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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노동자이자, 치마를 입는 남자이자, 페미니스트입니다” 성노동자 네트워크 ‘ 손’의 도균 씨를 만나다
등록일 2016.12.09 20:58l최종 업데이트 2016.12.15 12:51l 이재은 기자(ssje15@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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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성매매 특별법이라 불리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성을 파는 것도 사는 것도 불법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이로부터 약 5개월 뒤인 8월 19일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 머리말’이라는 공식 글을 처음으로 게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성노동자들이 스스로 선포한 성노동자의 날인 6월 29일을 기념하고자 매주 오후 6시 29분 글이 게재되고 있다.


  ‘손’의 구성원 도균 씨는 스스로를 “성노동자이자, 치마를 입는 남자이자, 남성과 연애를 하는 성소수자이자,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도균 씨는 ‘손’ 을 만들 것을 제안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올해 6월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던 도균 씨는 “왜 성노동자들은 이처럼 함께 걸을 수 없지?”라고 생각했고, 이후 도균 씨가 SNS 올린 제안글을 본 3명의 성노동자가 모여서 ‘손’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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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자이자 성노동 운동가인 도균 씨 ⓒ오선영 사진기자


  ‘손’의 구성원들은 첫 만남부터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곧 서로 의지하게 됐다. 첫 출발 이후 약 100일간 ‘손’은 매주 금요일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노동과 관련된 글을 올렸다. 불법으로 규정된 일을 하는 그들이 공개적으로 성노동 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좋아요’, 공유, 메일 등을 통해 연대의 손길이 전해졌다. 출범한 지 3개월, 전하고 싶은 말도, 꿈도 많은 네트워크 ‘손’을 처음으로 제안한 도균 씨의 삶을 들여다봤다.



악화된 건강 속에서 선택한 성노동


  2012년 급격한 건강 악화로 지방의 고향에서 요양을 하던 도균 씨는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치마를 입는 남자로서, 더구나 정신 건강까지 나빠진 상황에서 사람들과 대면하는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친구들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 놓기 위해 서울까지 오기 위해서라도 매번 교통비, 식비 등 돈이 필요했고, 도균 씨는 성노동을 처음 결심했다. 처음 성노동을 경험하기 전 도균 씨는 성노동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아팠던 그가 1시간에 7만원이라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는 없었고, 그렇게 도균 씨는 성노동을 시작했다.

도균 씨가 일하는 환경은 일반적으로 ‘성매매’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환경과는 많이 다르다. 도균 씨는 윤락업소들이 모여 있는 집결지의 가게에 소속돼 일하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직접 손님을 구하고, 시간당 혹은 기간당 금액을 협상한다. 그때그때 약속한 장소에서 손님과 만나 일정 시간 동안 성노동을 하거나, 혹은 일정 기간의 조건만남 형태로 성노동을 지속한다.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 성노동자이자, 성노동 외에도 학업과 성노동 운동을 병행하는 도균 씨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다.


  도균 씨는 “한국의 성노동자는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으로 추정된다”며, 성노동자의 수만큼 노동환경 또한 다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다양한 환경의 성노동자들이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고 덧붙였다. 성노동자들에 대한 구매자의 신체적·성적 폭력은 적지 않지만, 성노동이 불법이기에 경찰을 부르기 어렵다. 때문에 도균 씨는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성노동자들끼리 서로의 방법을 공유하며 폭력에 대처하기도 한다.


  도균 씨의 친구들 대부분은 그가 성노동자라는 사실을 안다. 그가 성소수자이자 성노동자임을 밝힌 후에 만나 가까워진 친구가 대다수지만, 처음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나중에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도 있다. 도균 씨의 친구들은 처음에 그를 동정하거나 성노동을 하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도균 씨는 화나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꽉 막힌 채 폭력적, 차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보다 설득의 가능성이 높다며 그는 웃었다. 실제로 그의 친구들은 수년간의 대화를 통해 도균 씨의 성적 지향과 성노동을 이해하게 됐다.



성매매 합법화 논의가 지우는 성노동자의 빈곤과 인권


  지난 9월 16일 ‘손’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도균’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도균 씨는 “성노동에 대한 논쟁이 이뤄질 때, ‘자발-비자발’, ‘생계-비생계’, ‘판매자만의 비범죄화-전면 비범죄화’와 같은 식으로 논점이 수렴되는 것이 언제나 답답했다”고 적었다. 그 이유를 묻자 “‘핸드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다양한 답이 나오는데 굳이 ‘기자님 핸드폰과 제 핸드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괜히 둘 중 하나가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복잡한 층위의 성노동 논의를 대립적 쟁점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논점들을 지워버린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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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합법화·불법화와 관련된 논점은 성노동 논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2004년 9월 23일부터 성매매특별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일부 성노동자들은 줄곧 성노동 합법화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도균 씨의 입장은 다르다. 합법화는 국가에서 성노동에 대한 통제권을 과도하게 가져가는 방식이라는 이유에서다.


