 과정을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된 내용을 보이콧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함께 지키기로 약속한 것 이라면, 모두가 책임감 있게 함께 내규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인권과 내규에 대한 토론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서 이전에 인권침해 사례가 없었다고 내규가 필요 없거나 내규를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은 언제나 침해받지 말고 보장 받아야 하는 것이고 인권문제는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구조의 영향으로 불평등이 재생산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권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항상 존재한다. 오직 사례 중심으로만 사고하여 사례가 없었으면 인권 문제는 간과해도 되는 것으로 취급하거나, 외부에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해야만 인권문제를 논하기 시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사례가 있다면 사례를 참고하여 논의하고, 밝혀진 사례가 없다면 현재까지 잘 되고 있던 점과 미흡했던 점을 점검하거나 사례가 밝혀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성찰 해야 한다. 외부의 흐름 때문에 인권의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인권침해 문제의 예방 및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인권침해가 이루어지는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개선하려 해야 한다. 인권문제는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이기에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님의 방송 인터뷰 내용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울분이 터진 부분은 이것이다.

손석희 앵커: 어쨌든 이렇게 공개적으로 방송에 나와서 말씀하시는 경우는 제가 처음 뵙기 때문에 어찌보면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게 있으니까요.
서지현 검사: 네, 맞습니다. (중략) 그런데 주위에서 피해자가 직접 나가서 이야기를 해야만 너의 진실성에 무게를 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서요. (후략)

서지현 검사님을 비롯한 많은 성폭력 피해자분들이 실명을 밝히고 자신의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 다. ‘ME’가 있어야만 그리고 그 ‘ME’ 의 진실성이 인정되어야만 인권운동이 시작되고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인권문제를 논하고 모두가 인권운동을 자신의 공동체에서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인권은 인권침해가 발생한 공동체만의 또는 인권단체에 속한 사람들만 다루는 문제가 아니며, 인권은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끝나면 그만 다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인권은 그들의 문제(their problem)가 아닌, 모두가 계속 함께 말해야 하는 문제(our matter)이다. 우리 모두 항상, 함께, 인권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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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은(정치외교 16)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산하기구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