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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노동’을 찾아서 ‘노동’이 빠진 학교, 불온한 노동을 넘어, 모두가 행복한 건강한 민주사회를 위하여
등록일 2016.06.13 22:46l최종 업데이트 2017.03.11 21:54l 김시은(사회교육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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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노동 3권이 뭔지 아시나요? 왜 5월 1일은 노동절, 근로자의 날, 2개의 이름을 가질까요? 올해 최저임금은 얼마인가요?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아세요? 알바 하실 때, 근로계약서 작성 해보셨어요? 작성하는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노동조합은 무슨 역할을 할까요? 뉴스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노동유연성은 무슨 뜻일까요? 비정규직은 어떤 의미일까요? 왜 문제가 될까요? 노동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노동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거의 대부분 노동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얻어 생계를 꾸려간다. 물론 소위 ‘금수저’이거나, 노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경우, 노동은 그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은 우리가 두 발 딛고 서있는 땅, 숨쉬는 공기, 하늘의 햇볕만큼 우리의 일생을 좌우하며 심원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청소년들이 혹독한 입시지옥을 경험하는 이유도, 수많은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로 청춘을 희생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것이다. 드라마 <미생>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도, ‘기승전-치킨집’, ‘치킨공화국’이란 말이 널리 사용되는 것도, 사람들의 삶의 문제가 결국 노동과 깊게 연관되어있음을 증명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노동은 삶의 토대이자, 삶의 많은 영역을 규정짓는 강력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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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미생> - 21세기 한국의 노동현장과 직장인의 힘든 삶을 다루며 큰 공감을 얻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노동은 삶의 구석구석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토대이지만, 우리는 노동에 대해 얼마나 배웠을까? 위에 제시된 질문들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대답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자격증을 따거나, 기술훈련을 받거나, 졸업장을 따서, 해당 직업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능력을 갖추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한다. 물론 노동에 있어서 그것들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어른들의 거울’인 아이들의 입을 빌어 들을 수 있었다. 메이데이를 맞이하여, <경향신문>에서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특집 기사 ‘노동이 부끄러워요?’를 통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노동/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조사하고, 초중등학교의 사회교과서에서의 노동 관련 서술을 분석하였다. 결과는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기에 수긍할 수 있었다.

  조사 대상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노동을 힘든 것이라고 대답하였으며, 노동자는 불쌍하고, 높은 사람이 시켜서 일하는 사람이고, ‘노예/천민’이라고 느낀다는 대답을 할 만큼, 노동/노동자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 학급을 대상으로 “자신의 희망직종이 노동자에 해당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이 아니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편 초등학생들은 슈퍼마켓 계산대 노동자가 ‘서서 일해야 하는지, 앉아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앉아있는 것은 건방져 보이고, 예의가 없다.’고 답했다. 이는 초등학생들이 철저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가상 기업 경영’에서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노동자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임금이 노동자의 삶에서 무슨 의미이며,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지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처럼 초등학생들의 노동/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그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시나브로 어른들의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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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과 사용자들의 이익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모습. ⓒ아주뉴스



  한편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노동’을 접할 기회는 최대 5시간으로 분석되었다. 1만 시간이 넘는 총 교육 시수에서 학생들은 노동에 대해 최대 5시간을 배울 수 있다. 노동은 초중고 사회 시간을 통해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며, 사회 교과서 속에서 노동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마저도 일부 문과 학생만 선택하는 선택과목에서 배울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교육과정에서는, 어떤 학생은 12년 동안 노동에 대해 거의 배우지 못하고 졸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배운다고 해도 삶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가르치지도 못하며, 민주시민으로써 필요한 노동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는 수준에도 미치지못한다. 

  그런데 사회 교과목은 왜 존재하는가? 국가 교육과정 속에서 ‘사회’ 교과는 “학생들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 기능, 가치·태도 등을 형성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사회에 요구되는 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차경수, 모경환, 『사회과 교육』, 동문사, 2009) 존재한다. 즉 ‘사회’ 과목은 기본적으로 민주시민의 자질 증진과 시민성의 함양을 목적으로 하며,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과목이다. 학생들은 ‘사회’ 과목을 통해,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그 구조와 특징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사회 속에서 담당하게 될 다양한 역할에 대한 역량을 키움으로써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대비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시민들은 사회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정치적 주권자로써 정치에 참여하고, 경제 영역에서는 생산과 소비를 담당한다. 따라서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통해 정치와 (헌)법에 대해 배우고, 나아가 민주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영역에선 어떤가? 학생들은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권리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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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의 데모 모습. ⓒ연합뉴스



