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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에 꽃이 폈다
등록일 2018.04.12 19:40l최종 업데이트 2018.04.12 20:11l 최한종 학원부장 arias643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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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에 입학한 지 햇수로 7년이 됐다. 그동안 벅찼던 일도, 견디기 힘든 일도 많았다. 그 기억들은 캠퍼스 곳곳에 자리를 틀었다. 이젠 기억들로 지도를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복잡한 기억이 표시된 곳을 지날 때면, 힘들었던 기억도 결국 추억으로 남았음에 미소 짓곤 한다.

  이번 ‘갑질 교수’ 특집을 준비하면서 마주한 이들은 영원히 추억이 될 수 없는 기억을 쏟아냈다. 누군가에게 관악의 기억은 교수에 의한 폭력으로 점철돼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학교에 있던 수년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사회학과 H교수, 경영대학 P교수, 수리과학부 K교수, 미술대학 A교수……. 공론화된 것만 해도 이만큼이다. 추억 대신 폭력으로 캠퍼스의 지도를 그릴 수도 있을 테다.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본부에 들어섰다. 청원경찰이 지키는 닫긴 문을 지났다. 사진기자로 일하다 물에 흠뻑 젖었던, 또 다른 폭력의 기억이 스쳤다. 대학본부는 H교수 사건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시원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탄탄히 풀어놓는 이야기를 들었다. 준비를 잔뜩 해갔지만 파고들지 못했다. 학생들과 재발 방지를 위해 터놓고 대화하겠다는 말도 귓가에 덧붙었다. 본부를 나서는데 청원경찰이 굳게 잠긴 문을 친절히 열어줬다. 학생이 지키는 천막이 시야를 아프게 메웠다.

  ‘갑질교수를 고발한다’라는 거창한 특집 제목이 부끄럽다. 세 기사 모두 고발의 어려움만 잔뜩 늘어놓았다. 비판은 무디었고, 대안 제시도 못했다. 걱정이 앞선다. 권력형 성폭력에 전례 없이 날이 서 있는 사회 분위기 속,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해 단단하게 일구어진 지금의 연대가 만약 좌절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누가 나서려고 할까. 앞으로는 폭력의 지도조차 그릴 수 없게 될지 모르겠다.

  관악에 벚꽃이 활짝 폈다. 오래전 누군가가 캠퍼스를 아름답게 하려고 심었을 나무다. 그러나 올해 꽃은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벚나무 아래의 추억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폭력 위에 선 나무가 매달고 있는 것들이 거짓되게까지 느껴진다. H교수 징계결과 발표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발생해버린 문제를 해결한다고 ‘진짜 꽃’이 폈다고 할 수는 없겠다. 다만 학교가 꽃을 위한 거름은 뿌릴 수 있길 소망한다. 징계위는 천막이 발하는 아픈 진실을 두 눈으로 마주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