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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창리에서
등록일 2019.04.19 14:13l최종 업데이트 2019.05.12 14:56l 정근식(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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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창리를 아는가? 이곳에는 철원군 김화읍에 속한 작은 마을이 있다. 과거에는 검문소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민북마을’이었으나 이제는 민간인 통제선이 마을 뒤로 옮겨져 검문 없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입구에는 ‘통일로 가는 길 생창리’라는 표지석과 함께, 통일대장군과 평화여장군이라는 장승이 서 있다. 이 마을 주변은 2008년부터 시작된 DMZ 생태조사를 거쳐 생태평화공원으로 지정되었고, 3년 전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 공원은 하루 2회, 각각 40명씩만 신청을 받아 관람을 하는 곳이다.


  생창리가 속해 있는 철원군 김화읍이라는 행정구역 자체가 전쟁의 산물이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 ‘철의 삼각지대’. 이곳은 철원, 김화, 평강 3개 군을 잇는 전장이었다. 이곳은 38선 이북이어서 해방과 함께 북한에 속했는데, 전쟁과정에서 ‘수복’되었다. 그러나 김화군의 대부분의 지역은 군사분계선 북쪽에 위치하게 되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만들지 못하고, 철원군에 속한 읍 지역이 되었다.   


  생창리는 1970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남북대결이 한창이던 1968년 정부는 민통선 북방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영농을 할 수 있도록 재건촌이라는 마을을 조성하고 제대군인들을 입주시켰다. 생창리는 제대군인 100세대가 입주한 재건촌이 되었고, 안보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철원에서 출발하여 금강산으로 가던 전철이 지나는 김화역이나 김화군청이 있었던 자리는 모두 생창리 주민들에 의해 농경지로 변했다. 생창리 인근에 있는 유곡리는 1973년 통일촌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는데 북쪽으로 잘 보이는 선전촌의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는 재건촌과 통일촌을 합하여 전략촌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 일대가 생태평화공원으로 조성된 후, 마을에는 방문자센터가 들어섰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지뢰지대를 지나 검문소에 이르면 왼편으로는 십자탑 탐방로가 있고 오른쪽으로 용양보 탐방로가 있다. 십자탑 탐방로는 성산 숲 속을 따라 조성된 것으로 몇 개의 쉼터를 지나 산 정상에 오르면 커다란 십자탑이 서있다. 여기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우람하게 떡 버티고 있는 오성산이 보인다. 이 산 아래로 우리가 저격 능선이라고 부르는 산줄기가 흘러내리는데, 바로 이곳이 휴전 직전에 벌어진 최대의 고지전, 중국에서 인민지원군 최대의 승전이라고 부르는 상감령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다. 이 산줄기의 낮은 봉우리 하나에 바로 얼마 전에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해체한 우리 측 GP가 있었다. 이곳을 내려다보는 북측 GP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시찰한 곳이라 하여 남겨둔 대신 우리는 고성에 있는 금 강산 GP를 남겨두었다.   

  

  십자탑 탐방로를 따라 내려오면 ‘비밀의 정원’이 있고, 이를 지나 다시 검문소에 이르면 이제는 용양보 탐방로가 기다리고 있다. 이 탐방로에는 김화가 어디쯤 있는가를 알려주는 도로원표가 남아 있다. 서울 000km, 철원 26km, 회양 57km, 원산 153km, 화천 43km. 다른 곳까지의 거리는 알아볼 수 있는데 서울까지의 거리는 총탄에 맞아 지워졌다. 마치 전후 60여 년간 서울로 자유롭게 오갈 수 없었던 상황을 예견한 듯한 모습이다. 이 도로원표에 표시된 회양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을 지나 금강산으로 들어갔던 송강 정철이나 김삿갓을 떠오르게 한다.   


  이 도로원표 옆에 암정교라는 다리가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 다리의 이름은 어쩐지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일본식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1917년에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다리의 이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일본식 지명일 것이다. 전쟁 중에 폭격을 받아 일부가 부서졌고, 기둥과 난간 곳곳에 총격을 받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다리 밑으로는 과거에 남대천이라고 불렸던 화강이 흐르고 있는데, 오리들이 ‘유유’ 헤엄 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물줄기를 따라 동북쪽으로 조금 더 걷다보면 용양보에 이른다. 이 보는 원래 금강산 전철이 지나던 다리 난간을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용양보에서는 멀리 계웅산 자락의 승리 전망대가 보이고, 가까이는 나무판을 묶어 만들었던 출렁다리의 잔해를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사진들과 비 교하면서 나무판들이 몇 개 남아 있는 지를 세어보는데, 하나씩 둘씩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분단의 허물을 벗겨내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여기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 출렁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밧줄에 앉아 있는 민물 가마우지 떼를 찍기를 좋아한다.   

  생창리 앞 넓은 들은 벼농사 뿐 아니라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토마토 및 파프리카 농사에 활용된다. 이를 위한 비닐하우스가 이곳을 찾는 철새, 특히 두루미들에게는 생태를 파괴하는 기능을 한다. 이 때문에 지속가능한 생태환경과 주민들의 경제발전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생창리 마을에는 최근에 ‘사라진 마을 김화이야기관’이 세워졌다. 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김화읍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작은 역사관이다. 역과 관청, 학교, 양조장 등과 거리를 오가는 김 화사람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수많은 마을이 전쟁이나 개발로 사라졌는데, 사라진 마을을 기억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은 대체로 망향비 건립으로 나타난다. 김화이야기관처럼 작은 역사관으로 재현된 것은 생창리의 사례가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분단과 평화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민북마을이나 접경지역의 주민들의 삶을 좌우하고 있다.   

  이제 생창리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수많은 분단비용을 치르고 얻은 건강한 생태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아니 오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는 평화 손잡기 행사가 전국 곳곳의 DMZ 인근에서 펼쳐지는데, 이 행사에 참가하여, 평화를 직접 만들어보시라고 권한다.


정근식(사회학과) 교수 
정근식 교수는 평의원회 의장과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한국냉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