  영국의 중도우파 철학자 브릭하우스는, 학교 교육에서의 노동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노동자가 되는데, 사용자는 노동자의 권리보다 의무와 책임을 더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학교는 장차 노동자가 될 학생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충분히 배울 수 있도록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미국에서 노동조합 가입율이 감소함에 따라, 교육과정에서의 노동 관련교육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기업가 단체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교육과정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임을 지적한다.(Brichouse, <Oneducation>, Routledge, 2006)

  브릭하우스의 지적처럼, 대다수의 학생들은 노동자로 고용되어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의무와 책임뿐만 아니라,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워야한다. 하지만 브릭하우스가 지적했던 미국의 상황이 한국에서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열악한 노동교육 실태가 증명하듯, 학생들은 학교에서 노동자의 권리는커녕, 근로계약서 작성법조차 배우지 못하고, 최저임금이 무엇인지, 어떻게 노동 현장에서 입은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같은 사용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내용은 교육과정에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전경련은 교육과정에 ‘기업가 정신’을 포함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직접 교과서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사용자/기업가 입장을 적극 옹호하고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가치관을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많은 학생들에게, 노동자로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과 태도를 배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부족한 노동교육을 보충하기 위해, (사회)교사가 교육활동을 수행해도 불온한 행동으로 몰린다. 최근 한 고등학교 교사가 교과서만으로는 노동교육을 충분히 수행하기 어려워, 드라마 <송곳>의 일부를 시청각 자료로 활용하여 보충학습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해당 고등학교 교장은, 그것을 문제시하여, 해당 사회 교사를 다른 학교로 전보시켰는데, 이는 명백한 노동교육에 대한 징계이다. 이처럼 ‘노동’을 학교 현장에서 가르친다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는 것은, ‘반공주의 멸균실’이었던 한국 현대사의 슬픈 자화상이다. 2016년 현재에도, 노동을 불온시하는 담론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학교와 교육과정, 그리고 교과서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한 시대와 사회의 권력관계를 반영하여 재현하는 거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과서의 정치성을 일깨워 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이 보여주듯, 학교와 교과서는 중립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노동이 부정적으로 묘사되거나, 아예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노동을 불온시하고, 노동자를 ‘빨갱이’로 몰아가려는 권력관계가 여전히 사회적으로 공고함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을 위시한 사용자 단체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학생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기업가/사용자 입장의 편향된 태도를 고착시킬 것이다. 이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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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여러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구축해 운영하는 사이트인 ‘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unions into schools)’.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또한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 당연하고, 궁극적으로 이해관계를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로 갈등을 조정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인 시민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키는 것은 불온하거나 잘못된 행위가 아니다. 강도를 만난 시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부르거나, 긴급한 경우 정당방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노동자인 시민이 사용자와의 계약관계에서 서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협상하고, 타협하며,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집단행동을 하는 것도, 불온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현행 법률’이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이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동안 철저히 자본가와 기업의 입장에서 노사관계를 규정해왔다. 한국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다는 사용자들의 한탄은 언론에서 대서특필하지만, 노동자들의 주장과 행동은 흔히 ‘빨갱이’, ‘귀족노조’, ‘정치 파업’, ‘많이 받으면서 더 받으려는 떼쓰기’로 매도된다. 정부는 (대)기업들의 입장을 적극 옹호해주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묵살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자단체를 ‘종북’으로 몰아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우편향 된 담론과 권력관계는 학교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 학생들이 모두 기업을 운영하며, 회장님, 사장님, 대표이사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사용자의 입장만을 가르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심지어 우리 학생들의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노동자가 될 것이다. 현대 시민의 정체성 중 하나가 노동자이기에,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 감수성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노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은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땅콩회항’과 같은 노동자에 대한 ‘갑질’에 시민들이 분노하고, 드라마 <미생>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이유도, 대중들이 노동 현장에서 비인격적 대우와 부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인간다운 삶과 건강한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노동자가 될 학생들을 위해서, 그리고 사용자가 되어 노동자를 고용할 학생들을 위해서 노동교육은 필요하다. 건강한 민주사회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운데,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타협하는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영구불변의 지위도 아니고,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또한 누구 하나만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인권을 보장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건강한 민주사회에 이르기 위해선, 노동을 불온시해서도 안되고, 노동자를 부끄러운 존재로 여겨서도 안 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인권과 삶을 저버리는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시민의 삶도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노동교육이다. 이것이 학교교육에서 잃어버린 ‘노동’을 되찾아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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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은(사회교육 11) 대학에 와서 다양한 학문영역을 기웃거렸으나, 큰 소득은 없었다. 자타칭 ‘페북벌레’로써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최근엔 독일에 흠뻑 빠져 독일 관련 수업을 듣고 있고, 독일을 통해 한국을 재인식하고 있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찰나, 카프카를 만나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다. 대학에서 더 많은 걸 배워갈 수 있길 소망하며 졸업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