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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 10번 출구
등록일 2016.06.13 17:24l최종 업데이트 2016.06.18 12:15l 안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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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봤어? 정신병이래. 여성혐오 아니라니까.”


  2016년 5월 17일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의 조사에 투입된 프로파일러의 의견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 뒤, 어떤 사람들은 위와 같이 반응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피의자의 과거 정신과 진찰 기록들이 보도되면서 이 사건을 여성혐오와 연관 짓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이 잇따라 나왔고, 아울러 이번 사건 때문에 남성혐오적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라는 주장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피의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 질환에 의한 것이지 사회·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일반화된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대한 담론들이 논의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세 개의 질문(첫 번째 질문은 두 개의 하부 질문으로 구성될 것이다)과 그에 대한 필자의 졸견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다음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일제강점기에 어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조선인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으며, 이에 어느 기차역의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용변을 보러 들어온 조선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였다. 이에 조선인들이 격분, 이는 조선인 혐오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며 그 기차역의 출구에 조선인 혐오에 대한 내용이 적힌 쪽지들을 써서 붙였다.’ 그렇다면 질문: 이 살인 사건은 조선인 혐오에 의한 것인가? 그리고 그게 아니라 그저 개인적 차원의 정신병에 의한 것이면, 기차역 출구에 그 쪽지들을 붙이는 것은 잘못된 사회적 차원의 현상인가?


  둘째, 만일 강남역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피의자의 성별이 바뀌었다면, 즉 여성이 남성을 죽였다면, 강남역 10번 출구가 남성혐오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의 쪽지들로 도배되었을까?
셋째,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 화장실에 가면, 남자 화장실 앞의 줄보다 여성 화장실 앞의 줄이 더 긴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조선인 혐오에 의한 살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쪽지들이 붙은 이유는 단순히 한 살인 사건에 의한 게 아니라 한 국가의 다른 국가에 대한 부당한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봐야 하며, 그런 방식의 생존권 회복 운동은 그 인과가 명백하며 타당하다’이다. 둘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재 강남역 10번 출구의 쪽지 도배는 첫 질문의 사회적 저항 및 생존권 회복적 성격과 논리적인 구조가 일치하며, 이에 놀랍지 않다. 허나 두 사람의 성별이 바뀐 경우에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 여성 차별을 고려할 때 일제 강점기의 경우와의 논리적 동치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놀라울 것이다. 말 그대로 일제강점기였지 ‘한제’강점기가 아니었지 않은가’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여자 화장실의 변기 개수가 남자 화장실의 그것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우리나라 남성과 여성의 인구 비율은 1:1에 가깝고, 남자 화장실과는 달리 여자 화장실에는 좌변기만 설치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남녀가 공평한 사회에 살고 있다면, 왜 여자 화장실 내 변기의 개수는 남자 화장실보다 적어야 하는가이다. 두 화장실의 변기 개수는 좌식, 입식에 관계없이 같아야 하는 게 정당하며, 그렇다면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여성 화장실은 면적을 더 넓게 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혹자는 면적의 차이 또한 차별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는 같은 친구로부터 옷을 선물받기로 한 두 사람 중 체격이 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이즈가 큰 옷을 받는 게 부당하다는 논리와 동치이다. 그렇다, 한국 건축은 여성이 정당히 누려야 할 화장실 사이즈를 제공하지 않아온 안타까운 역사를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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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표지. ⓒ<맥심> 2015년 9월호



  문화이론적으로 여성혐오는 단순히 혐오, 즉 ‘싫어함’의 개념보다 포괄적인 것이다. 여성혐오의 기저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오랜 무시와 차별의 역사가 있고, 여성혐오라는 개념적 건축물은 이 부끄러운 초석 위에 서 있다. 그 부끄러움의 수준은 너무나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 가령 잡지 [맥심]의 2015년 9월호의 첫 표지 디자인을 통해 드러난다. 여성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 나르는 나쁜 남성의 우상화에 대한 발상 자체가, 그게 잡지의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질 거라고, 즉 그게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과 일치할 거라는 기대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여자 화장실의 크기만큼이나 여자의 일반적 인권의 크기는 부당하게 작게 설정되는 문화적 규칙 없이 가능했겠는가?


  그런 규칙의 지배를 받아온 한국 여성들이기에,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혐오한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혐오라는 반작용이 여성혐오라는 선재하는 작용에 기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칙을 올바로 성찰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의 쪽지 도배를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에 대한 잘못된 접근’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설사 피의자의 주된 동기가 정신질환이라는 개인적 변수였던 게 완전한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그 사회적 문제를 되짚어볼 수 있기 때문’이라 통찰하는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문화적, 보편적 문제이기에, 그 논의는 한 지하철역의 역세권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 학교도 여성혐오에 의한 만성적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가령 성비가 같은 수업이 끝난 뒤 각 화장실 앞에 줄을 서고 있는 사람 수의 차이를 보라), 서울대입구역 10번 출구의 공사와 도배를 위한 첫 삽을 뜨고 첫 쪽지를 붙이고자 졸견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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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우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사회학 복수전공으로 문학사를 취득한 뒤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학사편입학하여 이학사를 취득했다. 수리과학부 졸업 논문 주제는 ‘최저임금제와 실업의 관계에 대한 수학적 고찰’이었다. 졸업 후에는 주로 방송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현재 KBS의 <Current Affairs in Focus>와 아리랑 국제방송의 <Hello, Gugak!> MC이며 KBS <김홍성의 생방송 정보쇼>에서는 “문화 엿보기” 코너의 문화평론가로 출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