  도균 씨는 성매매 불법화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한국의 경우 성노동이 불법이지만 공공연하게 성노동 집결지가 방치되며, 심지어 권력가와 자본가들에게 암암리에 성상납이 이루어지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의 경우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업주를 처벌하지만 성매매 여성은 처벌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도균 씨는 “겉으로는 성노동자를 보호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성산업을 축소하거나 음성화함으로써 오히려 성노동자의 생계와 권리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한편 도균 씨는 성매매 전면 비범죄화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한국 사회에서 자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기 때문에, 성매매가 전면 비범죄화될 경우 대기업 자본들이 성산업에도 손을 뻗쳐 성노동자들의 권리는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대기업의 이름을 건 룸싸롱이 생겨날 것이고, 성노동자들은 낮은 화대와 열악한 노동환경 아래서 기존의 성노동 뿐만 아니라 각종 접대까지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성매매를 둘러 싼 법적 규제 논란에 대해 도균 씨는 성노동자들 각각에게 적합한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합법, 불법을 논하기 이전에 성노동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노동 논의의 또 다른 논점은 성노동자의 자발성 여부다. 성매매 처벌 대상에서 성노동자를 제외하는 것을 두고,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한 성노동자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도균 씨는 노동의 자발성 여부가 성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도균 씨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마음대로 그만둘 수는 없는 현실에 혼란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노동의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이는 비단 성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노동의 합법성과 자발성을 둘러싼 논쟁에 성노동의 다른 중요한 쟁점들은 가려진다. 더 큰 문제는 성노동 논의의 장 자체가 불균형적인 구조 아래 짜여져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성노동 논쟁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닌 ‘반(反)성노동 운동 단체’와 공개적 활동 자체가 어려운 ‘성노동 운동 단체’의 불균형적 구조 아래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도균 씨는 “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지우지 않은 채 이뤄지는 성노동 논의는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노동 논쟁의 쟁점을 재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균 씨는 성노동자의 빈곤, 이주 성노동자, 성병에 대한 오해와 낙인을 시급한 논의 주제로 꼽았다. 도균 씨는 먼저 성노동자의 빈곤에 대해 입을 뗐다. 그는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버는 성노동자와 당장 월세와 생활비가 급해서 ‘노콘돔(콘돔 없이 성관계를 맺는 옵션)’을 고민하는 성노동자를 같은 선상에서 보긴 어렵다”며 성노동자들의 수입과 경제적 계층이 천차만별이라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이주 성노동자는 주로 하위 계급에 속한다. 이주 성노동자들은 낮은 금액으로 열악한 처우를 받으며 일하지만 적발되면 곧바로 강제추방을 당한다. 한국어도 서툴고 건강보험도 가입하지 못한 이들은 의료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도균 씨는 “이주 성노동자 문제에는 성매매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 인신매매,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혼재돼 있어 더욱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에이즈로 대표되는 성병에 대한 낙인도 성노동자를 괴롭힌다. 에이즈 환자든, 성노동자든, 둘 모두에 해당하는 이든 복합적인 낙인을 경험한다. 성병 환자는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란 편견, 성노동자는 문란한 성생활을 하므로 성병이 있을 거란 편견은 성노동자를 더 쉽게 성병의 위험에 빠뜨린다. 도균 씨 는 “성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할수록 성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성병에 대한 낙인으로 성노동자가 위생적이고 안전한 성관계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면, 성노동자가 성병에 감염될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도균 씨는 이러한 환경이 성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성노동자가 실제로 성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악순환 구조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저는 계약하고, 일을 해 돈을 버는 노동자이자, 페미니스트입니다”


