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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스캔 노예 파문, 노동법 사각지대의 민낯 사적업무지시로 숨 쉴 틈 없는 대학원생 조교의 일상
등록일 2017.03.09 23:52l최종 업데이트 2017.03.10 19:41l 김종현 기자(akdtkd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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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SBS>의 “서울대 스캔 노예 파문” 보도로 대학원생에게 부과되는 사적업무지시가 논란이 됐다. 1월 13일 <SBS> ‘8뉴스’는 서울대 A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수만 장의 논문과 책의 스캔을 지시한 사건을 단독 보도했다. A 교수의 과도한 업무지시에 시달리다 한국을 떠난 대학원생이 교육부에 A 교수를 고발했다고 알려지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A 교수는 본인이 지도하는 대학원생들을 “저녁 늦게, 주말까지도” 사적업무를 위해 동원했다. 대학원생 4명이 1년간 스캔한 분량은 쪽수로 8만 장에 달했다. 

사진1.jpg1월 13일 방송된 <SBS> '8뉴스' 보도 장면 ⓒSBS


일상적인 사적업무지시, “서울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 

  해외에 거주 중인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대학원 총학생회(원총)는 2월 2일 ‘서울대 스캔 노예 파문에 대한 의견(의견서)’을 공표했다. <SBS> 보도가 담지 못한 피해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A 교수는 100만 원을 스캔업무비로 지급하고 스캔업무가 과도하다는 대학원생들의 이의에 침묵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상습적으로 식사 보조·청소·부조금 전달 등 개인 심부름을 시켰다. 

  피해자를 포함한 대학원생들의 학업·연구권도 침해됐다. A 교수는 약 3개월 간 첨삭 1회를 제외하곤 피해자의 석사 학위논문을 전혀 지도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수업을 빠지고 조교업무를 수행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그가 맡은 대학원 수업은 수강생들이 수업 관련 연구 자료를 스캔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교수의 사적업무 강요는 이번 사건에 한정되지 않는, 대학원의 일상이다. 익명을 요청한 석사졸업생은 석사 재학 중에 신간서적 스캔과 원서 번역을 수행했다고 제보했다. 그는 “석사 입학생부터 박사 수료생까지 스캔의 그물에서 빠져 나갈 수 없었다”라며, 지도교수가 대학원생들을 비서처럼 이용했다고 말했다. 원총 이우창(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고등교육 전문위원은 ‘스캔 노예 파문’이 “서울대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수가 대학원생의 학위·장학금·진로를 쥐고 있는 구조에서 대학원생은 교수의 부당한 사적업무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 이 위원은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인권센터 뿐”이라고 제도의 미비를 꼬집었다. 


‘교수’인권센터? “제보자라도 특정돼야 조사 진행” 
  스캔 노예 파문의 화살은 인권센터로 향했다. <SBS> 보도에 의하면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할 인권센터는 교육부의 진상조사 권고에도 곧바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해당 교수를 음해하기 위한 고발”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떳떳하면 (인권센터에) 직접 고발하라”는 이유였다. 대학원생들의 증언 및 그들이 스캔했던 자료를 비롯한 피해사실이 폭로됐지만, 인권센터가 조사를 거부하고 A 교수를 대변한 것처럼 비춰졌다. 원총은 의견서에서 “인권센터의 업무투명성 및 대외신뢰도 제고를 위해 학부생, 대학원생 대표의 인권센터 운영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권센터는 피해자의 신고를 묵살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박찬성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인권센터는) 기본적으로 신고에 의한 조사를 원칙으로 한다. 최소한 피해자 및 제보자의 신원이 인권센터에 대해서는 특정되고 확인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박 전문위원은 “교육부로부터 피해자 및 제보자의 신상이나 접촉방법을 제공받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인권센터로 연락해 주도록 교육부 측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피해자에게) 답이 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인권센터는 원총이 대리인으로서 조사를 요청하거나, 피해자가 인권센터에 신고서를 접수하면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원총은 피해자와 신고 내용 및 절차를 합의 중이라고 답했다. 


대학원생 권리개선, 사적업무지시 금지와 근로기준법 적용이 우선
 
  지상파에 보도까지 됐지만 A 교수는 사건의 은폐를 시도하고 있었다. 원총 의견서에 따르면, A 교수는 지도학생들을 동원해 피해자의 신상을 파악 중이며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센터의 조사나 본부의 직접 대응 없이 A 교수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찬성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교수의 부당한 업무지시를 규제할 수 있는 법률이나 학칙이 서울대에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대학원 사회에서는 개별 사안에 대한 대응을 넘어, 대학원생의 노동권과 연구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수의 사적업무지시 금지 명문화와 대학원생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골자다. 원총은 허용될 수 없는 업무지시의 기준으로 ▲사전에 합의된 근무조건 위배 ▲업무에 합당한 반대급부 미지급 ▲대학원생의 학업과 연구수행을 위한 기본권 및 제반조건 침해 등을 제안했다. 이우창 전문위원은 이를 위반하는 교원에 대한 “처벌을 명시적으로 규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사진2.JPG

2월 9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전원협과 노웅래 의원의 공동 기자회견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대학원생 조교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위해 대학원 사회와 연대하고 있다. ‘전국 대학원 총학생회 협의회(전원협)’와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 9일 국회에서 대학원생 조교의 근로자성 인정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 의원은 “92%의 대학이 조교에게 임금 대신 편법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식으로 임용되지 않고 근로장학 형태로 노동하고 있는 대학원생 조교들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용우 변호사는 “이미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는 의대 인턴과 레지던트처럼, 대학원생 조교 또한 사용자인 대학교의 업무지시에 따라 근무 시간과 장소에 구속을 받으며 일하므로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원협은 대학원생 조교의 근로자성 인정을 통해 ▲최저임금 보장 ▲업무범위의 명확한 규정 ▲휴가·퇴직금·추가근무수당 등 근로자로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권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