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호 > 기고·칼럼 >기자수첩
타인의 아픔
등록일 2018.12.16 21:22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5:02l 정명훈 기자(jmhoon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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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상대방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이유는 사람의 눈에는 말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다. 시선을 마주치면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눈을 응시하는 건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다.


  지난 11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인근에서 만난 김영신 씨의 눈은 초점을 잃어 흐릿했다. 그는 오른쪽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왼쪽 눈 시야의 가장자리로만 뿌옇게 볼 수 있다고 했다. 메탄올 산재는 영신 씨의 시력을 앗아갔다. 내 시선은 그의 두 눈을 향했지만 금세 눈언저리에서 맴돌았다. 근로감독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던 날, 다른 산재 피재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방동근 씨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이동해야 했다. 학생 기자라고 소개하는 동안 나는 이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나는 이들이 지나온 삶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피재자들이 왜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지, 이들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부족한데 학생 기자라는 직함만 갖고 취재를 감행한 건 아닌지, 동정의 시선으로 이들을 대상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러한 물음들 앞에 떳떳하지 못해 죄스러웠고,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다. 피재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엇이 이들을 아프게 만들었는지 기자의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취재원들을 번거롭게 만들었다. 부족한 기사 <메탄올 산재 그 이후, 노동자의 건강은 아직 요원하다>는 그렇게 쓰였다.


  소중한 지면을 네 페이지씩이나 할애해 산재, 즉 노동자의 건강을 다룬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치곤 했던 것을 떠올려보길 주제넘지만 부탁드린다. 편리함 뒤에는 타인의 노동이 있다. 그런데 그 노동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는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에 들어갈 부품을 만들어야 했다. 보이지 않는 노동에 노동자는 잊혔다. 스마트폰 부품 제조 공장의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주의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타인의 노동을 보지 못한다 해도, 타인의 노동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타인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다 시력을 잃었다. <서울대저널> 기자로 쓰는 마지막 기사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아픔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