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호 > 기고·칼럼 >기고
청년의 아름다운 실험정신이 주는 무게
등록일 2018.06.09 22:21l최종 업데이트 2018.06.09 22:21l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과)

조회 수:390

  세월이 주는 무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느덧 정년을 맞이하여 퇴임을 하게 되는 날은 반드시 오게 됩니다. 다만 이러한 세월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 오고 감당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 무게의 버거움과 가벼움이 달라질 뿐일 것입니다. 

  올해 8월말이면 정년퇴임을 하게 되는 저로서는 <서울대저널>과 함께 한 시간들이 너무나 즐겁고 뜻 깊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3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적당하게 가볍게 해 준 찬란한 실험정신을 가진 200여명의 아름다운 청년들과 함께 40대, 50대, 그리고 60대의 절반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결코 아니기에 두고두고 내 남은 인생에서 그렇게 함께 한 시간들을 반추하고 반추해 볼 것입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학생운동의 양대 흐름은 소위 자주파로 불리는 민족해방(NL) 계열과, 평등파로 불리는 민중민주(PD) 계열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양대 계열의 구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주장하는 제3의 계열인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1992년에 처음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에 당선되었습니다. 여기서 <자주관악>이라는 매체가 총학생회의 기관지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1995년도 학생회를 이끌 당시, 선거 과정에서 나왔던 가장 강력한 구호 중의 하나가 ‘우리세대’라는 용어였기 때문에 1995년부터 <자주관악>이라는 매체 이름을 <우리세대>라는 단어로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우리세대>가 학내에서는 독립적인 언론활동을 하는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학생회에 소속돼 있는 이유 때문에 지속적인 독립된 언론활동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여러 편집진들이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편집권을 독자적으로 갖는 독립된 서울대 내 자치 언론으로 발 돋움 하고자 꿈틀거리던 이 당시에, 저로서는 정말 운 좋게 학생회 이재성 군(현재 NC소프트 전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상록 제5대 편집장을 비롯한 여러 활동성이 강한 학생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때 제가 서울대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서울대 교수협의회) 총무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재성 선생이 저를 찾아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이재성 선생과의 만남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후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1997년에 총학생회로부터 편집권·재정권을 완전히 독립하여 학생 자치언론의 위상을 갖게 돼 이 해부터 첫 공채 기자를 선발하는 등 기자 실명제를 도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1년부터 <서울대저널>로 제호를 변경하여 학내 매체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서울대저널>과 함께 걸어 온 지난 23년간의 세월 가운데 저에게 강한 인상을 준 일들 몇 가지를 연차적으로 회고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제일 큰 경험은 이재성 선생과의 만남이겠죠. 둘째로는 1997년에 우리 편집진들이 미국에 가서 스탠포드대 <Reflection>, 하버드 <Yiese>와 자매결연을 맺고 온 사실입니다. 1999년에는 버클리 대학교 CKS(한국학 위원회)와 자매결연, 2000년에는 북경대 <Insider>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 당당히 국제무대로 뻗어 나갔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2001년 3월 제43호 ‘학사논문 이대로 둘 순 없다’라는 기사로 그 해 제1회 한국대학기자상 기획보도 부문(교지 분야) 상을 수상한 일입니다. 이후 2002년 제2회 한국대학기자상 기획보도 부문에서 상을 탔고, 드디어 2009년 6월 제97호 기획 ‘노동을 뺏긴 노동자’ 기사를 통해 2010년 제1회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상을 수상한 것으로 압니다. 네 번째로는 2005년 <서울대저널> 창간 10주년 행사와 2009년 통권 제100호 발행, 그리고 2013년, ‘서울대저널 TV’ 출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각종 언론에서 <서울대저널> 기사 인용보도가 잦아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겨레21> 공동 기획 ‘밀양을 살다’ 다큐멘터리의 제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재선거 후보자들 대상의 TV 기획과 제작, ‘서울대학생자치언론위원회’를 세우는 데 많은 공헌을 한 점 등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서울대저널>은 서울대를 비롯한 모든 대학생들을 위하여, 대학생들에 의해, 그리고 대학생들과 함께 하는, 대학생들의 신문과 영상 종합 매체로서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제가 늘 생각해 왔듯이, 우리 <서울대저널>의 탁월성이 드러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고 균형된 보도를 하려고 노력을 한 점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기획을 하든지 기사 내용이 다른 매체보다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 <서울대저널> 기자, 편집자들이 정말 한 가족처럼 서로 화목하고, 또 그러면서도 서로 비판도 하고 심각한 토의를 하는 등 살아있는 하나의 매체가 갖는 공동체 기능을 충실히 잘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내에서 자치언론들이 하나 둘 폐간되며 논쟁과 비판의식이 죽어가는 시기에 오히려 <서울대저널>은 지속하여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의 밑바탕은 뭉뚱그려 볼 때 실험정신이 끊임없이 용틀임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년의 도전정신은 꿈을 직접 펼쳐보려는 실험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험정신은 젊을 때에 할수록 더욱 좋을 겁니다. 힘과 열정과, 패기가 어떤 인생 시기보다 넘치기 때문이죠.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인생 자체가 실험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젊을 때에 실컷 도전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부럽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서울대저널>은 더욱 청년의 아름다운 실험정신을 계속하여 행동에 옮겨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그리하여 <서울대저널>이 대한민국의, 아니 세계의 대표적인 대학 매체로서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