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호 > 기고·칼럼
무감
등록일 2018.12.17 19:23l최종 업데이트 2018.12.18 15:00l 유지윤 사회부장(jiyoun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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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후 부원과 다큐멘터리 상영회에 갔었다. 다큐 제목은 <얼굴, 그 맞은편>. 사이버 성폭력 해결에 앞장서온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활동가들의 이야기였다. 한사성이 처음 모였을 때는 번번한 사무실이 없어 매일 노트북과 서류를 들고 카페를 전전했다고 한다. 불안정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활동가들은 이제 야근과 스트레스성 탈모, 카드빚 독촉 전화쯤은 익숙하다 했다. 이들을 단단히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 다큐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영이 끝난 후 누군가 물었다. 활동의 원동력이 무어냐는 질문에, 앞에 선 활동가들은 단번에 대답하기 어렵다 했다. 고민 끝에 그들이 말한 이유는 꽤 간단했다. 그들은 현실을 본 순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했다.

  누군가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는 그 현실이, 왜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별 게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취재하며 모니터링한 커뮤니티들은 여성의 몸을 당연하다는 듯 모욕하고 소비하고 있었다.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 마주하는 현실이 오히려 꿈 같았다. 온라인 공간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래서 누군가를 두렵고 아프고 심지어는 죽게까지 만드는데, 세상은 너무나 잘 돌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세상이 어쩜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심한 현실을 만들어낸 건 개개인의 무감함이었겠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국산’을 검색하는 손들,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선들은 그 속에 담긴 폭력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영상은 보고싶다는, 그러길래 왜 찍었냐는 말들은 그것이 보고 듣는 이의 삶을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지 모른 척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순간의 무감함이 소라넷 유저 수인 100만을 넘고, 웹하드 영상 조회수인 수백만을 넘어 만든 게 작금의 현실일 것이다.

  타인을 생각하는 건 쉽지 않고, 감정을 대입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내가 하는 순간의 행위가 어떻게 다른 이의 고통이 되는지 민감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느껴야 한다. 모니터 속 그 사람도 삶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처절하게 돌이켜 봐야 한다. 지나온 우리의 무감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