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기고·칼럼 >편집실에서
진보를 붙잡습니다
등록일 2018.04.12 19:34l최종 업데이트 2018.04.12 19:34l 송재인 편집장(gooa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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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노래 ‘당부’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그때엔 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며 함께 했지…허나 젊음만으론 어쩔 수 없는 분노하는 것만으론 어쩔 수 없는…이리로 저리로 불안한 미래를 향해 떠나갔고” 졸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때론 ‘진보’가 버겁게 느껴집니다. 노래가사는 ‘너뿐 아니라 모두 그렇다’며 저를 위로하는 듯합니다. 동시에 ‘너도 결국 그렇구나’하며 질책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울대저널>의 보도 내용이 피로하다는 독자 의견이 있습니다. 마냥 서운하진 않습니다. 취업 스터디, 졸업논문 준비, 얼마 남지 않은 수업들. 빽빽하게 들어선 일상을 그저 수행하며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저도 종종 그렇거든요. 수면 아래 잠겨있어 외면받거나, 반대로 명백히 드러난 부조리들. 민감히 반응해야 하는 인권 사안, 권력과의 지난한 싸움. 때론 이들에 동참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게나 애중하던 ‘진보’가 고단하게 다가옵니다.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요. 그럴 때면, 분노했던 젊은 날을 저버리고 불안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흔한 ‘어른’이 된 기분입니다.

  그러나 꽃다지의 노래는 말합니다.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점점 늙어간다 해도 우리 가슴 속 깊이 서려있는 노래, 잊지 말게” 투쟁의 전면에 선 것도 아니지만, 발 딛고 있는 곳에서의 역할을 다짐하게 되는 가사입니다. <서울대저널>의 역할은 나의, 누군가의 분노어린 젊은 날을 잊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로한 진보를 그럼에도 붙잡고, 잊지 말자고 외치는 것. 또는 외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우리가 후회하지 않을 일임을 압니다.

  이번 148호 역시 진보를 붙잡고 있습니다. 커버스토리에서는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해결된 줄 알았던 먹거리 안전 문제를 붙잡았습니다. 정부도, 식품산업계도 여전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집에서는 의심할 바 없이 뚜렷한 부조리, ‘갑질 교수’를 꼭 쥐고 파고들었습니다. <서울대저널>에 교수로부터 성폭력 경험을 공유해주신 두 제보자의 용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해당 사례가 외면받지 않도록, 독자분들 또한 이를 붙잡아주시길 바랍니다. 가슴 속 깊이 서려있을 젊은 날에 후회가 없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