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 > 기고·칼럼 >기자수첩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등록일 2018.04.12 23:44l최종 업데이트 2018.04.13 00:28l 이상호 PD(seoroleee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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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일 한국여성대회의 샤우팅행사에 한 여성이 발언자로 등장했다. 그는 어떤 촬영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모든 카메라가 바닥을 향하자 말을 시작했다. 수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오랫동안 온라인에서 자신을 사칭해왔다고 했다. 가해자는 형사 처벌이 어려운 해외 사이트를 위주로 활동했고, 피해 사실을 수집해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오히려 자신이 고소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고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렇게나 당연한 이치를 그는 꾹꾹 눌러 담아 전하고 있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리벤지 포르노는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범죄의 내용이 놀라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피해자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준비한 대본을 읽을 때에도 여러 번 말을 멈춰야 했고, 관중의 응원과 박수만이 그를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었다. 발언이 끝나고 그가 무대를 떠날 때, 부서진 삶을 껴안아야만 하는 그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가 놀랍지 않은 사회에 대해 생각했다. 켜켜이 쌓인 고통이 곪고 곪아, 어떤 잔인함도 새롭지 않게 된 지금의 한국에 대해 생각했다.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정 성별 남성으로 태어나 시스젠더로 성장하고 고학력을 쟁취하기까지, 인생은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한 여정이었다. 타고 나든지 얻어내든지,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강해 보이면 된다고 배웠다. 나는 규칙을 성실히 따른 대가로, 다른 성별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거나 자신의 학력 자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수많은 불평등과 불편을 면제받는다는 보증수표를 얻었다. 내가 듣지 않아도 될 무례한 말과 겪지 않아도 될 끔찍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고통은 딱한 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정도가 심하면 뉴스에 나올 뿐, 책임소재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은 드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저 자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굵은 목소리와 짧은 머리, 그리고 높은 자리와 명예. 종종 상상하던 먼 훗날의 내 모습이었다. 추악한 꼴을 돌아볼 용기조차 없는 미래의 무감각한 내가, 카메라를 든 내 앞에 서있었다.


  거리 행진이 시작되자 셀 수 없이 많은 물결이 보였다. 누군가는 이스라엘에 의해 감금된 팔레스타인 소녀를 석방하기 위한 피켓을 들었고, 누군가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이주여성의 인권을 외쳤다.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목소리들이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파도보다 강하게 일렁여왔다. 어쩌면 그 날, 나는 처음으로 광장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