  ‘성노동이 왜 노동이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는 도균 씨는 이에 대해 명쾌한 답을 줬다. 그는 “저는 일종의 계약을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생활하거든요”라며 이런 일을 부르는 말 중에 노동 말고 다른 말이 무엇이 있는지 반문했다. 도균 씨는 이어서 “성노동은 고강도의 감정노동이자 육체노동이고, 사회적 낙인이 굉장히 심하며,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직업”이라면서도 “일하는 시간에 비해 시급은 세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성도 신성하고, 노동도 신성하다면 성노동은 더욱 신성한 것이 아니냐”는 농담을 던진 후 “여러 취약노동 중 유독 성노동에 대해서만 가혹한 차별이 가해지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한 만큼, 성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한국의 성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대표적인 문제가 건강권 침해다. 도균 씨는 “피임이나 낙태는 성노동자들에게는 장난이 아닌 일”이라며 성노동 중 피임을 하지 못해 임신하게 된 상황을 “심각한 산업재해” 라고 표현했다. 수많은 성노동자들이 빈곤 때문에 더 큰 돈을 받을 수 있는 노콘돔을 선택해야 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낙태를 받다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 상황을 스스로 피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여성·노동·의료 관련 부처 중 어느 곳도 건강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성소수자이자 성노동자인 도균 씨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정체성이 있다. 바로 페미니스트다. 성소수자이자 성노동자로서 도균 씨는 많은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며 공포, 불안, 어려움을 느껴왔다. 이러한 그의 감정과 상황을 역사적 맥락에서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페미니즘뿐이었다. 도균 씨는 “저의 힘듦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계 하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임을 처음 알게 됐을 때 혼자 많이 울었다”며 처음 페미니즘 책을 접했던 기억을 전했다. 페미니즘을 접한 후 다시 들여다본 성노동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성노동 논쟁 안에는 젠더 위계, 색슈얼리티 위계, 젠더 정체성, 여성혐오 등 복잡한 문제가 결부돼있었다. 도균 씨는 다양한 입장에 대해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페미니스트라면 성노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노동 운동 기반을 만드는 당사자 이론가로


  앞으로도 성노동을 지속할 것이냐는 물음에 도균 씨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도균 씨는 매번 돈이 필요하면 그때 그때 일을 찾았고, 그 중에 가장 좋은 조건의 일을 선택했다고 한다. 도균 씨는 미래에 자신이 가진 선택지 중에 성노동이 있을지 단언할 수 없지만, 성노동 운동만큼은 꾸준히 지속할 것이라고 힘주어 답했다. 성노동 문제는 도균 씨로 하여금 가장 깊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가장 열렬히 사회적 변화를 갈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노동 운동가로서 도균 씨는 당사자 이론가와 성노동 연극 기획가를 꿈꾼다. 현재 성노동과 관련된 연구와 이론 개발은 전문 학자인 이론가들이 주도한다. 정작 성노동자 당사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거나 연구할만한 방법을 알지 못한다. 도균 씨는 “언제까지나 소수 이론가분들의 선의에 기대 활동할 수는 없다”며 성노동자들이 당사자로서 활동가, 이론가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그 또한 당사자 이론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성노동자들의 경험을 연극으로 표현해보는 일을 막연히 꿈꾸는 중이다. 그는 성노동을 주제로 한 세 편의 연극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의 꿈은 한국의 성노동 집결지 중 한 공간을 빌려 성노동자들과 관객, 연기자가 자유롭게 참여하는 즉흥극을 올리는 것이다. 성노 동자들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배우는 즉흥연기로 표현하고, 연극에 참여한 모두가 연극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기획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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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자네트워크 손의 공식 마크 ⓒ성노동자네트워크 손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미래에도 다양한 길이 열려있다. 도균 씨는 ‘손’을 출범시킬 당시 성노동 운동 연대체를 꾸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손’의 구성원들은 한국에서는 공개적으로 성노동 운동을 방해하는 개인적·사회적 요인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러나 도균 씨는 여전히 성노동자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저희를 보고 다양한 업종과 지역의 성노동자 분들이 작은 네트워크를 많이 꾸리길 바란다”며, 작은 네트워크끼리 연결되고 소통하며 더 큰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길 원한다고 전했다. 물론 ‘손’만의 계획도 있다. ‘손’은 현재 성노동 운동가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느낀 어려움과 한계, 조언 등을 담아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사업을 기획 중이다. 성노동자의 건강권, 노동권 등과 관련한 가이드라인 자료집을 만드는 것도 도균 씨와 ‘손’의 또 다른 꿈이다.


  성노동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도균 씨는 만연한 차별과 무시에 상처받았다.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 개인적 이야기일 뿐이라 비판받았고, 이론을 얘기하면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받았다. 애초에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고 느꼈다. 거센 비난을 받은 날이면 혼자서 하염없이 울곤 했다. 그때마다 도균 씨는 다음 세대 성노동 운동가는 모멸감과 고통을 느끼지 않길, 성노동 운동의 계보가 지워져버린 채 역사와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운동하게 되지 않길 바랐다. 도균 씨는 “그 기반을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앞으 로도 성노동 운동가로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