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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의 놀이판, 나만 불편해?
등록일 2017.03.11 10:56l최종 업데이트 2017.05.15 14:48l 강민호(국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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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텔레비전을 켜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케이블과 종편 채널이 많아지면서 ‘선택권’은 많아졌지만 구태여 ‘선택’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의 변태적인 대중문화 취향(‘변태적’이란 단어에 지인들은 쉽게 수긍할 것이라 믿는다) 탓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생각해볼수록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양적으로 풍부해졌다. 콘셉트와 테마가 다양해졌다. 문제는 이를 아우르는 유머 코드가 여전히 몇 가지 유형으로 고착돼 있다. 첫째, 남성 멤버들이 그야말로 ‘떼거리로’ 몰려나와서 온갖 우스꽝스럽고 아둔한 모습들을 보인다. 둘째, 그 ‘떼거리’ 안에서 계급화 및 서열화 그리고 무한 경쟁이라는 구도로 유머 코드가 진행된다. 셋째, 프로그램에서 소수자의 위치(주로 게스트로서)를 지키고 있는 여성 출연자에게 ‘떼거리’는 서슴없이 대상화하고 공격한다.

  이런 놀이판에 여성 출연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나마도 틈바구니에 위태롭게 끼여서 보조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멤버·게스트에 불과하다. 다수의 여성들이 주축인 프로그램이 출범하려면 ‘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대놓고 ‘여자들의 예능’이란 수식어를 달고 나와야한다. 차별화 전략은 소수자로서 생존할 수 있는 필수 전략일지도 모른다. 반면 남자들로 득실거리는 프로그램은 굳이 차별화를 표방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것이 남자들의 ‘호모소셜(homo-social)’로 예능 프로그램이 점철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호모소셜은 사전적으로는 ‘동성사회’ 혹은 ‘동성 간 유대’ 정도로 번역되겠지만,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남성 간 유대’를 가리키는 단어로 한정했다. 여기서도 치즈코의 용법을 따르기로 한다.

  ‘남자들이 떼거리로 나와서 우스꽝스럽고 아둔한 모습을 보이는’ 예능으로는 ‘무한도전’이 대표적이다. 무한도전은 방영 초기부터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란 모토를 강조해왔다. 이것이 왜 남성들의 호모소셜에만 국한되는 특징인지는 일명 무한도전의 여자 버전이었던 ‘무한걸스’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무한걸스는 무한도전과 달리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여자들’이란 모토를 공유하지 않았다. 멤버 구성으로 봐도 ‘무한도전’은 애초에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친숙하던 방송인들로 구성됐지만, 무한걸스 멤버는 김숙을 비롯한 코미디언뿐만 아니라 가수 황보, 배우 오승은, 배우 정시아 등 다양했다.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남루한 남성들의 시끌벅적한 연대는 보통 서열화의 유머 코드와 맥을 같이 한다. 무한도전이 꾸준히 재현하는 ‘무한상사’ 특집은 사회 풍자의 일면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프로그램이 평소에 갖고 있던 서열 싸움 코드를 다르게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 어느 특집에서나 1인자로서의 유재석과 2인자로서의 박명수, 그들 사이에서 파벌 싸움을 하는 멤버들, 그리고 광희로 대표되는 능력 없는(즉 ‘웃기지 못하는’) 최하층 멤버라는 피라미드 구조가 늘 유지된다. 최근 인기가 많은 ‘아는 형님’에서도 강호동이 1인자 역할을, 김영철이 최하층 역할을 도맡는 형국을 되풀이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서열화가 유머 코드로서 소비되려면 서로 헐뜯는, 일명 ‘디스’가 난무하는 개그로 양념을 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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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형님' 중 김희철의 발언 ⓒjtbc


  아는 형님 이야기를 더 하자면, (주로 어린) 여성 게스트가 다수의 (주로 나이 많은) 남성들에게 얼마나 공격당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는 형님이 취하는 ‘교실’이란 콘셉트부터가 사실은 굉장히 폭력적인데, 게스트들은 전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칠판 앞에 동상처럼 세워져있어야 하며, 군집한 남학생들을 마주봐야만 한다. 남학생들(남성 멤버들)은 그들 앞에서 무언가를 관람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무례한 농담들도 던진다. 말이 교실이지, 게스트들은 무자비하게 ‘전시’당한다. ‘응시의 주체와 대상’ 도식의 예능 프로그램 버전이랄까. 서장훈은 퀴즈를 잘 맞힌 남성 멤버에게 여성 게스트가 볼 뽀뽀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샤이니 특집 때에는 김희철이 태민의 여성스러운(?) 특성을 부각시켜 희화화하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치즈코가 말하길, ‘호모소셜리티는 여성 혐오에 의해 성립되고 호모포비아에 의해 유지’된다. 정말 딱 들어맞는다.

  ‘1박 2일’에서는 예쁘고 젊은 여성 연예인이 왜 ‘모닝 엔젤’로 호출되어서 남성 멤버들에게 모닝 키스를 해주어야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무한도전에서도 과거 김태희나 이나영 등 소위 ‘미녀’ 연예인이 게스트로 나왔을 때에, 멤버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훌리건들의 집단 광기를 연상시켰다. 그들의 이런 아둔한 모습들은 그러나 몇 번의 감동 코드를 투입함으로써 ‘연대’로 뭉쳐진다. 진정 호모소셜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제는 어떤 프로그램이든 남자들의 호모소셜을 거치지 않고서는 ‘웃길 수 없는’ 가뭄 상태로 굳어져버린 것이 아닐지 우려된다. 문제의 본질은 구조적 한계라기보다는, 바뀔 줄 모르는 견고한 유머 코드에 대중들의 취향도 ‘마비’된다는 데에 있다. 무한도전에 광희보다는 장동민이 더 어울린다는 (절대 소수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견해는 아이러니하게도 무한도전이 얼마나 호모소셜의 전형인지를 모두가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아빠! 어디 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 ‘미운 우리 새끼’ 등 가족 예능에서 남성의 자리를 여성이 대신한다면 그것은 예능이 아니라 갑자기 ‘다큐’가 되어버린다. 여성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안착하려면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처럼 호모소셜의 입맛에 맞게 ‘롤플레잉’하는 수밖에 없다.

  지면을 넘어서 할 말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조한혜정 교수는 치즈코와의 서신에서 “동일자의 자기 복제를 지양하고 차이성의 정치학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차이성이나 다양성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슬픈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놈들’만을 위한 놀이판이 심히 불편하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그놈들’에게 묻고 싶다. 나만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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